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3인방, 로빈 데릭 (Robin Derrick)

소통하며 진화하는 아이콘, 로빈 데릭

스프링 (Spring) 의 이그제큐티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로빈 데릭. 그의 직업은 뉴욕의 랜드마크 건물과 런던 스튜디오 빌딩을 지닌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스프링을 통해 다양한 럭셔리, 패션, 뷰티 컨텐츠를 제작하고 유통하는 일이다. 스프링에 합류하기 전에는 19년동안 영국 보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하며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만한 아이코닉한 커버 및 화보 촬영 작업을 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 세인트 마틴 (당시에는 ‘센트럴’이라는 글자가 없었다고 강조하는 로빈!) 재학 시절 우연히 테리 존스를 만나 아이디 매거진의 초청기 아트 디렉션에 참여했고, 이후 더 페이스 매거진의 아트 디렉터를 거쳐, 이탈리아 엘르를 시작으로 러시아 보그와 최근 포터 매거진 (네타포르타에서 출시)을 런칭하기까지 그는 오랜 시간 매거진과 인생을 함께 걸어온 인물. 로빈이 돌연 잡지 세상을 떠나 스프링이라는 에이전시에 합류하기까지 그는 어떤 아이코닉한 작업들을 진두지휘했다. 그 어느때보다 극심한 지각 변동을 겪는 지금 그는 패션계 안에서 무엇을 소통하는 중일까. ‘패션 소통’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듣기 위해 진행한 세션, 그가 거친 직업들에 대해 듣기 위해 스프링을 찾아가 가졌던 또 다른 인터뷰, 그리고 마지막엔 전화로 한차례 더 대화를 연장하기까지 3차례에 걸쳐 그와 나눈 이야기를 소개한다.

Dazed & Confused: 당신을 알게 된건 우연히 참석한 당신의  ‘패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명쾌하고 유쾌한 세션을 들으며선부터지만 알고보니 당신은 이미 너무 잘 알려진 아이코닉한 잡지 커버 및 화보는 물론 광고 캠페인을 진두지휘한 주인공이더라. 지금은 스프링의 이그제큐티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 중이다. 이곳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Robin Derrick: 우리는 이곳을 ‘통합된 럭셔리 커뮤니케이션의 미래’라고 부른다. 우리의 모토는 ‘크리에이티비티를 연결한다’인데, 보시다시피 스튜디오 빌딩으로 구성된 이곳에는 다양한 촬영이 이뤄지고 있다.

Dazed & Confused: 뉴욕 패션 위크 기간 중에 뉴욕에 있는 스프링 빌딩은 패션쇼 장소가 된다고 들었다. 캣워크와 라이브 스트리밍은 물론 광고 캠페인과 매거진, 웹사이트, 소셜 미디어, 필름 등 방금 에이전시 소개 영상을 통해 보여준 작업과 클라이언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Robin Derrick: <보그> 시절부터 스프링과 작업하며 영국 <보그> 디지털 웹사이트와 앱 플랫폼을 런칭했고, 미국 <바자>의 리브랜딩 작업,  <포터>매거진을 창간했다. 톰 포드의 웹사이트 런칭을 맡았고 웹사이트에 올라가는 모든 제품과 스틸 라이프 사진 촬영이 이곳에서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다. 얼마 전에 런칭한 크리스토퍼 케인의 웹사이트도 우리가 진행했는데, 이건 이커머스 기업 파패치의 ‘화이트 라벨 (기본 상품 위에 디자이너가 브랜딩하는 작업을 말하는데, 웹사이트의 기본적인 기술 구성 및 건설에 대한 작업)’ 서비스 중 하나다. 그 외에도 굵직한 브랜드들과 다양한 작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스프링은 세계적인 규모의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다.

