Interview

전설의 3인방, 로빈 데릭 (Robin Derrick)

소통하며 진화하는 아이콘, 로빈 데릭

스프링 (Spring) 의 이그제큐티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로빈 데릭. 그의 직업은 뉴욕의 랜드마크 건물과 런던 스튜디오 빌딩을 지닌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스프링을 통해 다양한 럭셔리, 패션, 뷰티 컨텐츠를 제작하고 유통하는 일이다. 스프링에 합류하기 전에는 19년동안 영국 보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하며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만한 아이코닉한 커버 및 화보 촬영 작업을 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 세인트 마틴 (당시에는 ‘센트럴’이라는 글자가 없었다고 강조하는 로빈!) 재학 시절 우연히 테리 존스를 만나 아이디 매거진의 초청기 아트 디렉션에 참여했고, 이후 더 페이스 매거진의 아트 디렉터를 거쳐, 이탈리아 엘르를 시작으로 러시아 보그와 최근 포터 매거진 (네타포르타에서 출시)을 런칭하기까지 그는 오랜 시간 매거진과 인생을 함께 걸어온 인물. 로빈이 돌연 잡지 세상을 떠나 스프링이라는 에이전시에 합류하기까지 그는 어떤 아이코닉한 작업들을 진두지휘했다. 그 어느때보다 극심한 지각 변동을 겪는 지금 그는 패션계 안에서 무엇을 소통하는 중일까. ‘패션 소통’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듣기 위해 진행한 세션, 그가 거친 직업들에 대해 듣기 위해 스프링을 찾아가 가졌던 또 다른 인터뷰, 그리고 마지막엔 전화로 한차례 더 대화를 연장하기까지 3차례에 걸쳐 그와 나눈 이야기를 소개한다.

Dazed & Confused: 당신을 알게 된건 우연히 참석한 당신의  ‘패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명쾌하고 유쾌한 세션을 들으며선부터지만 알고보니 당신은 이미 너무 잘 알려진 아이코닉한 잡지 커버 및 화보는 물론 광고 캠페인을 진두지휘한 주인공이더라. 지금은 스프링의 이그제큐티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 중이다. 이곳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Robin Derrick: 우리는 이곳을 ‘통합된 럭셔리 커뮤니케이션의 미래’라고 부른다. 우리의 모토는 ‘크리에이티비티를 연결한다’인데, 보시다시피 스튜디오 빌딩으로 구성된 이곳에는 다양한 촬영이 이뤄지고 있다.

Dazed & Confused: 뉴욕 패션 위크 기간 중에 뉴욕에 있는 스프링 빌딩은 패션쇼 장소가 된다고 들었다. 캣워크와 라이브 스트리밍은 물론 광고 캠페인과 매거진, 웹사이트, 소셜 미디어, 필름 등 방금 에이전시 소개 영상을 통해 보여준 작업과 클라이언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Robin Derrick: <보그> 시절부터 스프링과 작업하며 영국 <보그> 디지털 웹사이트와 앱 플랫폼을 런칭했고, 미국 <바자>의 리브랜딩 작업,  <포터>매거진을 창간했다. 톰 포드의 웹사이트 런칭을 맡았고 웹사이트에 올라가는 모든 제품과 스틸 라이프 사진 촬영이 이곳에서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다. 얼마 전에 런칭한 크리스토퍼 케인의 웹사이트도 우리가 진행했는데, 이건 이커머스 기업 파패치의 ‘화이트 라벨 (기본 상품 위에 디자이너가 브랜딩하는 작업을 말하는데, 웹사이트의 기본적인 기술 구성 및 건설에 대한 작업)’ 서비스 중 하나다. 그 외에도 굵직한 브랜드들과 다양한 작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스프링은 세계적인 규모의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다.

Dazed & Confused: 아까 얼핏 보니 포토그래퍼 솔베 선즈보와의 작업도 흥미로운 것 같았다. 그건 무엇인가?
Robin Derrick: ‘하우스’의 프렌즈인 솔베의 잡지 화보 촬영과 앱 제작 그리고 뉴욕에서의 거대한 행사에 도움을 줬다. <월페이퍼> 매거진에서 뉴욕 스프링 빌딩을 소개하는 12페이지 기사가 나가기도 했는데, 이곳에는 뉴욕 패션 위크는 물론 미국패션디자인협회(CFDA)의 시상식과 미국에이즈연구재단(amfAR)의 기금 모금 갈라 행사, 그리고 트라이베카 영화제도 치뤄진다. 지금은 빌딩 내 멤버쉽 클럽을 통해 작업 공간을 론칭할 예정이다. 스프링에서 이런 작업을 하고 있다.

Dazed & Confused: 영국 <보그> 시절의 작업만큼 화려한 대단한 소개다! 근데 정말 궁금하다. 왜 그토록 오랫동안 함께한 매거진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정착한건가?
Robin Derrick: 나는 <보그>에서 일했고 내 배경은 ‘인쇄물 (print)’이다. <보그>에서 일하던 당시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함께 데이비드 & 빅토리아 베컴의 언더웨어 협업을 론칭하는 필름을 제작한 적이 있다. 벌써 8년전의 일인데, 유튜브에 올린 이 영상물이 200만 달러를 투자해 제작한 아웃도어 캠페인보다 더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더 많은 ‘뷰’를 기록했다. 미스터 알마니는 “도대체 그 영상을 클릭해서 본 그들은 누구란 말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지금까지도 유효한 좋은 질문이다! 이 현상을 보고 세상이 변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Dazed & Confused: 그래서 변화하는 세상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나?
Robin Derrick: 다음 시대를 이끌어갈 ‘크레이티브한 작업’은 엄청난 양의 ‘콘텐츠’가 중심이 되고 계절별로 돌아가던 매거진과 광고 캠페인 주기가 ‘매일’로 바뀌면서 속도가 빨라져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래서 스프링에서는 클라이언트와의 회의 직후 "지금 바로 인스타그램 작업을 시작하자"라고 말하며 스튜디오로 들어가는 일이 빈번하다. 우리는 지금 콘텐츠가 주도하는 커뮤니케이션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스프링이 하는 일이다. 물론 나 혼자만의 작업은 아니다. 나는 전체 에이전시의 크리에이티비티를 리드하며 빠른 속도의 커뮤니케이션과 호응을 유도하는 컨텐츠를 유망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과 함께 제작하고 있다.

