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show ROOMS 런던 쇼룸

패션은 비즈니스다. 화려한 패션쇼의 막은 내렸지만, 진짜 비즈니스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4대 글로벌 패션 위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파리로 모든 디자이너들이 컬렉션을 들고 향하는 목적도 바로 비즈니스다. 이곳은 디자이너들의 창조물들이 진짜 세상으로 나오는 관문이 되는 곳! 패션쇼 이후 패션 세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 싶다면 영국 패션 협회가 주관하는 런던 쇼룸 (LONDON show ROOMS)으로 향하면 된다. 신인 디자이너들을 배출하는데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영국 패션 협회는 2008년부터 매 시즌 파리에서 런던 쇼룸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 영국 패션 협회 제공

사진/ 영국 패션 협회 제공

올해로 8번째 해를 맞은 런던 쇼룸에는 영문으로 복수인 ‘S’가 붙는다. 이유는 한명 한명 디자이너들의 쇼룸이 모인 곳이라는 상징에 있다. 런던 쇼룸을 처음 기획한 영국 패션 협회의 바바라 그리스피니 (Barbara Grispini)는 뿔뿔히 흩어져 쇼룸을 운영하는 디자이너들을 위해 영국 패션 협회가 나서야 될 필요를 느끼고 그들을 모아 런던 쇼룸을 시작하기로 했다고 한다. 당시는 피터 옌슨 (Peter Jensen)과 엠마 쿡 (Emma Cook) 등을 중심으로 소수가 모여 런던 디자이너들을 파리에서 대표하던 시절로 크리스토퍼 케인 (Christopher Kane)을 주축으로 신인 디자이너들이 막 떠오르기 시작할 즈음이다. 영국 패션 협회가 나서자 신인 디자이너들에게 기회가 열렸고, 프레스를 통해 주목 받기 시작하던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은 실제 ‘고객’인 전세계 주요 바이어들의 ‘간택’을 받기 시작했다. 협회는 이미 과거를 통해 디자이너들의 비즈니스 운영 실패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최악의 시나리오를 경험해봤다. 이름만 대면 전세계가 알아보는 천재 디자이너들도 비즈니스에 실패하면 무너지기 쉽상인데 신인 디자이너들은 오죽했을까. 게다가 대부분 패션 학교를 막 졸업하고 바로 패션계에 입문하는 디자이너들에게 ‘쇼룸’은 완전 낯설고 심지어 무섭기까지 한 환경일 밖에.  

 신인 디자이너 홍보 대사이자 미국 보그 평론가인 사라 무어 (Sarah Mower)는 런던 쇼룸을 ‘피니싱 학교 (finishing school)’ 에 비유한다. “디자이너들은 이곳에서 비즈니스를 몸으로 부딪혀 체험하고 배우게 되요. 중요한건 디자이너들이 브랜드를 대변하는 인물이 되고, 또 그것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나와야 하며, 그 능력과 열정을 패션 전문가들에게 소통하고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미국 보그의 패션 디렉터 토니 굿맨 (Tonne Goodman)과 액세서리 에디터 셀비 드러몬드 (Selby Drummond)에게 디자이너들과 컬렉션을 일일이 소개하던 사라가 말했다. 그녀는 이번 2016년 봄/여름 컬렉션을 선보이는 런던 쇼룸의 오프닝 칵테일 파티를 호스트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디자이너들은 누가 누군지 쉽게 구분하거나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니 모두에게 친절하게 미소를 날리며 자신의 이야기와 컬렉션에 대한 소개를 무한 반복할 준비를 갖춰야 하는게 현실이다. 학교 안팍 어디서도 이걸 가르쳐주는 곳은 없다.

하지만, 런던 쇼룸의 목적은 가르치는 학교가 되고자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협회의 관심은 성숙한 디자이너 양성에 있다. 협회가 나선다고 해도 결국 글로벌 패션 전문 인력을 끌어당길 수 있는 능력은 디자이너들이 얼마나 전문적인 컬렉션을 선보이는가에 달려 있다. 이번 시즌 런던 쇼룸의 하이라이트는 남성복 디자이너 5명의 합류 소식이다. 쇼룸에 참석한 23명의 디자이너들 중 크리스토퍼 샤논 (Christopher Shannon), 키트 닐 (Kit Neale), 매튜 밀러 (Matthew Miller)는 첫 여성복 풀 컬렉션을 선보였고, 크레그 그린 (Craig Green)과 리 로치 (Lee Roach)는 지난 남성복 시즌에 성공적인 반응으로 마친 컬렉션을 가져왔다. 사라는 남성복과 여성복의 구분이 사라지고 두 고객층이 서로 크로스오버하고 있는 지금의 현상은 더 이상 트렌드가 아닌 ‘현실’이라고 강조한다. 새로운 것에 목마른 프레스는 물론 바이어들은 런던 쇼룸의 이번 결정을 환영했고, 세일즈 면에서도 제법 괜찮은 성과를 올렸다. “사실 런던 디자이너들은 작은 비즈니스를 경영하고 있는 거예요. 여성복 디자이너가 또 남성복 디자이너가 서로 다른 영역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큰 자본이 필요해요. 쇼나 프리젠테이션 포맷도 그렇고, 샘플 제작에서 프로덕션 그리고 매장에 배송하는 작업까지 모든 과정을 위해 ‘자금’이 필요해요. 그런데, 세일즈를 통해 컬렉션이 안정 궤도에 진입하고 운영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가능성이 열리는 거죠.” 영국 패션 협회 CEO 캐롤라인 러쉬는 이번 결정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고 말하며 그 배경에 대해 언급했다.

