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이라는 문화, 런던 패션 위크 2016 가을 겨울 컬렉션 리뷰

시끌시끌했던 패션 위크 기간이 막을 내리고 모든 오더북이 마감된 한가로운 런던. 패션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뒤로하고 봄 바람이 살랑거리는 지금은 바야흐로 각종 문화 공연들이 쏟아져 나오는 문화 성수기 시즌이 도래하는 때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양한 장르의 문화를 즐기는 런던을 보면 이 도시가 왜 그토록 끊임없이 창의적인 에너지로 넘치는지 짐작이 가능해진다. 대중은 문화를 즐긴다. 그리고 하나라도 더 알고 체험하는 가치를 존중한다. 그래서 이 도시에서 패션은 즐기고 체험하는 문화로 존중 받는다. 그리고 디자이너들은 이 도시가 주는 끊임없는 영감 요소들을 통해 그렇게 또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중이다. 런던 패션 위크는 돌고 도는 패션 트렌드를 표방하는 곳이 아니다. 패션을 문화로 즐길 줄 아는 대중을 향한 소통의 방식이다.

2월에 열린 런던 패션 위크 2016년 가을/겨울 컬렉션의 시작을 앞두고 글로벌 패션계는 알렉산더 맥퀸의 런던 복귀에 흥분했다. 맞다, 그의 컬렉션이 런던에 돌아왔다. 그의 사후 처음이다. 그리고 사라 버튼은 능수능란하게 또 한번의 멋진 컬렉션과 쇼를 선사해주었다. 그녀가 임신 중이라 모든 인터뷰와 백스테이지에 대한 철통보안이 이어진 쇼의 귀환과 함께 런던은 그의 이름을 두 팔 벌려 반갑게 맞아줬고 그를 추억하며 기억했다. 영국이 낳은 또 다른 대가 버버리의 쇼도 멋지게 치뤄졌다. 가수 제이크 버그의 아름다운 피아노 반주와 노래 선율에 따라 남성복과 여성복 컬렉션 행렬이 이어졌고, 이 룩들은 ‘디지털 퍼스트’를 지향하는 브랜드의 철학을 고려한 (?) 새로운 평면의 구불구불한 좌석 배열에 착석한 관중들을 매료했다. 일직선의 캣워크 탓에 높은 곳 뒷열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디테일을 덕분에 잘 관람할 수 있었던 유쾌한 쇼. 쇼 직후 디지털 커버리지도 단연 우세했다. 컬렉션은 에메랄드 빛깔의 잔잔한 다이아몬드 패턴 드레스에 넓은 카라 코트를 매치한 에디 캠벨에서 시작해 중간에 간간히 남성복 룩을 포함하고 있었고, 이어서 56번째 룩까지 이어진 강렬하게 이어진 한편의 대서사시였다. 앞으로 버버리의 여성복 단독 쇼는 더 이상 없을 예정이다. 버버리는9월부터 남녀 컬렉션을 완전하게 통합시킨 쇼를 시작으로 일년에 두번, 본 시즌 쇼를 진행하겠다고 선언했으니까.

이번 시즌에는 슈즈 브랜드 샬롯 올림피아의 첫 캣워크 쇼가 있을거라는 소식에 모두가 들썩였고, 그녀는 과연 기대에 부흥하는 쇼를 선사했다. 미끈하게 맨살을 드러난 모델들의 팔, 다리를 장식한건 샬롯의 이번 시즌 컨셉인 40년대 공상과학물에 영감을 받은 모던 빈티지 쯤으로 표현될만한 블링블링한 가방과 슈즈 컬렉션. 그녀의 시그니쳐 플랫폼 힐은 각종 광물을 연상시키는 컬러 팔레트와 보석 장식을 입고 캣워크에 걸맞는 완성도 높은 룩을 선보였다.