Dazed & Confused: 매거진을 통해 제작하던 콘텐츠와 구체적으로 무엇이 다른건가?
Robin Derrick: 훨씬 더 방대한 콘텐츠를 생산하는데, 대부분 ‘반응을 요구하는 (call to action)’ 콜링이 있다. 질문이 담겼거나, 투표를 요구하거나, ‘좋아요’를 유도하는 등 필름 스트리밍에서부터 소셜 포스트에 이르기까지 참여를 요구하는 콘텐츠를 제작한다. 또 매거진의 경우에는 고정된 특정 고객들인 반면 소셜과 디지털 콘텐츠는 늘 새로운 관중을 모으는 형식이다. 한 가지를 더 짚자면 많은 이들이 소셜과 디지털을 동일한 단어인 양 사용하는데 둘은 분명 다르다. 소셜은 소셜 플랫폼이라는 구체적인 공간을 뜻한다. 난 소셜이 좋다. 사람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어 좋다. 매거진 시절 우리가 받은 유일한 피드백은 사진가의 에이전트로부터 듣는, 별 특별할 것 없는 "좋아요"라는 멘트 뿐이었으니까.

Dazed & Confused: 센트럴 세인트 마틴 시절 얘기를 좀 해보자. 학창 시절 어땠나?
Robin Derrick: 우리 때는 ‘센트럴’ 없이 그냥 세인트 마틴이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입학 후 첫 학기에 그래픽 디자인 전공이던 나는 패션과 여학생들의 미모를 보고 반한 후 무조건 그들과 작업해야겠다고 마음먹고 패션쇼나 작품 사진을 찍어주며 자연스럽게 당시 <i-D> 매거진을 런칭한 테리 존스와 작업하게 됐다. 세인트 마틴 ‘인 하우스 매거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으니, <i-D>에는 늘 세인트 마틴 관련 인물들의 사진과 글이 실렸고, 난 매거진과 사랑에 빠졌다. 테리의 집에 남는 방을 개조해 사무실로 쓰던 초창기 시절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곳에서 마돈나와도 미팅했다! 잡지라는 환경에 있다 보면 게을러진다. 사진가, 메이크업 아티스트, 스타일리스트, 모델 등 세상의 모든 자원이 알아서 나에게 찾아온다. 당시는 존 갈리아노가 세인트 마틴의 핫한 스타 디자이너였고, 본머스 대학을 졸업한 닉 나이트가 포트폴리오를 보내와 함께 작업을 했다. 우린 함께 작업하는걸 당연하게 여겼고, 누구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함께 촬영하는 사이가 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Dazed & Confused: 하하 이제 겨우 스프링에 아이디 매거진 얘기를 했을 뿐인데 흥미진진하다. 그 다음에 어떻게 <더 페이스>에 합류했나?
Robin Derrick: 그래픽 디자인 전공이던 나는 <i-D>와의 작업을 토대로 졸업 작품을 준비했고, 쇼에 온 <더 페이스>의 당시 아트 디렉터 네빌 브로디가 명함을 두고 갔다. 당시 <더 페이스>의 영향력은 대단했는데, 모두가 그들을 카피하던 때, 유독 <i-D>는 우리의 것을 즐기느라 바빴고 카피하지 않는 유일한 매거진이었다. 작업을 보고 네빌이 러브콜을 보내 어시스턴트로 일을 시작했다. 매거진 만드는 일에 푹 빠져 지내다 풀타임 자리에 앉았고 자연스럽게 그래픽 디자이너가 아닌 아트 디렉터가 되었다. 난 또다시 매거진과 사랑에 빠졌다. 파트 타임으로 일하던 네빌은 매거진 레이아웃과 전체 디렉션에 대한 지시를 내린 후 떠났고, 사진가들과의 소통은 내 몫이 되었다. 그때 작업한 사진가가 마리오 테스티노와 닉 나이트 등이었는데, 우린 모두가 훗날이 되서야 그때의 작업이 얼마나 아이코닉했는지 실감했으니 당시에는 그저 재밌게 매거진을 제작하는데 여념이 없을 뿐이었다.

Dazed & Confused: 그리고 <보그>에 합류한건가?
Robin Derrick: <보그>에 가기까지 아직 좀 갭이 있다. <더 페이스>에 있는 나에게 카를라 소짜니가 이탈리아 <엘르> 론칭을 제안해 영국을 떠나 그녀가 편집장, 24세의 내가 아트 디렉터가 되어 잡지를 만들었다. 난 닉 나이트에게 커버 촬영을 맡겼고, 마리오 테스티노는 데뷔 화보를 촬영했으며, 카를라가 스티븐 마이젤과 브루스 웨버를 동원해 주옥같은 사진들을 만들었다. 하하, 근데 황당하게도 과다한 비용이 문제가 되어 3개월만에 우린 모두 해고됐다. 한가지 더! 1987년, 카를라와 내가 이탈리아 <엘르> 창간 작업을 하는 동안 프랑카 (카를라의 동생)는 뉴욕의 젋은 아트 프로듀서 파비온 바론을 데려와 아트 디렉터로 내세워 이탈리아 <보그>를 론칭했다. 이후 잘 알려진대로 둘은 승승장구하며 화려한 경력의 시작 테이프를 끊었으니 내가 파비온에게 질투를 느끼는 것은 모든걸 통틀어 딱 한번, 저 때의 서로 상반된 론칭 경험이다.

Dazed & Confused: 하하. 이탈리아 <보그>의 런칭 뒤에 <엘르> 런칭 팀의 그런 비화가 있는지 몰랐다.
Robin Derrick: 어쩌다 물 먹은 꼴이 된 나는 이후 프랑스 <글래머>를 비롯해 일본과 스페인을 오갔고, 나의 스튜디오를 운영하다 영국 <보그>의 콜을 받고 영국으로 귀국했다. 이후 알려진대로 19년간 아트 디렉터로 일했고 그 때 러시아 <보그> 창간을 하기도 했다.