디자이너마다 다르겠지만,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성장시키고 싶다면 누구나 남성복과 여성복 두 분야를 다 마음에 품고 있을 것이다. 글로벌 브랜드로 활약하고 거듭나기 위해 두 분야를 섭렵하는 것은 중요한 단계다. 단, 여성복이 남성복 보다는 압도적으로 큰 시장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런던 쇼룸 여성복 기간에 진입한 남성복 디자이너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데 성공한 셈이다. 협회는 지난 6월부터 남성복 런던 패션 위크 기간 중에 여성복 프리 컬렉션 세일즈도 런던에서 시작했다. 더불어 액세서리 컬렉션도 무척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분야다. 액세서리 디자이너가 아닌 이상 신인 디자이너들은 기성복 컬렉션에 열과 혼을 쏟는게 맞다. 결국 디자이너 브랜드의 정체성은 ‘옷’이니까. 패션 세상을 통틀어 한마디로 요약하는건 불가능하지만, ‘옷’이 이 거대한 희극 속 주인공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런던 쇼룸에서 이번 시즌 가장 활약이 두드러졌던 포스틴 스타인메츠 (Faustine Steinmetz), 다니엘 로미렐 (Danielle Romeril), 몰리 고다드 (Molly Goddard)와 한 시즌 만에 부쩍 성장한 세이디 윌리엄스 (Sadie Williams)의 컬렉션을 보면 협회의 다양한 서포트가 제 기능을 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캡슐 컬렉션’이란 표현이 더 적합했을 지난 시즌에 비해 이번 시즌 이들의 컬렉션은 다양해졌고 확장되었으며 한층 성숙한 제작 과정을 도입, 경쟁적인 가격대도 갖추게 되었다. 크리에이티브한 ‘쇼적인’ 요소는 물론 웨어블한 ‘커머셜’ 요소를 그들이 적용할 수 있는 배경에는 전문가들의 조언과 양육이 큰 역할을 한다. “런던에는 대단한 바이어들이 있고, 그들은 뉴젠 심사위원단에 포함되어 있어요. 디자이너들은 그들의 옷을 세일즈 하는데 있어 제1대상인 바이어들 앞에 뉴젠(New Gen) 심사를 통해 컬렉션을 선보여야 해요.” 이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역할을 하는 캐롤라인은 이 기회를 통해 디자이너들은 현실에 바로 맞닥뜨리게 된다고 말한다. 가격이 문제가 되면 프로뎍선 과정에 대한 조언과 실질적인 방안이 제시되고, 컬렉션을 구성하는 제품 레인지가 완전하지 않을땐 실랄한 비판을 받아들여야 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중진 브랜드의 머천다이징 전문가의 직접적인 도움이 요청되기도 한다. 컬렉션을 건설하고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작은 단계’를 실천하기 위해 협회는 전문가들의 ‘멘토링’을 요청하고 있다.

차근 차근 단계를 밟아 잘 성장한 디자이너들은 때가 차면 런던 쇼룸을 떠나 프라이빗 쇼룸을 직접 운영하거나 커머셜 쇼룸에 합류한다. 캐롤라인은 이런 케이스들을 ‘성공 스토리’에 빗댄다. “런던 쇼룸은 디자이너들의 도약을 위한 ‘런치패드’이자 스스로 브랜드를 경영할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이예요. 그래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신인 디자이너들에게 처음 몇 시즌은 직접 세일즈를 할 것을 권해요.” 캐롤라인은 이 과정을 위해 협회 팀이 지원 사격에 나선다고 강조한다. 협회 전략 컨설턴트인 안나 오르시니 (Anna Orsini)는 다년간의 실질적인 세일즈 경험과 주요 바이어들과의 돈독한 관계를 통해 디자이너들에게 각각 다른 조언은 물론 예측치 못한 ‘문제’나 ‘복잡한 상황’을 즉각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그녀는 패션 위크에 앞서 디자이너들을 위해 열리는 ‘비즈니스 세미나’를 통해 그들을 이끌어주고 있고, 협회는 초청된 게스트에 한해 참석이 가능한 ‘패션 포럼’을 주최하기도 한다. 패션 포럼에는 글로벌 패션 업계 주요 인사들이 참여해 디자이너들의 지각을 넓혀줄 다양한 주제를 패널 토크 형식으로 선보이고 있다.

