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Education #1 Royal College of Arts

2014년 영국 패션 협회 명예 회장직을 시작하게 된 나탈리 메세네, 네타포르테 설립자는 런던 패션 위크 오프닝 연설을 통해 향후 2개년에 대한 5개 주요 활동 (5 pillars) 계획을 발표했다. 명성과 투자, 비즈니스와 디지털 혁신 그리고 교육을 골자로 한 방대한 계획이었다. 당시, 다른 4가지는 대략 이해가 되었지만 유독 ‘교육’에 대한 포부가 와 닿지 않았다. 교육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영국 전역에 걸쳐 약 35개의 학교가 패션 학사, 석사 과정을 제공하고 있고 이들 중 가장 활약이 두드러진 3개 패션 학교인 센트럴 세인 마틴, 로얄 컬리지 오브 아트, 런던 컬리지 오브 패션의 패션 학과장과 진솔하고 깊은 대화를 나눴다. 최고 권위의 저널리스트고 유럽 최대의 럭셔리 그룹도 그리고 런던 패션 위크를 주관하는 영국 패션 협회도 학교를 주목한다. 끊임없이 학교와 대화하고 학생들의 작업에 관심을 기울이며 수 많은 질문들을 공유하고 함께 협업할 수 있는 길을 닦고 있다. 산업과 교육 사이에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틈새’를 메우기 위해 협회가 직접 나서 ‘대학 연합’이라는 단체를 설립하기도 한다.

런던의 강력한 에너지의 발원지는 바로 이곳이다. 패션 학교가 산업과 연계하며 살아있는 교육을 제공하는 런던의 미래가 밝을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패션 교육의 현장, 그 아름다운 곳을 개발하고 진화하며 앞으로 끌고 나가는 놀라운 원동력인 세명의 패션 학과장과 깊은 대화를 나눴다. 첫 번째로 로얄 컬리지 오브 아트(Royal College of Arts)의 패션 학과장 조이 브로치(Zowie Broach)와의 대화를 소개한다.

Zowie Broach

로얄 컬리지 오브 아트의 패션계 내 행보가 심상치 않다. 패션에 특화된 학교라는 이미지보다는 ‘예술적’ 성향이 강한 학교로 명성을 쌓던 이곳에 변화를 불러일으킨 건 바로 신임 패션학장 조이 브로치이다. 한때 패션 위크과 꾸띄르를 오가며 아방 가르드 사조의 중심에서 활동하던 브랜드 부디카의 창립자이기도 한 조이. 그녀가 2년전 학장으로 발탁된 이후 로얄 컬리지 오브 아트의 패션 학사 및 석사 과정은 일부 학교 평가 리스트에서 전세계 1위를 차지할 정도! 조이를 만나기 위해 찾은 로얄 컬리지 오브 아트의 패션 석사 과정 스튜디오는 6월 초로 예정된 졸업 작품 쇼를 앞두고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래 층에는 디자이너와 바이어, 컨설턴트로 구성된 패션계 내 전문 인력이 남성복 석사 과정 작품들을 크리틱 하는 중. 올해의 기대주는 한 한국 남성복 디자이너 학생이다. 모두가 패션 컬렉션을 선보이는건 아니다. 또 다른 학생은 하나의 ‘책’으로 구성된 이야기를 통해 제품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 짧은 복도를 지나는 동안, 조이는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인 이번 졸업생들의 작업 과정과 컬렉션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5분도 안되는 그 이동 시간 동안 그녀는 온 몸으로 학생들에 대한 강력한 애정과 에너지 그리고 열정을 내뿜었다. 그녀의 권유로 결국 오후 내내 학교 안에 머물며 학생들을 만나 컬렉션 작업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고 옷을 만지고 제품을 만나는 동안 어느새 그들 안에 내제된 영감에 반해버렸다. 누군가를 아티스트로, 크레이티브한 인력으로 교육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건 본능적인 것이다. 본능적으로 크레이티브하다는 것을 알거나 혹은 크레이티브하다는 가정을 통해 ‘과정’을 끌어내는 것이 조이와 학교의 역할이다. 로얄 컬러지 오브의 패션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조이의 시각으로 소개한다.   

Q.  이곳에 착석해 본격적인 질문을 꺼내기도 전에 엄청난 서론을 들은 기분이다. 눈으로 직접 스튜디오 광경을 보고 학장인 당신을 통해 들은 이야기들로 영감 충만한 상태다. 학생들의 시각이 궁금하다. 그들은 바깥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그들에게 그곳으로 나가고 경험할 것을 권장하나?
A. 물론이다. 석사 과정에 들어오기 전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미 인턴 과정을 통해 패션 현장을 체험한다. 필수 과정은 아니고 학생들의 선택이다. 현장은 체험을 통해서만 학습될 수 있기 때문에 무척 중요한 선택이다.