Dazed & Confused: 아까 얼핏 보니 포토그래퍼 솔베 선즈보와의 작업도 흥미로운 것 같았다. 그건 무엇인가?
Robin Derrick: ‘하우스’의 프렌즈인 솔베의 잡지 화보 촬영과 앱 제작 그리고 뉴욕에서의 거대한 행사에 도움을 줬다. <월페이퍼> 매거진에서 뉴욕 스프링 빌딩을 소개하는 12페이지 기사가 나가기도 했는데, 이곳에는 뉴욕 패션 위크는 물론 미국패션디자인협회(CFDA)의 시상식과 미국에이즈연구재단(amfAR)의 기금 모금 갈라 행사, 그리고 트라이베카 영화제도 치뤄진다. 지금은 빌딩 내 멤버쉽 클럽을 통해 작업 공간을 론칭할 예정이다. 스프링에서 이런 작업을 하고 있다.

Dazed & Confused: 영국 <보그> 시절의 작업만큼 화려한 대단한 소개다! 근데 정말 궁금하다. 왜 그토록 오랫동안 함께한 매거진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정착한건가?
Robin Derrick: 나는 <보그>에서 일했고 내 배경은 ‘인쇄물 (print)’이다. <보그>에서 일하던 당시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함께 데이비드 & 빅토리아 베컴의 언더웨어 협업을 론칭하는 필름을 제작한 적이 있다. 벌써 8년전의 일인데, 유튜브에 올린 이 영상물이 200만 달러를 투자해 제작한 아웃도어 캠페인보다 더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더 많은 ‘뷰’를 기록했다. 미스터 알마니는 “도대체 그 영상을 클릭해서 본 그들은 누구란 말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지금까지도 유효한 좋은 질문이다! 이 현상을 보고 세상이 변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Dazed & Confused: 그래서 변화하는 세상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나?
Robin Derrick: 다음 시대를 이끌어갈 ‘크레이티브한 작업’은 엄청난 양의 ‘콘텐츠’가 중심이 되고 계절별로 돌아가던 매거진과 광고 캠페인 주기가 ‘매일’로 바뀌면서 속도가 빨라져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래서 스프링에서는 클라이언트와의 회의 직후 "지금 바로 인스타그램 작업을 시작하자"라고 말하며 스튜디오로 들어가는 일이 빈번하다. 우리는 지금 콘텐츠가 주도하는 커뮤니케이션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스프링이 하는 일이다. 물론 나 혼자만의 작업은 아니다. 나는 전체 에이전시의 크리에이티비티를 리드하며 빠른 속도의 커뮤니케이션과 호응을 유도하는 컨텐츠를 유망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과 함께 제작하고 있다.

Dazed & Confused: 매거진을 통해 제작하던 콘텐츠와 구체적으로 무엇이 다른건가?
Robin Derrick: 훨씬 더 방대한 콘텐츠를 생산하는데, 대부분 ‘반응을 요구하는 (call to action)’ 콜링이 있다. 질문이 담겼거나, 투표를 요구하거나, ‘좋아요’를 유도하는 등 필름 스트리밍에서부터 소셜 포스트에 이르기까지 참여를 요구하는 콘텐츠를 제작한다. 또 매거진의 경우에는 고정된 특정 고객들인 반면 소셜과 디지털 콘텐츠는 늘 새로운 관중을 모으는 형식이다. 한 가지를 더 짚자면 많은 이들이 소셜과 디지털을 동일한 단어인 양 사용하는데 둘은 분명 다르다. 소셜은 소셜 플랫폼이라는 구체적인 공간을 뜻한다. 난 소셜이 좋다. 사람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어 좋다. 매거진 시절 우리가 받은 유일한 피드백은 사진가의 에이전트로부터 듣는, 별 특별할 것 없는 "좋아요"라는 멘트 뿐이었으니까.