 소호 한복판, Brewer Street Car Park의 LFW 본부. 대부분의 캣워크 쇼는 여기에서 진행된다. ©BFC 제공

소호 한복판, Brewer Street Car Park의 LFW 본부. 대부분의 캣워크 쇼는 여기에서 진행된다. ©BFC 제공

여기서 잠깐. 뒤늦게 찾아온 겨울 추위에 두꺼운 외투 (함박눈으로 뒤덮인 뉴욕만큼은 아니었지만)로 한껏 감싸고 제 시즌 컬렉션이라고 해도 무방할 캣워크 행렬을 위해 몰려온 인파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주요 글로벌 프레스단과 바이어단 그리고 인플루엔서로 통합 지칭되는 연예인 이하 디지털 유명 인사 군단들이었다. 그리고 쇼장은 당연히 런던 곳곳에 분포되어 있었다 (메인 쇼장인 소호의 주차장 캣워크를 이용하는 브랜드들도 많다). 그런데 런던이란 도시는 이 런던 패션 위크는 패션계 간판 행사에 눈살을 찌푸리며 패션 엘리트만을 위한 행사라고 비아냥 거리지 않는다. ‘초대장 지참한 자에게만 입장이 허용’되는 행사지만 매일같이 일간지 앞면 아니면 중간 스프레드 아니면 특집 매거진 등의 형식으로 패션 위크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열심히 소식을 전한다.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고 좋아하는 소식이니까. 이번 시즌에는 심지어 야외 디지털 빌보드 회사인 오션과의 협업으로 영국 전역에 걸쳐 60개의 스크린을 통해 런던 패션 위크 하이라이트 영상이 실시간으로 방송되기도 했을 정도!  

런던 패션 위크를 꾸준히 찾는 의리파 혹은 열정파가 있다면 간혹 건너뛰거나 아니면 찾을 수 없는 실리파 혹은 현실파들도 있다. 대부분 파리에서 만나게 되는 (거두절미하고 파리가 패션의 종주국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기에) 후자들과의 대화는 대개 ‘현장 반응’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물론 패션 가쉽으로 시끄러운 한주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현장 반응이란 누가 무엇을 어떻게 새롭게 재밌게 소개했는가에 대한 이야기. 그러니까 진정한 스토리텔링이자 입소문! 그래서 런던을 들썩이게 한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먼나라 이야기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런던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보자.

샬롯 올림피아의 쇼는 성공적이었다. 기상천외한 쇼 아이디어로 관중에게 행복 바이러스를 발사하는 가방 디자이너 안냐 힌드마치에 이어 액세서리 디자이너로서 손색없는 멋진 쇼였으니까. 멀버리도 컴백 무대를 통해 무사 귀환했고, 여행 가방 글로브 트로트도 아름다운 글스 여행지를 일러스트한 낭만적인 콜라보레이션 레인지로 패션 위크 블링블링의 대명사 아쉬시는 그런 의미에서 형형색색 아프로 머리를 연상시키는 가발로 시선 집중에는 성공했지만 컬렉션은 심심해서 아쉬었던 쇼. 그래도 지난 시즌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관중을 매료한 비즈 셔츠와 드레스 시리즈 그리고 비즈로 수 놓인 데님을 선보인 스타일리스트 안나 트레베라얀 (@annatrevelyan)이 계속해서 스타일링을 맡고 있으니 다음 시즌을 기대해볼만하다. 그녀를 모르다면 당장 주목할 것을 강추. 안나와 작업하는 이들은 예를 들어 진정한 오타쿠 문화를 지향하는 핑크빛 디자이너지만 의외로 제법 입을만한 옷들을 선보이며 건강하게 성장하는 라이언 로 (@ryanlostudio) 라던지, 몸매를 여지없이 드러내는 바디수트 아니면 과장된 기장과 실루엣으로 몸을 휘감는 것 처럼 보이지만 알고보면 철저히 테일러링에 기초한 룩에 입으면 편하기까지 한 마르타 자쿠보우스키 (@martajakubowski) 같은 디자이너들이 있다.