최근 런던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이커머스 숍 오픈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마리 카트란추, 에르뎀 (Erdem)은 물론 키트 닐 (Kit Neale), 제임스 롱 (James Long)등 디자이너들은 이커머스 숍을 통해 글로벌 고객들을 직접 상대하는 중이다. 자립적인 비즈니스 운영 능력을 갖춘 디자이너들은 자연스런 성장 단계를 밞아 나가게 된다. 매장들에게 컬렉션을 팔면서 동시에 컬렉션에 대한 온전한 ‘컨트롤’을 갖는게 점점 힘들어지는 지금, 디자이너들이 고객을 직접 대할 수 있는 공간은 그것이 현실이든 가상이든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사라는 “협회의 목적은 디자이너들이 스스로 비즈니스로 우뚝 서기 위해 필요한 ‘근본적인 요소’들이 무엇인지 알고 이해하며 갖추는 것이예요.”라고 강조한다. 왜냐면 이 모든걸 맞게 잘 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도전이기 때문이다.

바이어들의 가장 큰 문제는 아직까지도 런던 패션 위크 기간 중에 세일즈 시스템을 세팅하는 디자이너들의 수가 너무 작다는 것이다. 런던 쇼룸은 왜 런던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것인가? 캐롤라인은 “바이어들은 끊임없이 왜 디자이너들이 쇼 직후 판매를 하지 않냐는 질문을 던져요. 디자이너들도 점점 더 많이 이 부분에 대해 동의하고 고민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것이 가능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해요.” 라고 말한다. 대신 하나의 방안으로 최근에 시작된 뉴젠 디자이너의 ‘팝업’ 쇼룸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전날 뉴젠 디자이너의 쇼 스케줄이 어떤가에 따라 때로는 반나절, 혹은 하루 종일도 그 다음날 팝업 쇼룸을 운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는 단 한개만 운영되었으니 정말 갈길이 멀다. 협회가 신인 디자이너들보다는 빅 하우스들과 이 부분에 대해 고민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들은 공간도, 세일즈 전문 인력도 모두 갖추고 있고 (버버리 등은 매 시즌 리시 (Resee)를 진행하고 있고, 실제로 런던 바이어들의 바잉이 이뤄진다), 게다가 홈그라운드에서의 세일즈이니 이것을 활용한다면 살인적인 파리 스케줄에 쫓기는 바이어들에게도 유용할 것이다. 캐롤라인도 신인 디자이너들의 경우 “쇼 바로 직전까지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요. 왜냐면 프로덕션이 모두 런던에서 이뤄지니까요. 디자이너들과 ‘시간 관리’에 대해 많이 얘기하고 있고, 유난히 이걸 잘하는 디자이너들이 있기 마련이예요.”라고 말하며 협회도 이 상황을 인지하고 있음을 언급한다. 이 부분에 집중하고 노력하는 디자이너들은 발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다. 매장과 백화점에 가장 빠르게 제품을 배송하는 걸로 바이어들에게 신뢰도가 높은 시몬 로샤 (Simone Rocha)가 대표적인 예다. 그녀는 몇 시즌 만에 고속 성장을 이루며 건강한 비즈니스를 안착시키고 발전 중이다.

한편 영국 패션 협회는 다음 단계로의 발전을 위해 ‘인력’에 투자하는 것을 강조하며 <보그>와 <지큐>와 손을 잡고 가장 큰 지원금을 내건 ‘패션 펀드 (Fashion Fund)’ 상을 운영하고 있다. “과거 수상자인 크리스토퍼 케인, 에르뎀, 니콜라스 커크우드 (Nicholas Kirkwood), 피터 필로토 (Peter Pilotto), 마리 카트란주 (Mary Katrantzou)는 이 상을 통해 비즈니스 인프라 구축에 투자할 수 있었어요. 그 결과를 우리는 지금 확연하게 보고 있어요.” 캐롤라인은 프리 컬렉션 진출과 인력 고용을 놓고 고민하는 디자이너들에게 인력에 먼저 투자한 후 프리 컬렉션 제작에 심혈을 쏟으라고 조언한다며 인력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4대 글로벌 패션 위크가 모두 끝난 지금, 디자이너들은 저마다 오더 북을 마감하는 중이다. 마감과 함께 제작에 돌입하는 동안 내년 2월에 있을 새로운 시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션 작업도 함께 시작된다. 영국 패션 협회 팀은 물론 협회의 지원군을 자청하는 업계 전문가들은 또 다시 디자이너들을 위해 풀 가동되어 다음 스케줄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글/ 여인해
사진/ Darren Gerrish, 영국 패션 협회 제공
이 글은 Dazed Korea 2015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