Dazed & Confused: 당신의 보그 시절 작업들을 보면 정말 아름답다. 예전에 포토그래퍼 솔베가 한 얘기 중에, '이런 사진들을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아느냐'는 대목이 생각난다. 작업 과정과 후반 작업까지 생각하면 하나의 예술 작품 수준이다! 하지만 개인이 촬영한 사진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하루 아침에 유명해져 전세계를 강타하는 이 시대 젊은이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Robin Derrick: 지금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큰 논점이다. 린다 에반젤리스타나 헬레나 크리스틴슨 등 빅 모델들의 이름을 구글에 검색해보면 스티븐 마이젤, 피터 린드버그, 브루스 웨버 등이 촬영한 대단한 사진 속 그녀들의 완벽하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된다. 글렌 루츠퍼드가 촬영한 모델 앰버 발레타의 몽환적인 프라다 캠페인 같은 아이코닉한 사진을 기억하나. 1998년의 사진이다. 하지만 지금 가장 핫하다는 지지 하디드를 검색해보면 빅토리아 시크릿 쇼나 그녀의 셀카 사진 아니면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 사진이 대다수 쏟아져나온다. 위에서 언급한 사진들을 촬영하고자 하는 열망과 열정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이미지를 소비하는 방식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속도는 빨리지고, 우리는 매일 단위로 콘텐트를 흡수한다. 고백하건데, 나 또한 6장의 사진을 10만 달러에 촬영한 후 600시간을 들여 리터칭하는 작업이 지치고 재미없다. 나 역시 모던한 시대에 맞는 거대한 커뮤니케이션에 빠져 있다.

Dazed & Confused: 빠르게 소비되고 초단위로 새로운게 나오는 그 커뮤니케이션의 어떤 점이 좋다는 건가?
Robin Derrick: 관중들이 참여한다는 사실과 그 방식에 있어 민주적이라는 것! 위대한 사진으로 남을만한 유산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것 같지만 말이다.

Dazed & Confused: 흥미롭지만 어려운 얘기다. 그래도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라는건 인정한다. 그럼 오늘날의 옴니 채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은 무엇일까?
Robin Derrick: 20대의 디지털에 네이티브한 젊은 전략가에게 이 질문을 한다면 그들은 ‘스내퍼블’한 콘텐츠를 제작해 스냅챗에 올리고, 인스타그램 켐페인을 진행하고, 트위터를 통해 트래픽을 유도하겠다고 하겠지. 하지만 이런 얘기는 모두 메카니즘에 관한 거다. 나의 관심은 ‘스토리’이고 ‘콘텐츠’다. 내가 원하는건 얼마나 참여를 유도하는, 흥미로운, 관련있는, 진실성 있는 콘텐츠이냐는 것 뿐!

Dazed & Confused: 새로운 콘텐츠는?
Robin Derrick: 태양 아래 더 이상 새로운 건 없다. 우리는 언제나 섹스, 사랑, 음식 등 그게 뭐든간에 똑같은 것에 관심을 가져왔다. 20세기초의 매거진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매거진은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관심사는 언제나 ‘인간적이고 글로벌’할 것이다.

Dazed & Confused: 그럼 당신을 흥분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Robin Derrick: 자라를 소유한 인디텍스와 미팅을 한적이 있는데, 흥미로운 얘기를 했다. 그들의 글로벌 매장 전략 안에는 ‘지역적 트렌드’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핑크색이면 핑크고 네이비 컬러면 네이비지, 그들은 패션 트렌드 속에 지역적 차별화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척 흥미로운 얘기다. 지나치게 글로벌화시키는 비상식적인 전략일까? 그럴수도 있다, 하지만 뭔가 그 안에 긍정적이고 인간에 대한 진실을 담은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본 것 같았다.

Dazed & Confused: 당신에게 아이코닉한 작업은?
Robin Derrick: 아이코닉한 작업을 생각하면 웃긴게, 당시에는 누구도 모르고 나중에서야 깨닫는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더 페이스> 매거진에서의 모든 작업은 다 아이코닉했다고 생각한다. ‘페이스 패션’으로 대변되는 모든 것이 아이코닉하다. 나도 1987년 밀라노로 이사가고 난 후 그곳에서 처음으로 모두가 우리를 따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우리가 한 작업이 아이코닉했다는 걸 깨달았다. 개인적으로는 이탈리아 <엘르>를 론칭하며 한 작업에 애정이 가지만 워낙 짧은 기간이었고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아이코닉하다는 표현은 부적합할수도 있다. 아르마니를 위한 데이빗 베컴과의 작업은 축구선수로만 유명한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 파격적인 행보였다. 우리도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랐는데 머트 & 마커스가 촬영한 사진을 보고 감이 왔다. 그 작업은 패션계에 중요한 기록으로 남기에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 그외에도 <보그>를 위한 크리스마스 특별호 커버들, 예를 들어 골드나 미러 커버 그리고 케이트 모스 커버들은 대단한 작업이었다. 런던 내셔널 포트릿 갤러리에서 열린 <보그 100주년> 전시를 통해 당시의 작업들을 다시 보니 얼마나 아이코닉한 사진들이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Dazed & Confused: 계속해서 변화하는 패션계에 대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이미지로 작업되는 광고를 소비하는 방식이 변화하는 지금, 광고를 제작하는 브랜드들에게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인가?
Robin Derrick: 패션 커뮤니케이션의 역사를 돌아보면 1920년대와 30년대를 넘나들며 잡지와 프린트물이 탄생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에 허우적대고, 전쟁 후유증을 겪는 동안 패션은 사실상 가진자들의 특권의식과 결부된다. 그러다가 1950년대 미국의 성장과 60년대 사진 기술의 발달이 혁신을 불러오고, 우리는 지금 이 모든 속도가 더 빨라지는 흐름 안에 있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 손에 쥐어지는 핸드폰이라는 작은 ‘장치’를 통해 전세계에 어떤 사진이나 영상을 전파할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세계를 향해 영상물을 라이브로, 그것도 컬러로 전파하려면 BBC 같은 방송 매체이거나 수백만장자의 기업에서만 가능하던게 바로 15년전의 이야기다. 가장 큰 도전은 어마하게 빠른 속도로 소통되는 바다 한 가운데서 어떻게 돋보이고 사람들의 눈에 잘 띌 수 있느냐는 것이다.