Dazed & Confused: 센트럴 세인트 마틴 시절 얘기를 좀 해보자. 학창 시절 어땠나?
Robin Derrick: 우리 때는 ‘센트럴’ 없이 그냥 세인트 마틴이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입학 후 첫 학기에 그래픽 디자인 전공이던 나는 패션과 여학생들의 미모를 보고 반한 후 무조건 그들과 작업해야겠다고 마음먹고 패션쇼나 작품 사진을 찍어주며 자연스럽게 당시 <i-D> 매거진을 런칭한 테리 존스와 작업하게 됐다. 세인트 마틴 ‘인 하우스 매거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으니, <i-D>에는 늘 세인트 마틴 관련 인물들의 사진과 글이 실렸고, 난 매거진과 사랑에 빠졌다. 테리의 집에 남는 방을 개조해 사무실로 쓰던 초창기 시절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곳에서 마돈나와도 미팅했다! 잡지라는 환경에 있다 보면 게을러진다. 사진가, 메이크업 아티스트, 스타일리스트, 모델 등 세상의 모든 자원이 알아서 나에게 찾아온다. 당시는 존 갈리아노가 세인트 마틴의 핫한 스타 디자이너였고, 본머스 대학을 졸업한 닉 나이트가 포트폴리오를 보내와 함께 작업을 했다. 우린 함께 작업하는걸 당연하게 여겼고, 누구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함께 촬영하는 사이가 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Dazed & Confused: 하하 이제 겨우 스프링에 아이디 매거진 얘기를 했을 뿐인데 흥미진진하다. 그 다음에 어떻게 <더 페이스>에 합류했나?
Robin Derrick: 그래픽 디자인 전공이던 나는 <i-D>와의 작업을 토대로 졸업 작품을 준비했고, 쇼에 온 <더 페이스>의 당시 아트 디렉터 네빌 브로디가 명함을 두고 갔다. 당시 <더 페이스>의 영향력은 대단했는데, 모두가 그들을 카피하던 때, 유독 <i-D>는 우리의 것을 즐기느라 바빴고 카피하지 않는 유일한 매거진이었다. 작업을 보고 네빌이 러브콜을 보내 어시스턴트로 일을 시작했다. 매거진 만드는 일에 푹 빠져 지내다 풀타임 자리에 앉았고 자연스럽게 그래픽 디자이너가 아닌 아트 디렉터가 되었다. 난 또다시 매거진과 사랑에 빠졌다. 파트 타임으로 일하던 네빌은 매거진 레이아웃과 전체 디렉션에 대한 지시를 내린 후 떠났고, 사진가들과의 소통은 내 몫이 되었다. 그때 작업한 사진가가 마리오 테스티노와 닉 나이트 등이었는데, 우린 모두가 훗날이 되서야 그때의 작업이 얼마나 아이코닉했는지 실감했으니 당시에는 그저 재밌게 매거진을 제작하는데 여념이 없을 뿐이었다.

Dazed & Confused: 그리고 <보그>에 합류한건가?
Robin Derrick: <보그>에 가기까지 아직 좀 갭이 있다. <더 페이스>에 있는 나에게 카를라 소짜니가 이탈리아 <엘르> 론칭을 제안해 영국을 떠나 그녀가 편집장, 24세의 내가 아트 디렉터가 되어 잡지를 만들었다. 난 닉 나이트에게 커버 촬영을 맡겼고, 마리오 테스티노는 데뷔 화보를 촬영했으며, 카를라가 스티븐 마이젤과 브루스 웨버를 동원해 주옥같은 사진들을 만들었다. 하하, 근데 황당하게도 과다한 비용이 문제가 되어 3개월만에 우린 모두 해고됐다. 한가지 더! 1987년, 카를라와 내가 이탈리아 <엘르> 창간 작업을 하는 동안 프랑카 (카를라의 동생)는 뉴욕의 젋은 아트 프로듀서 파비온 바론을 데려와 아트 디렉터로 내세워 이탈리아 <보그>를 론칭했다. 이후 잘 알려진대로 둘은 승승장구하며 화려한 경력의 시작 테이프를 끊었으니 내가 파비온에게 질투를 느끼는 것은 모든걸 통틀어 딱 한번, 저 때의 서로 상반된 론칭 경험이다.