이들을 지지하는 것은 비단 안나 만이 아니다. 미국 보그의 치프 패션 크리틱이자 영국 패션 협회 신인 디자이너 홍보 대사 및 뉴젠 심사위원장인 사라 무어는 이들의 든든하고도 무서운 조력자이다 (모두 그녀가 무섭다고 난리다). 두 사람을 포함해 올해도 톱숍 후원의 뉴젠 (사라 무어가 십수년전 당시 톱숍의 제인 셰퍼드슨과 함께 머리를 맛대고 기획했기에 지금의 뉴젠이 있는 것이다) 수상자인 포스틴 스타인메츠, 몰리 고다드, 클레어 바로우, 애슐리 윌리엄스, 새이디 윌리엄스와 ‘주목할만한 디자이너’로 손꼽힌 로베르타 아이너까지, 런던 패션 위크의 진정한 하이라이트는 이들 젊은 디자이너들의 작업들이었다.

포스틴 (@faustinesteinmetz)은 아티장이다. 그녀의 ‘카페트 코트’는 일일이 수공 작업을 거쳐 직접 만든 카페트로 실루엣을 완성한 것이고, 네온 컬러와 파스텔 피치 톤의 울을 일일이 풀어해친 코트와 팬츠 시리즈 역시 시간과 공을 들인 수공 작업이다. 포스틴은 이 아름다운 컬렉션을 구부리거나 까치발을 하거나 고개를 갸우뚱해서 보도록 관중을 유도하는 박스 속 프리젠테이션으로 선보였다. 그녀의 이야기는 전시즌 그리고 전전시즌에 이어 옷이 만들어지고 완성되는 과정에 주목한다. 그래서 그녀의 옷은 아방가르드적이다. 왜냐면 한계를 계속해서 도전하고 넘나들며 도발을 꾀하니까.

도버 스트릿 마켓의 두 부부 레이 가와쿠보 여사와 에드리안 조프 사장 덕에 전세계 주요 도시의 주목하는 디자이너로 떠오른 몰리 고다드 (@mollymgoddard)는 인상파 작품 속 발레리나를 연상시키는 투투 드레스를 이번 시즌 코듀로이, 타피타 그리고 작업복 프레빅 등으로 선보이는 시도를 서슴치 않았다. 프리젠테이션은 그녀 특유의 유쾌하고 발랄한 느낌 그대로 이어졌다. 몰리의 언니이자 떠오르는 스타일리스트 알리스 고다드가 이번 시즌에도 스타일링을 맡아 런던 스트릿에서 캐스팅한 모델들을 내세워 새로운 룩들을 선보였다.

새이디 윌리엄스 (@sadiewilliams_uk)의 첫 프리젠테이션에 대한 호응은 대단했다. 아티스트 마를란드 바쿠스의 손길로 완성된 세트는 새이디의 부모가 젊은 커플이던 당시 즐기던 스키 여행을 떠올리며 재현한 풍경. 유럽 빈티지 스키웨어에서 영감을 얻은 인타르시아 메리노 울 니트, 실크 스크린 프린트 스키 셔츠와 매칭한 새이디의 시그니쳐 A 라인 엠보스 스커트와 오묘한 조화를 이뤘다. 첫 프리젠테이션의 성공적인 반응에 이어 파리에서 진행된 런던 쇼룸 기간 중에도 그녀의 컬렉션은 계속해서 찬사를 받았다는 후문.

루루 케네디가 이끄는 패션 이스트는 패션 전문가들로 구성된 패널들이 심사를 통해 신인 디자이너들을 선별하는 신인 디자이너 등용문이다. 이번 시즌 4명 디자이너 A.V. 로버트슨, 캐이틀린 프라이스, 미미 웨이드, 그리고 리챠드 말론의 컬렉션은 저마다 다른 개성이 돋보인다. 이번 시즌 데뷔한 미미 웨이드 (@mimi.wade)는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 입구에 LA에서 볼법한 프린티드 슬립 드레스와 바이커 재킷 시리즈에 모피 트리밍을 더한 강렬한 첫 컬렉션을 선보이며 주목을 끌었다. 리챠드 말론 (@richardmalone)은 꾸띄르 테크닉인 파이핑으로 몸매를 조이는 대신 아름다운 곡선들을 만들며 니트 혹은 울 소재를 이용한 페미닌한 실루엣을 선보인다. 이번 시즌 리챠드는 워킹 클래스의 스트릿웨어와 작업복 등 지극히 남성적인 문화코드를 그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여성복 컬렉션을 선보였다.