Dazed & Confused: 정말 다양한 주제를 넘나드는 긴 대화와 추가적으로 내준 시간에 감사하다.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의 다음 작업은 무엇인가?
Robin Derrick: 현재 뉴욕의 CFDA와 함께 다음 세대 패션 커뮤니케이션과 패션쇼에 대한 구상을 연구 중이다. 빅 플레이어 브랜드들과 함께 이 기획을 놓고 의견을 교환하며 인프라 구축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소셜 미디어의 출현과 진화 이후 패션쇼는 패션계 내 가장 오래된 ‘구식’ 시스템이라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하지만 바이어와 프레스에게 공개되던 쇼를 대중에게 오픈하고 쇼핑이 가능하게 한다는 것은, 제품 생산 및 제작 사이클의 변화는 물론 콘텐츠 유통 모델에 큰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이 일을 진행하고 결정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개입되어야 하며 이건 장기적인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기획과 구상이 앞으로 잘 진전한다면 2017년 2월 뉴욕 패션 위크 기간 중에 어떤 플랫폼을 런칭할 수도 있다. 아직은 아무것도 알 수 없고 보장할 수 없지만 중요한 프로젝트다. 

글/ 여인해

이 글은 <Dazed & Confused> 코리아의 2016년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Fashion Education #3 London College of Fashion

Frances Corner

100주년을 기념하는 정통 패션 학교, 런던 컬리지 오브 패션과 동시대적인 패션 과정을 개발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패션 학과장, 프란시스 코너. 둘의 조합은 완벽하다. 과거는 유산이 되고 미래는 비전이 되기 때문! 런던 컬리지 오브 패션의 캠퍼스는 런던 시내 한복판 옥스퍼드 광장이다. 세계에서 가장 분주한 패션 거리로 꼽히는 이곳에서, 학생들은 누구보다 먼저 발빠르게 변화를 감지하기 마련. 프란시스의 역할은 그들의 눈을 열어주는게 아니라, 변화의 중심으로 그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절반은 교실에서 나머지 절반은 바로 이 현장에 투입되어 직접 부딪히며 끊임없이 크레이티브한 질문을 던진다. 런던의 한 포럼에서 처음 만난 프란시스의 첫 인상은 강렬했다. 그녀는 난생 처음보는 패널들을 모아 토크를 끌어가는 타고난 리더쉽을 발휘했고, 단번에 그들의 중심을 바라보는 능력꾼이었다. 패션 학교 학과장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궁금증을 유발한 것도 그녀와의 짧은 만남을 통해서였다. 옥스퍼드 광장을 내려다보는 직무실에서 다시 만난 그녀. 재학생과 막 졸업한 학생들은 물론 동문들까지 대부분 꽤뚫고 있는 프란시스는 끊임없이 학생들과 패션 세상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이다. 그녀에게 학교는 패션과 비즈니스가 만나는 현장이자, 사회에 대한 책임을 실현하는 현실! 그녀는 ‘서스테이너블 패션’ 분야의 권위자로 활약 중이기도 하다. 패션계를 바라보는 프란시스의 시선과 이야기를 들으며 도달한 결론은, 유럽 패션의 미래는 맑다는 것. 다만, 우리 모두 그 시각에 관심을 기울이며 동참해야 한다. 패션의 미래는 우리가 살아갈 세상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

Q. 런던에 있으면 놀라운 점은 어떻게 이 도시는 끊임없이 패션 인력을 배출하는가이다. 알고보니 그 중심에는 패션 학교들이 있고, 특히 당신과의 짧은 만남이 결국 런던내 3대 패션 학교 학과장을 모두 만나는 계기를 마련해준 셈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런던 컬리지 오브 패션만의 특징은 무엇인가?
A. 런던 컬리지 오브 패션이 특별하고 독특한 이유는 패션과 관련된 모든 과정을 갖췄기 때문이다. 학사에서 석사 그리고 박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정말 방대하고 다양한 교육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신발이나 액세서리 패턴 커팅, 비쥬얼 머천다이징, eMBA는 물론, 일러스트레이션, 스타일링, 사진까지 폭 넓은 전공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은 우리 학교만의 독특한 점이다. 학과장으로 처음 부임되었을때 학교는 100주년을 기념하고 있었다. 이곳에는 놀라운 역사가 담겨 있다.

Q. 100년 전에는 어떤 패션 교육을 했다는 말인가?
A. 학교의 처음 설립은 꾸띄르 하우스에서 여성들이 일할 수 있도록 교육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한 발은 패션 산업 속에 한 발은 교육 현장에 둔채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전통이 있다. 덕분에 패션 산업 내 견고한 네트워크와 파트너쉽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깊은 관계 속에 있다. 학생들은 모두가 라이브로 현장에서 일하는 프로젝트에 어떤 식으로든 투입된다.

Q. 런던은 개개인의 가능성을 권장하고 지지해준다는 점이 부럽기도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말한대로 패션 산업에 일찍부터 발을 담그는 학생들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기도 하지만, 좀 더 정확한 진로나 미래를 가능케 하는 밑받침도 되는 것 같다. 패션 전공을 선택하는 자들 중에는 ‘패션이라는 컨셉’만 따라오다 패션의 다양한 역할에 적잖이 놀라는 이들도 있을 것 같은데?
A. 맞다, 특히 지금이 그런 때인 것 같다. 런던에서 나고 자란 학생들만 봐도 패션에 대해 무척 보수적인 이해를 지닌채 이곳에 온다. 막연히 패션 디자이너나 패션 저널리스트가 되겠다고 오는 학생들 중에는 패션계 내 얼마나 무수히 많은 직업들이 있는지 모르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우리가 제공하는 코스에는 패션 안에서도 서로 다른 전공자들이 협업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예를 들어 텍스타일과 남성복 전공이 만나거나 액세서리와 사진 전공이 만날 수 있도록. 왜냐면 패션은 ‘팀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Q. 흥미롭다. 이런 협력을 통해 새로운 시도가 가능한건가?
A. 이미 다양한 경험을 하고 학교에 모인 학생들이 서로 협업을 통해 자신이 잘하는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계기가 되자는 것이다. 이곳에서 책을 만들 수도 있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커뮤니케이션하는 구상을 할 수도 있다. 학교를 통해 학생들은 패션 산업이 끊임없이 패션을 유통하고, 만들고, 출판하고 소통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개발’ 중이라는 현실에 노출되는 것이다.