Q. 학생들에게 패션 석사 과정은 어떤 목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A. 패션 석사 과정은 학생들이 현 위치와 시점을 파악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자신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독립적인 사고를 끌어낼 수 있는 작업이다. 그걸 위해 암벽 등반에 나서야겠다고 결정해도 좋다. 그 과정을 통해 디테일과 소재를 찾고 프로젝트를 발전시킬 수 있는 시작점이 되면 되는거다. 그래서 석사 과정에는 강도 높은 사고력이 요구된다. 자신의 생각을 비즈니스로 연결하는 작업과 문제를 해결하는 훈련, 그리고 더 깊이 있는 리서치를 통해 동시대적인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다.

Q. 로얄 컬리지 오브 아트만의 장점은 무엇인가?
A. 어떤 학생들은 아이디어에 뛰어나고 또 다른 학생들은 소재, 혹은 컬렉션에 뛰어나다. 로얄 (그녀를 포함한 대부분이 로얄 컬리지 오브 아트를 이렇게 부른다)에 오는 학생들이 패션 산업에는 한 사람을 위한 한가지만 존재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길 원한다. 다양한 역할과 직업들이 존재한다.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강한 자신감과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가 제공하는 것은 패션에 국한되지 않고 철학, 정치, 인문학, 예술, 산업 디자인, 사진 등 정말 다양한 분야에 대한 ‘강좌’를 통해 학생들의 시야를 넓혀주는 것이다.

Q. 말하자면 교양 강좌 같은 것인가?
A. 다양한 강좌들이 학생들을 위해 별도로 진행되기도 하지만 로얄의 특징은 다른 전공 분야와의 협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산업 디자인이나 건축, 사진 등 패션을 넘어선 예술대학 내 타 전공 학생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작업 과정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그들과 함꼐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 학생들에게 사고의 폭을 넓히기 위한 시도로 작년에는 한주간을 ‘토크, 토론, 드로잉 (Talk, Debate, Draw)’에 온전히 몰입하는 기획을 했다. 아침마다 2개의 토크가 진행되고, 2개의 토크 중간에는 토론을, 오후에는 드로잉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토크를 위해  신경 과학자, 역사가, 여성 게임 디자이너, 문화 평론가, 미래학자를 초청했고 그들은 자아에 대한 집착, 인터넷, 소셜 미디어는 물론 과학에서부터 철학과 정체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강연했다. 그리고는 원식적이며 부족적 (tribal) 행위라고 할 수 있는 드로잉을 통해 그 생각들이 손가락으로 연결되어 표현하도록 권장된다. 이곳에 오는 학생들은 ‘패션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배우고 듣고 알기 위해 오는게 아니다. 내가 세상과 패션을 통해 연결하고,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는 작업을 훈련 받는 것이다. 그게 결국 옷의 역할이니까.

Q. 졸업 작품쇼가 코앞이다.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A. 40명의 학생들이 선보이는 컬렉션에는 옷도 있지만 신발, 액세서리, 모자도 포함된다. 캣워크, 아 너무 올드패션한 단어인가,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그들이 누구인지를 소개하는 아주 훌륭한 자리가 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는 거기까지만 말하고 싶다. 쇼 이후에는 이틀간 쇼룸이 진행된다. 현업에 종사했던 디자이너로서 쇼는 쇼이고 쇼룸은 쇼룸이라는 별도의 개념이 너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작년에 급하게 하루만 시행한 후 올해에는 기간을 좀 늘렸다. 디자이너들은 누구나 자신의 작업을 제일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지만, 컬렉션을 접하는 상대가 곧바로 그것을 이해하고 당신의 세계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하는 쇼룸은 강력한 도구이다.

Q. 졸업쇼 직후 쇼룸이 진행되는건가?
A. 같은 장소에서 쇼 다음날부터 쇼룸이 진행된다. 그리고 쇼와 쇼룸 말고 별도로 진행하는 ‘아방 하르드 (avant-harde)’를 통해 음악과 무용, 움직임 등의 퍼포먼스를 통해 컬렉션을 표현하고 싶은 학생들을 위해 새로운 프리젠테이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우연히 오타로 만들어지게 된 아방 하르드는 쇼 이후 저녁에 진행할 것이다. 학생들로 하여금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위한 플랫폼이 되었으면 한다.

Q. 새로운 시도와 도전이 놀랍다.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졸업 후 다양한 도전들이 존재한다. 특히 한국 졸업생들의 경우 이토록 자유로운 교육 환경을 거쳐 발견한 정체성과 재능을 한국에서 적용시킨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여정이다. 아까 보니 한국 학생들이 꽤 많이 눈에 띄던데 어떤가?
A. 한국 학생들의 수준은 대단하다. 한국의 보수적인 시스템에 대해 들어 알고 있는데, 로얄에 오는 학생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좀 더 자유로운 사고를 통해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을 찾는데 몰입한다. 한국 학생들은 높은 창의력을 지녔다. 오히려 자신을 표현하는데 있어 언어적인 장벽을 많이 본다. 그래서 한국어가 가능한 튜터를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작업을 말로 표현하는 훈련을 가능케 했더니 놀라운 진전을 보였다. 로얄에 오는 학생들은 이곳에서 패션을 표현하는 인터내셔널한 언어를 습득한다. 패션이 변화하려면, 개인의 생각과 그 뿌리가 존재해야 한다. 벨기에 왕립학교도, 로얄도 세인 마틴과 LCF도 모두가 결국에는 세상으로 연결하는 다양한 고리 중 하나다. 유럽이 강한 이유는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돌아가 변화를 자극하고 싶지 않은가?