런던의 대가들이 패션 위크 스케줄의 중심부를 묵직하게 잡아주고 있는 동안 신인 디자이너들은 런던에서만 볼 수 있는 창조적인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리고 바로 얼마전까지 이 신인 디자이너 대열에 있던 시몬 로샤, JW 앤더슨은 물론 한국계 J JS Lee와 유돈초이까지 성숙한 디자이너 그룹이라는 기분 좋은 계보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피터 필로토와 에르뎀, 그리고 올해 보그 펀드 수상자로 현금 지원 혜택을 누리게 된 슈즈 디자이너 소피아 웹스터와 그녀를 키운 사수 격의 니콜라스 커크우드, 맥퀸 계보를 잇는 천재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케인과 이번 시즌에는 파리에서 조용히 쇼룸만 운영한 LVMH 전년도 우승자 토마스 테이트까지. 런던에는 제법 탄탄한 중간 그룹이 존재한다. 조용히 자신들만의 디자인 철학을 꿋꿋이 따르며 지지층을 이끌고 가는 프린 같은 디자이너도 있다. 부부 디자이너 프린은 이번 시즌에도 90년대의 그런지 룩에 로맨틱한 요소들을 곳곳에 넣은 시적인 컬렉션으로 캣워크를 아름답게 수 놓았다. 이번 시즌 그들의 영감을 자극한 건 시인 에딧 시트웰과 뮤지션 런어웨이 그룹 등이었고, 그들의 아트북을 켜켜히 쌓아놓은 초대장 사진으로 그들을 추억했다.

디자이너 하이라이트를 꼽자면 러시아계 나타샤 징코 (@natashazinko)의 우아한 실루엣이 아름다웠던 살롱쇼와 뭔가 침울한 무드 속에서 그녀만의 페미니즘한 옷을 선보인 피비 잉글리쉬 (@phoebeenglish), 늘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되 차분하게 다음 발걸음을 뗄줄 아는 마커스 루퍼 (@markuslupfer, 그러고보니 나타샤 징코의 ‘데이지’ 사랑이 이번 시즌에는 마커스에게 옮겨왔다), 그리고 얼핏 보기에는 로맨틱 잉글리쉬 빈티지 같지만 실루엣과 페브릭 초이스로 모던함을 잃지 않았기에 박수 갈채를 받은 뉴페이스 스티븐 타이 (@steventaistudio)도 빼 놓을 수 없는 이름들이다.

런던 패션 위크는 막을 내렸다. 패션 피플들은 그 크레이티브한 행위에 박수 갈채를 보내거나 혹은 아쉬움을 표했고, 대중은 그 전문가들의 손길을 타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전파된 패션 이야기들을 소비했다. 하이스트릿 패션은 캣워크에서 영감을 얻은 컬렉션을 곧바로 재생산해서 찍어낼 예정이고 신인 디자이너들은 그러든 말든 오더북대로 착실하게 배송하기 위한 다음 단계들을 밟아나갈 것이다. 빅네임과 성숙한 디자이너 그룹은 전세계 직영 매장이나 백화점 혹은 이커머스 쇼핑몰에 발빠르게 컬렉션이 판매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췄을 것이다.  한 시즌이 끝나고 잠시 휴식하는 사이 이번에는 2017년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 준비가 한창이다. 패션은 그렇게 돌고 돌아간다. 그리고 이번에는 디자이너들이 다음 영감을 찾아 거리로 나설 차례다. 이 도시가 창조해내는 또 다른 문화들을 즐기거나 탐구하거나 혹은 재발견하기 위해서! 

ㄹ글/ 여인해
ㅇ이 글은 <Dazed & Confused> Korea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