Q. 맞다, 패션은 늘 혁신 중이니까. 하지만 동시에 급변하는 패스트 패션에 대한 우려도 있다. 패션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요즘 시대의 사고는 위험하지 않은가?
A. 어떤 (교육) 훈련 과정 안에서도 이런 문제는 늘상 있기 마련이다. 어떤 이들은 단순히 대학에서의 삶을 경험하기 위해 오는 이들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왜냐면 하나의 개인이 성장하는 과정이니까. 집을 떠나 새로운 아이디어에 노출되고 많은 것들을 흡수하는 동안 학교는 정말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대화한다. 상당수 학생들이 패션계로 흘러들어가 일자리를 찾지만 그렇지 않고 예를 들어 최근에는 KPMG 나 로이드 은행 같은 곳으로 가길 원하는 패션 매니저먼트 학생들도 있다. 패션 교육을 찾는 이유는 수 없이 다양하고 방대하다. 교육 현장에 있으면서 흥미로운건 학생들의 수가 나날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Q. 당신은 ‘서스테이너블 패션’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그래서인지 패션 학교들 중에서도 유난히 이 주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왜 학교도 이 주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건가?
A.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이기 때문이다. ‘서스테이너블 패션’은 방대한 주제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그 주제 안에서도 옷을 제작하는 여성 인력의 임금 미지불과 같은 큰 이슈들을 다루기도 한다. 80%의 여성이 옷 생산에 투입되어 작업하는데 그 중 80%가 임금을 지불 받지 못한다. 심각한 수치다. 그외에도 옷을 만든 과정에 소비자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테일러와 공장에서 생산하는 인부는 물론 페브릭에 들어가는 재료를 농사하는 농부까지 작업하는 ‘실제 사람’들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중요한건 어떻게 교육의 현장 안에서 이 주제를 가르치고, 포함하고, 다루느냐는 것이다. 우리 삶에 직결된 현실이니까.

Q. 런던 컬러지 오브 패션은 패션계 현장과 가장 유기적으로 소통하며 영향을 주고 받는 곳인 것 같다. 졸업 이후 현장에 투입되는 인력에 대해서도 서포트가 이뤄질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전세계 다른 도시로 향하는 학생 풀을 학교는 어떻게 후원할 수 있을까?
A. 졸업한 동문들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관찰되는 부분이다. 학교 차원에서 우리가 현재 하는 일은 해외 프로젝트를 통해 이슈들을 논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도 내 다양한 커뮤니티 그룹과 연계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현장에서 직접 이슈들을 제기하고 이에 투입되는 작업을 했다. 물론 이건 하나의 과정이다. 학교 차원에서 연결되어 있는 다양한 기관들과 함께 어떻게 산업 내 변화가 가능할지 협력하고 있다. 중요한건 패션 산업이 이 변화를 원하고 관심을 갖는다는데 있다.

Q. 솔직히 대단한 일이다. ‘서스테이너블 패션’은 아직도 어렵게만 느끼지는 주제인데, 어떻게 보면 기업보다 먼저 이 일에 앞장서는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요즘 유난히 패션계가 시끄러운 변화의 소용돌이 가운데 있는데, 학교로서 이런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예를 들어 이커머스나 디지털 내 변화로 인해 영향을 받지는 않는지?
A. 무척이나 흥미로운 시기다. 변화라는 이슈와 그에 대한 도구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졌을때, 궁극적으로 연필이나 페인트 브러쉬나 노트북 컴퓨터나 모두 도구라는 논지에 도달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결론적으로 학교 안에는 근본적으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한다. 그래서 이커머스나 디지털로 인한 지금의 변화를 봤을때, 나의 생각은 우리가 더 디지털 세상 안으로 들어갈수록 우리는 현실에서 더욱더 서로 연결하기를 갈망 할 것이라고 믿는다. 입학하는 첫해에 학생들은 모두가 ‘셔츠’를 제작해야 한다. 난생 처음 만들어보는 학생들부터 만들어본 경험을 지닌 학생들까지 다양한 그들에게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는 ‘여전히 손으로 만지고 촉각 기관이 요구되는 아날로그 방식’의 가치를 우리는 존중한다는 것이다.

Q. 기성복이 사라지는 날이 올까?
A. 아마도 틈새 시장 속에 자리한 아티쟝과 대규모 생산 및 유통이라는 서로 다른 두 흐름 안에 어떤 문이 열리는 느낌이 더 강하다. 우리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디자인을 판매하는 디자이너들에 대해 토론하기도 한다. 그들은 플래그쉽도 없고 웹사이트도 없다. 모든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이뤄지는데,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뭘까 우리는 고민한다. 그렇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사는 어떻게 학생들로 하여금 크리에이티브하게 사고하는 훈련을 가능케 하냐는 것이다!

Q. 현장에서 활동하는 졸업생들 얘기가 여전히 궁금하다. 모두가 디자이너가 될 수는 없는 법인 만큼, 패션계 속 백 오피스라고 표현하고 싶은데, 어딘가에서 활동하는 어떤 이들이 있나?
A. 최근에 ‘패션과 비즈니스가 만나다 (Fashion Means Business)’라는 책자를 발행했는데, 이 안에는 예를 들어 런던 패션 위크에서 활약 중인 뉴젠 여성복 디자이너 라이언 로나 뉴젠 남성복 디자이너 피에터와 신발 디자이너 니콜라스 커크우드도 있지만 온라인 쇼핑 플랫폼 공동 설립자 제니 맥긴 (Jennie McGinn)이나 렉서스 차량을 위해 맞춤 인테리어를 제작한 가죽 아티쟝 우나 뷔르크 (Una Burke)와 캐리비언 여성들을 위한 컬러 팔레트를 염두한 코스메틱 브랜드를 시작한 플로렌스 아데포주 (Florence Adepoju) 등 졸업생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책자다.