Q. 견고한 시스템 때문에 힘들다!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한국 뿐 아니라 중국 등 아시아에서 나와 런던의 패션 학교로 유입되고 있다. 그들은 사실 용감한 자들이고, 분명한 목적 의식을 지닌 자들일 것이다. 하지만 졸업 후 그들이 직면하는 도전의 벽은 더 높은게 현실인데 어떻게 생각하나?
A. 맞다, 동양에서 서양으로 오는 학생들은 이곳의 삶 속에서 일종의 충돌에 부딪히고 그것은 패션 안에서 강한 에너지를 형성한다. 책을 써보라고 권할 정도로 무척 흥미로운 주제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 영향을 미치라고 권장한다. 안 그러면 이 좁은 런던 땅에서 개미 군단들 처럼 치열한 영토 확장을 위해 싸우는 꼴이 되고 말것이다. 지난주 이곳에서 어떻게 캘리포니아의 죽음의 골짜기가 지금의 실리콘 밸리를 탄생시키고 애플이라는 거대 기업이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흥미진진한 강의가 있었다. 시스템 속에는 유동적인 흐름이 필요하다. 나가는 것이 있으면 돌아오는 흐름을 통해 생명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런 일은 소수의 인원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중요한건 누가 이 질문을 던지느냐이다!

Q. 맞는 말이다. 다시 디자이너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졸업생 모두가 디자이너 브랜드를 설립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정해진 인원을 뽑아야 하는 패션 석사 과정 이후 학교가 그들에게 갖는 향후 목표는 무엇인가?
A. 학생들을 보면서 매일 부딪히는 현실이다. 디자인 팀원으로 디자이너로 컬렉션 제작으로 아니면 출판이나 미디어로 가기에 훌륭한 재능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학교에서 중요한 건 학생들과 열린 대화를 통해 각자의 재능을 끄집어내는 과정이다. 석사 과정 이후 바로 직업을 찾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 없다. 분명한건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해내는 일 말고도 패션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아는 능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우리는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전수할 의무가 있다. 

Q. 졸업 후 패션계의 현실로 나와 당신이 말한 도전과 탐험을 통해 어느 정도로 재정적인 벌이가 가능한 직업에 안주한 예들을 좀 공유해줄 수 있나?
A. 패션 학장으로 합류한지 2년 밖에 안됐지만, 그것이 장기적인 우리의 목표이고 바람이다! 학장으로 취임한 후 동문들 가운데 어시스턴트 디자이너에서 시작해 랑방의 시니어 디자이너로 성장한 경우, 자신의 비즈니스를 시작한 경우, 패션 필름의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경우 등 충분히 현실 가능한 케이스들을 봐왔다.

Q. 오늘날 패션의 지나치게 빠른 속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게다가 H&M, 유니클로 같은 하이 스트릿 브랜드들이 무섭게 성장하며 패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A. 내가 학생이던 시절에는 3년은 지나야 하이 스트릿에서 디자이너 컬렉션에 ‘영감’ 받아 재생산한 룩들이 나왔던 걸 생각하면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예전에는 디자이너들의 샘플 세일에 줄서서 할인가로 득템한다던지 빈티지를 사입거나 스스로 만든 DIY를 선택했다. 패션 현실 속 중요한 것은 서로 연관성 있는 커넥션이다. 이 연결고리를 통해 상호 교환이 이뤄지고 지원과 협력이 흘러 들어가 새로운 것이 탄생할 수 있다면 유기적인 패션 흐름이 이어질 것이다.

Q. 좋다, 흥분되는 이야기다. 로얄 아카데미 오브 아트에 관심 있는 학생들은 오픈 데이를 찾으면 되는 것인가?
A. 보통 학기말과 학기초에 오픈 데이를 갖는다. 누구든지 자유롭게 와서 참여하고 이곳에 있는 학생들과 만나 이야기하기를 권하고 싶다. 지난번에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이번에는 좀 더 계획적으로 준비할 예정이다. 하지만 오픈 데이가 아니더라도, 런던에 있다면 그리고 학교를 방문하고 싶다면 자유롭게 학교로 연락하면 시간을 어레인지해줄 수 있다. 자신을 위해 맞는 답변을 찾고자하는 투지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그쯤이야 쉽게 해줄 수 있다.

글/ 여인해
사진/ RCA제공

이 글은 <Dazed&Confused> 코리아의 2016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