Dazed & Confused: 하하. 이탈리아 <보그>의 런칭 뒤에 <엘르> 런칭 팀의 그런 비화가 있는지 몰랐다.
Robin Derrick: 어쩌다 물 먹은 꼴이 된 나는 이후 프랑스 <글래머>를 비롯해 일본과 스페인을 오갔고, 나의 스튜디오를 운영하다 영국 <보그>의 콜을 받고 영국으로 귀국했다. 이후 알려진대로 19년간 아트 디렉터로 일했고 그 때 러시아 <보그> 창간을 하기도 했다.

Dazed & Confused: 당신의 보그 시절 작업들을 보면 정말 아름답다. 예전에 포토그래퍼 솔베가 한 얘기 중에, '이런 사진들을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아느냐'는 대목이 생각난다. 작업 과정과 후반 작업까지 생각하면 하나의 예술 작품 수준이다! 하지만 개인이 촬영한 사진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하루 아침에 유명해져 전세계를 강타하는 이 시대 젊은이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Robin Derrick: 지금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큰 논점이다. 린다 에반젤리스타나 헬레나 크리스틴슨 등 빅 모델들의 이름을 구글에 검색해보면 스티븐 마이젤, 피터 린드버그, 브루스 웨버 등이 촬영한 대단한 사진 속 그녀들의 완벽하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된다. 글렌 루츠퍼드가 촬영한 모델 앰버 발레타의 몽환적인 프라다 캠페인 같은 아이코닉한 사진을 기억하나. 1998년의 사진이다. 하지만 지금 가장 핫하다는 지지 하디드를 검색해보면 빅토리아 시크릿 쇼나 그녀의 셀카 사진 아니면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 사진이 대다수 쏟아져나온다. 위에서 언급한 사진들을 촬영하고자 하는 열망과 열정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이미지를 소비하는 방식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속도는 빨리지고, 우리는 매일 단위로 콘텐트를 흡수한다. 고백하건데, 나 또한 6장의 사진을 10만 달러에 촬영한 후 600시간을 들여 리터칭하는 작업이 지치고 재미없다. 나 역시 모던한 시대에 맞는 거대한 커뮤니케이션에 빠져 있다.

Dazed & Confused: 빠르게 소비되고 초단위로 새로운게 나오는 그 커뮤니케이션의 어떤 점이 좋다는 건가?
Robin Derrick: 관중들이 참여한다는 사실과 그 방식에 있어 민주적이라는 것! 위대한 사진으로 남을만한 유산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것 같지만 말이다.

Dazed & Confused: 흥미롭지만 어려운 얘기다. 그래도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라는건 인정한다. 그럼 오늘날의 옴니 채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은 무엇일까?
Robin Derrick: 20대의 디지털에 네이티브한 젊은 전략가에게 이 질문을 한다면 그들은 ‘스내퍼블’한 콘텐츠를 제작해 스냅챗에 올리고, 인스타그램 켐페인을 진행하고, 트위터를 통해 트래픽을 유도하겠다고 하겠지. 하지만 이런 얘기는 모두 메카니즘에 관한 거다. 나의 관심은 ‘스토리’이고 ‘콘텐츠’다. 내가 원하는건 얼마나 참여를 유도하는, 흥미로운, 관련있는, 진실성 있는 콘텐츠이냐는 것 뿐!

Dazed & Confused: 새로운 콘텐츠는?
Robin Derrick: 태양 아래 더 이상 새로운 건 없다. 우리는 언제나 섹스, 사랑, 음식 등 그게 뭐든간에 똑같은 것에 관심을 가져왔다. 20세기초의 매거진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매거진은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관심사는 언제나 ‘인간적이고 글로벌’할 것이다.

Dazed & Confused: 그럼 당신을 흥분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Robin Derrick: 자라를 소유한 인디텍스와 미팅을 한적이 있는데, 흥미로운 얘기를 했다. 그들의 글로벌 매장 전략 안에는 ‘지역적 트렌드’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핑크색이면 핑크고 네이비 컬러면 네이비지, 그들은 패션 트렌드 속에 지역적 차별화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척 흥미로운 얘기다. 지나치게 글로벌화시키는 비상식적인 전략일까? 그럴수도 있다, 하지만 뭔가 그 안에 긍정적이고 인간에 대한 진실을 담은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본 것 같았다.