Q. 한국 학생들은 어떤가? 졸업한 한국 학생들 중 주목해야 할 이들을 꼽는다면?
A. 한국 학생들은 정말 뛰어난 인재들이다. 교육 수준이 높고 똑똑하며 아주 훌륭한 미학적 감각을 지녔다. 특히 기술을 이해하는 속도가 빠르고 탁월하다. 그들은 기술과 능력 그리고 관심이라는 세가지 박자를 고루 갖춘 좋은 학생들이다. 그 중 눈에 띄게 활약하는 몇명 디자이너도 있고, 학생들의 목록을 전달하겠다. 꼭 만나보고 컬레션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것을 적극 권한다.

Q. 물론이다! 런던 컬러지 오브 패션 입학을 고려하는 이들은 어떤 준비가 필수인가?
A. 어디서 오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해외에서 지원하는 경우 ‘언어’가 가장 중요하다. 패션 안에서 ‘언어’는 무척 중요한 기능을 지닌다. 옷에 대해 얘기하고 옷의 미학에 대해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문화적인 요소도 있다. 예를 들어 프라다 패션과 테스코 패션을 비교한다고 치자. 해외에서 온 학생들은 프라다는 알아도 테스코 패션이 의미하는 바를 모를 수도 있다. 정체성에 대한 소통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좋은 매거진 기사들을 많이 읽어볼 것을 권한다. 온전히 못 알아들어도 좋다. 다른 패션 언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Q. 마지막으로 졸업 후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A. 어떤 과정을 공부하기 위해서 오는 것과 상관없이 오픈 마인드를 갖고 임하라고 말하고 싶다. 패션계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들을 보지 말고 자신 안에 있는 잠재력을 끄집어내는데 충실하는게 중요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동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협업하고 싶은지 끊임없이 발견하는 여정이 될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조사하며 질문들을 던져라. 패션계 내 선배들에게 또 학교에 있는 우리들에게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라고 권하고 싶다. 사람들은 의외로 이야기 들어주는 것을 반기고 좋아한다!

글/ 여인해
사진/ LCF 제공, Roger Dean

이 글은 <Dazed&Confused> 코리아의 2016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Fashion Education #2 Central Saint Martins

Fabio Piras

런던의 킹스크로스 역이 있는 번화한 북쪽으로 둥지를 옮긴 센트럴 세인 마틴 학교. 이곳이 명실상부 세계적으로 최고의 패션 학교라는 수식어를 자랑하는 배경에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패션계 주요 인사들인 졸업생 명단이 한몫 한다. 적어도 패션 학과장 파비오를 만나기 전에는 그렇다고 굳게 믿었다. 80년대 존 갈리아노와 함께 재학생 신분을 공유하며 런던 패션 위크에 뉴젠 수상자 (런던 최고 명성의 신인 디자이너 후원 프로그램)로 데뷔했고, 봇물처럼 터져 나온 페이스, 아이디 매거진을 읽으며 펑크의 끝과 로맨티시즘의 활약을 온 몸으로 체험한 파비오. 패션의 한 시대를 풍미한 그는 잘 알려진대로 고 루이스 윌슨 교수의 후임자다. 하지만, 그에게 패션계의 전설들은 바로 지금 동시대 글로벌 패션 시장을 향해 파격적으로 진보하는 디자이너 크레그 그린이자 챨스 제프리이며 그의 역할은 넥스트 크레그와 챨스를 발굴하는 것이다. 그가 이끄는 센트럴 세인 마틴은 학생들에게 비즈니스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가장 크리에이티브한 요소들을 끄집어 내어 프로젝트로 완성하는 과정이고 이 창조물에 가격을 책정해 상업화 할 수 있는 도전을 시작하는 곳이다. 무엇이 센트럴 세인 마틴을 이토록 파워플하게 하는지, 파비오의 이야기와 비전을 소개한다.

Q. 패션 명문이자 권위인 센트럴 세인 마틴에 와 있다니 무척 설레인다. 패션계가 그 어느때보다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변화하는 때라 더 그렇다. 어떤가, 학교로서 빠르게 움직이는 패션계 속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인가?
A. 패션은 늘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이지만, 지금의 현실은 그 속도가 더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학생들에게 가장 큰 도전이자 결과적으로 교육자에게도 적용되는 포커스는 ‘기회는 한번 뿐’이라는 마인드다. 그래서 우리는 학생들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전문적인 역할을 이해하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가장 중요한 건 학생으로서 그들의 가장 큰 강점은 무엇인지 이해하고 찾는 것이다.

Q. 패션계 내 역할이 다양해졌음을 말하는건가?
A. 예전에는 패션계 내 경계가 분명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유동적 (fluid)이다. 예를 들어 색채에 대한 남다른 감각이 있다면 아트 디렉터와 작업하는 일을 할 수 있고, 독특한 시각을 가졌다면 꼭 패션 커뮤니케이션 과를 통해 프레스로 흘러들어가지 않아도 브랜드 내 커뮤니케이션 부서라던지 비쥬얼 머천다이징 부서로 갈 수 있는 거다. 졸업생 중 후자의 예로 디스플레이, 콜라쥐, 이미지 작업에 뛰어나고 독특한 시각을 가졌던 한 학생은 졸업 작품으로 매거진을 만들었고 결과는 아름다웠다. 우리에게 도전은 그들이 누구인지 이해하고 그들이 어떻게 패션계에 기여할 수 있으며 어떻게 바깥 세상 속 더 많은 관중과 소통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다.

Q. 직업이 다양해지고 경계가 허물어지는 패션계의 현실은 무척 흥분되는 얘기다. 하지만 학교의 입장에서 이 빠르고 다양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게 어떻게 가능한가? 어느 시점에 학생들의 진로를 결정하기라도 하는 것인가?
A. 이런 코스 (패션 석사 과정)에서 학생들이 어떤 진로를 택할지 결정한다거나 그런 조언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패션 산업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자신의 재능을 인지하고 그것으로 퍼포먼스가 가능한 인재 풀을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의 역할은 이 재능이 18개월이라는 여정 속 어느 지점에서  ‘교육’ 되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직업 사다리 중 가장 아래인 어시스턴트에서 시작한다고 치자. 어시스턴트만큼 현실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자리는 없다! 그 자리에서 얼마든지 변화를 가져오는 능동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적극적인 도움을 행사하고,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더 깊게 사고하도록 유도하는 등의 훈련을 통해 패션계에 기여하는 인재가 되는 첫 시작의 단추가 될 수 있는 것이다.

Q. 매우 실질적인 얘기다. 얼마전 인터뷰한 드리스 반 노튼과 비슷한 논지의 이야기를 나눴디. 그는 어시스턴트들에게 의견을 구할때 그들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아이디어를 나누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록 권고한다고 했다. 이게 가능하단 말인가?
A. 물론이다. 왜냐면 그들은 ‘나’와 다른 언어를 지녔기 때문이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자신만의 관점을 표현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훈련한다. 본인의 작품을 크리틱하고 다른 학생들의 작품을 크리틱하며 또한 작업을 에딧하고, 하나의 프로젝트를 자신에게 중요한 기준에 따라 소분류하거나 비쥬얼한 방법으로 소통하는 일이 늘 과제와 함께 진행된다. 이것이 채점 기준이 되기도 한다. 디자이너에게 중요한건 360도의 비전을 갖는 것은 물론 패션이 물리적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이며 시각적이고 또 사회적인 작업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을 해석하고, 예술과 지식을 통해 우리가 학습한 바를 표현하고, 디자이너라면 동시에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봐야 한다. 왜냐면, 디자이너는 그들에게 옷을 입히고, 스타일링하는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Q. 석사 과정을 위해 지원하는 학생들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A. 우리는 기본적으로 정말 뛰어나고 대단한 인재를 발굴하고 함께 작업할 거라는 어떤 ‘가정’하에 그들을 찾는 과정을 거친다고 표현하고 싶다. 예를 들어 40명 선발하는 석사 과정에 지원하는 학생 수가 올해의 경우 600명이다. 우리의 초점은 서로 다른 경험과 배경에서 온 다양한 인력으로 구성된 ‘팀’을 조직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저마다 전혀 다른 기대감을 갖고 온다. 그리고 대부분 무척 ‘순진한’ 기대를 품는데, 뭐 상관없다. 우리에게 중요한건 잠재적인 가능성이다. 그래서 또 다른 크리스토퍼 케인이나 크레그 그린, 챨스 제프리가 나오는 것도 너무 흥분되는 일이지만 동시에 이름이 덜 알려질지라도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를 달리는 조직 내 ‘팀원’ 역할을 하는 자들도 나와야 한다.

Q. 맞다. 모두가 디자이너가 될 수는 없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팀원도 중요하다는 말에 크게 공감된다. 센트럴 세인 마틴의 MA 쇼는 유명하다. 모두가 서지는 못할텐데?
A. 우리는 한 팀으로 작업하고 하나가 되어 졸업 작품 쇼에 투입된다. 쇼는 물론 거대한 형식으로 컬렉션을 발표하는 장이지만, 모두의 시선이 꽂히는 그 스포트라이트의 수명은 몇분에서 몇달 혹은 몇년 단위로 소멸되거나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쇼 직후 모두의 관심이 한명에 쏠릴 수도 있다, 하지만 쇼가 끝나면 끝이다. 반면 삶 속에서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이 작업을 실현하는 ‘과정’ 에 있다. 쇼는 사실 학기 점수에 채점되어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전혀 상관이 없다. 우리가 채점하는 것은 오직 컬렉션과 포트폴리오 작업이다.

Q.  캣워크에 대한 얘기를 좀 해보자. 패션쇼가 컬렉션을 보여주는 유일한 수단이 아니라는 의견이 팽배하다. 어떻게 생각하나?
A. 패션은 근접한 미래 속에 존재하는 것 같지만 동시에 무척 복고적인 비즈니스 세계다. 게다가 패션 피플들이 의외로 보수적이기 때문에 이에 반하는 극적인 축하의 장이 펼쳐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곳에 모인 관중을 향해 자신의 비전을 보여주는 마치 ‘부족 (tribal)’ 단위의 쇼가 되는 것이다. ‘패션쇼’가 없어지는 일은 당장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본다. 쇼를 퍼포먼스로 바라보는 자들에게는 계속해서 패션쇼가 도구가 될 것이지만, ‘제품’을 선보이는 작업이라면 훨씬 더 다양한 방법들이 가능하다.

Q. 센트럴 세인 마틴에서는 패션쇼 외에 어떤 방식으로 학생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나?
A.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패션쇼 직후 쇼룸을 운영하고 있고, 잘 알려진대로 졸업 작품 쇼는 매년 2월 런던 패션 위크 온-스케줄에 포함되어 진행한다. 단, 쇼룸은 철저히 비즈니스를 위해 예약제로 진행되고 있고, 작년부터 대중들에게 오픈하기 위해 전시를 기획했다. 전시는 졸업작품 패션쇼의 연장으로 기부당과 이사벨로 블루오 같은 큰 전시들을 큐레이팅한 알리스테어 오닐의 손에 맡겼다. 알리스테어는 쇼에 바탕을 두고, 학생들의 작품을 전시의 형태에 맞는 시각으로 묘사하고 에딧하여 선보이는데 놀랍게도 작년 첫회도 올해도 특별한 전시 홍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전시장을 방문했다. 그외에도 룩북이나 소규모 프리젠테이션 등을 기획하는 방법으로 선보이기도 한다.

Q. 패션 전시 얘기가 흥미롭다 (깔끔한 그의 사무실 벽면 한켠에 바로 두장의 전시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전시 제목이 ‘Nude’와 ‘Separates’이였나보다? 흥미롭다.
A. 올해의 전시 ‘Separates’은 ‘베트멍’에서 영감 받은 것이다. (웃음) 왜냐면 지금 패션계는 어쩌면 패션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그 어느때보다 주목하고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졸업 작품 쇼 이후 학생들은 더 이상 학생이 아닌 디자이너이다. 디자이너로서 어떤 작업을 하는지 대중에게 보여줘야 할 단계가 필수적인 과정이 되는 것이다. 쇼에만 의지하거나, 보그닷컴에 올라간 사진에만 의존하지 말고 사람들로 하여금 옷을 만지고 보고 체험할 수 있는 작업이 필요하다.