Dazed & Confused: 당신에게 아이코닉한 작업은?
Robin Derrick: 아이코닉한 작업을 생각하면 웃긴게, 당시에는 누구도 모르고 나중에서야 깨닫는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더 페이스> 매거진에서의 모든 작업은 다 아이코닉했다고 생각한다. ‘페이스 패션’으로 대변되는 모든 것이 아이코닉하다. 나도 1987년 밀라노로 이사가고 난 후 그곳에서 처음으로 모두가 우리를 따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우리가 한 작업이 아이코닉했다는 걸 깨달았다. 개인적으로는 이탈리아 <엘르>를 론칭하며 한 작업에 애정이 가지만 워낙 짧은 기간이었고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아이코닉하다는 표현은 부적합할수도 있다. 아르마니를 위한 데이빗 베컴과의 작업은 축구선수로만 유명한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 파격적인 행보였다. 우리도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랐는데 머트 & 마커스가 촬영한 사진을 보고 감이 왔다. 그 작업은 패션계에 중요한 기록으로 남기에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 그외에도 <보그>를 위한 크리스마스 특별호 커버들, 예를 들어 골드나 미러 커버 그리고 케이트 모스 커버들은 대단한 작업이었다. 런던 내셔널 포트릿 갤러리에서 열린 <보그 100주년> 전시를 통해 당시의 작업들을 다시 보니 얼마나 아이코닉한 사진들이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Dazed & Confused: 계속해서 변화하는 패션계에 대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이미지로 작업되는 광고를 소비하는 방식이 변화하는 지금, 광고를 제작하는 브랜드들에게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인가?
Robin Derrick: 패션 커뮤니케이션의 역사를 돌아보면 1920년대와 30년대를 넘나들며 잡지와 프린트물이 탄생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에 허우적대고, 전쟁 후유증을 겪는 동안 패션은 사실상 가진자들의 특권의식과 결부된다. 그러다가 1950년대 미국의 성장과 60년대 사진 기술의 발달이 혁신을 불러오고, 우리는 지금 이 모든 속도가 더 빨라지는 흐름 안에 있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 손에 쥐어지는 핸드폰이라는 작은 ‘장치’를 통해 전세계에 어떤 사진이나 영상을 전파할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세계를 향해 영상물을 라이브로, 그것도 컬러로 전파하려면 BBC 같은 방송 매체이거나 수백만장자의 기업에서만 가능하던게 바로 15년전의 이야기다. 가장 큰 도전은 어마하게 빠른 속도로 소통되는 바다 한 가운데서 어떻게 돋보이고 사람들의 눈에 잘 띌 수 있느냐는 것이다.

Dazed & Confused: 정말 다양한 주제를 넘나드는 긴 대화와 추가적으로 내준 시간에 감사하다.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의 다음 작업은 무엇인가?
Robin Derrick: 현재 뉴욕의 CFDA와 함께 다음 세대 패션 커뮤니케이션과 패션쇼에 대한 구상을 연구 중이다. 빅 플레이어 브랜드들과 함께 이 기획을 놓고 의견을 교환하며 인프라 구축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소셜 미디어의 출현과 진화 이후 패션쇼는 패션계 내 가장 오래된 ‘구식’ 시스템이라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하지만 바이어와 프레스에게 공개되던 쇼를 대중에게 오픈하고 쇼핑이 가능하게 한다는 것은, 제품 생산 및 제작 사이클의 변화는 물론 콘텐츠 유통 모델에 큰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이 일을 진행하고 결정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개입되어야 하며 이건 장기적인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기획과 구상이 앞으로 잘 진전한다면 2017년 2월 뉴욕 패션 위크 기간 중에 어떤 플랫폼을 런칭할 수도 있다. 아직은 아무것도 알 수 없고 보장할 수 없지만 중요한 프로젝트다. 

글/ 여인해

이 글은 <Dazed & Confused> 코리아의 2016년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