Q. 어떨때는 학교 속 당신이 패션 산업 현장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열린 사고 방식을 가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패션 산업은 보지 못하는 것을 당신은 보고 있으니까! 그래서 교육이 패션 미래의 희망인가보다. 하지만 학생들은 어떻게 자신만의 강력한 에너지를 품을 수 있을까?
A. 학교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센트럴 세인 마틴 석사 과정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공존한다.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이나 그에 비해 낮은 기술을 지닌 다양한 학생들이  함께 하지만 그건 그렇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왜냐면 누구에게나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찾는건 함께 일 할 수 있는 자들이고, 교육자로서 우리는 그들 안에 잠재된 능력을 발굴하는 역할을 지닌 것이다.

Q. 크레그 그린은 인지도가 높다고 쳐도 챨스 제프리는 한국에서는 아주 많이 알려진 이름은 아니다. 센트럴 세인 마틴에서 튜터로도 활동한다고 들었다. 그를 소개해달라.
A. 챨스는‘러버보이’라는 이름으로 클럽 나잇을 재현한 졸업 작품 컬렉션 이후 1년 넘게 패션계 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데, 그의 매력은 이 순간을 즐기고 소화하는 능력이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다. 그래서 그의 룩, 애티튜드, 그가 뿜는 에너지 모두가 자신의 브랜드의 ‘제품’이기도 하다. 그가 티셔츠와 데님만 만들어서 제작한다고 해도 상관 없다. 그는 하나의 총체적인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Q. 챨스의 컬렉션을 잘 알고 무척 좋아하는 입장으로 공감 되는 부분이 많은데 아무래도 직접 매장에서 보면 이해가 더 빠를 것 같다. 그의 ‘술취한 테일러링’ 재킷만으로도 완전 반했는데, 아직 존재하지 않는 데님과 티셔츠 컬렉션을 상상하자니 너무 행복하고 좋다. 당장 사고 싶은데! 그러고보니 ‘창의성’과 ‘상업성’이라는 두 가지가 떠오른다. 어떤가, 이 두 요소 간의 조화와 균형이 어떻게 가능할까?
A. 특히 석사 과정에서는 무척 중요한 얘기다. 왜냐면, 학사나 석사 모든 과정에서 ‘상업적’이라는 단어는 마치 아주 나쁜 단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건 너무 상업적이야.” 라는 표현은 최악의 품평이 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게 모순인게, 학생들은 대부분 졸업 후 디자이너로서의 첫 행보로 런던 패션 위크를 손꼽고 그곳은 바로 자신들의 컬렉션을 팔아야 하는 곳이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컬렉션이 크리에이티브할 때 바로 상업적인 가치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Q.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을 직접 구입하는 바이어들에게 ‘상업적’이라는 단어는 또 다른 의미이지 않을까?
A. 바이어는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옷을 어떻게 배송하고, 누가 입을지를 생각한다. 디자이너는 바이어의 시각을 이해하되 그 경계가 더 넓다.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타깃 마켓에 대한 사전 이해가 있어야 하며, 자신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정확할 수록 좋다. 디올같은 디자이너가 되길 원하는지 디젤 같은 디자이너가 되길 원하는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그냥 모호해질 수 밖에 없고, 자신의 일을 분석할 수 없게 된다.

Q. 그래서 학교에서는 어떤 노력을 하는건가?
A. 학생들을 끊임없이 분석하고, 그들과 작업하며 그들에게 멘토쉽을 제공하고 재능있는 튜터들을 초대하는 노력들이 이어진다. 게다가 런던을 강하게 하는 배경에는 이 모든 것을 조직 단계에서 실질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현실 속에서 해결책을 도모하는데 앞장서는 영국 패션 협회 역할이 크다.

Q.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A. 영국 패션 협회는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뉴젠 수상 프로그램을 통해 신인들을 발굴할 뿐 아니라 그들에게 직접적인 멘토링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끌어나가고 있다. 우리 때는 지금처럼 멘토쉽이 잘 되어 있지 않았지만 나 또한 뉴젠 수상자로 디자이너 커리어를 시작한 수혜자다.

Q. 런던에 부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점은 협회와 학교 그리고 산업이 똘똘 뭉칠 수 있다는 것이다. 런던 외부에 있고 글로벌한 우리들은 어떻게 그 연합에 참여할 수 있을까?
A. 모든 것의 첫 시작은 관심을 갖는 것이다. LVMH나 케링 그룹 같은 국제적인 규모의 기업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모니터링한다. 우리가 하는 작던 크던 모든 행사에 관심을 갖고, 때로는 손을 벌리거나 함께 하기를 청하기도 한다.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우리에게 소개하는 일도 종종 있다. 가장 중요한건 참여하는 그 한 발자욱을 내딛는 것이다.

Q. 좋은 얘기다. 더 많이 알고 싶은게 사실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핫한 신인이 있다면 소개해줄 수 있나? 한국 졸업생들도 좋다!
A. 키코 코스타디노브! 올해 초 작 졸업 작품 쇼를 마친 그는 이미 도버 스트릿 마켓에 컬렉션을 판매하고 있고, 그에 앞서 스튜시와 푸마와 놀라운 작업을 함께 하며 패션계 내 기대주로 떠오르고 있다. 졸업과 동시에 뉴젠 수상자로 선발되어 바로 남성복 런던 패션 위크 온 스케줄에 합류한 그의 쇼를 기대해달라. 한국 디자이너는 셀린에서 활약하다 군대 제대 후 복귀한 록 황과 J JS Lee, 레지나 표 등이 아주 잘하고 있다. 특히 록은 이제 브랜드를 시작한 단계인데 충분히 기대해도 좋을만한 좋은 잠재력을 지닌 디자이너다.

글/ 여인해
사진/ Marco KesselerAsia WerbelChris Moore at Catwalki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