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mas Tait 토마스 테이트 인터뷰

토마스 테이트는 올해 처음 런칭한  LVMH 상 1회 수상자이다. 지난 5월28일 수상자 발표 소식에 패션계는 그를 주목했고, 제각기 다른 반응과 의견을 쏟아냈지만 토마스는 런던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이름! 센트럴 세인 마틴 석사 과정 최연소 졸업생 (학교에 지원할 당시 20세)이고 졸업 작품 쇼를 마친 후  2010년 가을/겨울 컬렉션으로 런던 패션 위크에 데뷔한 후 2010년 도체스터 컬렉션 패션 상의 1회 수상자를 거쳐 영국 패션 협회의 뉴젠 상을 (New Generation Award: 톱숍과 영국 패션 협회가 공동으로 수상하는 신인 발굴 프로젝트로 알랙산더 맥퀸에서 크리스토퍼 케인까지 전 수상자 계보가 화려하다)  연속적으로 받으며 런던 패션 위크에서 활동하고 있다. LVMH 상으로 30만 유로 (한화로 약 4억2천만원)의 수상금과 1년동안 LVMH 그룹 전문가들의 멘토링을 받게 된 토마스 테이트. 나지막한 목소리로 조용조용 자신을 소개하는 토마스 테이트를 센트럴 세인 마틴 대학의 해크니 캠퍼스에서 만났다. 하나를 물으면 백마디를 쏟아내는 토마스. 26살의 그는 창의적인 디자인 작업과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비지니스로 성장시키는 과정 모두를 고민 중이고 다음 단계를 향해 차근 차근 걸어나가고 있다. 그가 <보그 코리아>에 ‘영 디자이너’로서의 삶에 대해 오랫동안 내면에 쌓아두고 또 주변과 소통하던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Vogue Korea: 얼마전 파이낸셜 타임즈에 당신이 기고가가 되어 쓴 기사를 봤다. 영 디자이너로서의 고민과 생각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비즈니스 부분까지 다룬 인상 깊은 글이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당신은 누구인가?
Thomas Tait: 하하. FT 의 글은 나에게도 특별한 경험이다. 캐나다 일간지도 아닌 FT에 내 이름을 건 기사가 나가다니. 꿈만 같은 일이다. 내 이름은 토마스 테이트이고, 나는 여성복 디자이너다. 캐나다 퀘벡에서 태어나 몬트리올에서 자랐고, 고등학교 때 마지막 순간에 패션의 길을 선택하게 되어 캐나다의 라 살 컬리지 (La Salle College) 에서 패션 전문 기술을 배웠다.

Vogue Korea: 패션 전문 기술이라면?
Thomas Tait: 옷을 제작하고 만드는 과정, 소재에 대한 연구, 의상의 역사 등을 다루는 전공인데 캐나다는 패션 제작 산업이 발전되어 있다. 이 분야로 진출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주는 대학인 셈이다. 하지만 크리에이티브한 수업 과정이 아니다. 라 살에서 배운 기술들은 패턴, 평면 패턴, 드레이핑, 컴퓨터 패턴 커팅, 그레이딩, 소재, 소재 연구는 물론 일러스트, 포토샵에 이르기까지 내 스튜디오에서 매일 매일 사용하는 중요한 것들이지만, 난 일찌감치 알았다. 내가 더 크리에이티브한 과정을 갈망한다는 것을!

Vogue Korea: 그래서 센트럴 세인 마틴 진학을 결심한 것인가?
Thomas Tait: 캐나다는 패셔너블한 곳이 아니다. 서점에서 세계의 다양한 패션 매거진을 구입하는 것도 쉽지 않을 정도니까! 라 살에서 패션에 대해 더 알게 되었고, ID와 데이즈드 등 패션 잡지를 보기 시작하면서 나에게 와 닿는 많은 디자이너들이 세인 마틴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후세인 샬라얀, 존 갈리아노, 알랙산더 맥퀸 등으로 구성된 디자이너 세대를 통해 내가 아는 것 보다 더 넓은 패션 세상 속 한 코너를 봤고 옷을 만드는 것 이상의 어떤 특정한 크리에티브한 환경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됐다. 특히 알랙산더 맥퀸이 너무 좋았다.

Vogue Korea: 맥퀸의 어떤 부분이 좋았나? 그의 기상천외한 쇼들?
Thomas Tait: 그의 극적인 면에 끌린것도 사실이지만 그에 대해 연구하다가 그의 작업 안에 어떤 개인적인 논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찌 같은 그룹이 그의 창의성을 믿고 밀어준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캐나다라면 ‘입을 수 없는 혹은 대중을 위한 옷이 아닌 것을 왜 만들지?’ 라는 반응이 지배적일텐데… 그래서 세인 마틴에 완전히 사로잡혔고, 그곳에서 온전히 창의적인 공부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끌렸다. 세인 마틴에 꼭 입학해야겠다는 일념으로  20살에 지원했고 합격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 곁을 떠나 런던으로 이사했다. 몬트리올의 한 공장에서 스코티쉬인 아빠와 살았는데 난 프랑스어가 모국어고 영어까지 이중 언어가 가능하다.

Vogue Korea: 세인 마틴은 어땠나?
Thomas Tait: 학교는 무서웠다. 친구들은 정말 좋았지만. 시몬 로샤, 재키 리, 등 모두 친하게 잘 지냈는데 어떨 땐 학생들 대 학교로 싸우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학급마다 다르다. 같은 반이라고 다 친하지 않은데 우리는 정말 잘 뭉쳤다. 사라 버튼의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는 캐롤라인, 팔머 하딩의 매튜 등 각자 자기 길을 잘 걷고 있다. 2010년 졸업 후 경제 불황의 타격으로 취직이 어려웠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 잘 싸웠고 잘 돌파해낸 것 같아 대견스럽다.

Vogue Korea: 졸업 후 바로 데뷔를 했다. 디자이너가 본인의 길이라는 걸 알았나?
Thomas Tait: 물론이다. 세인 마틴 석사 과정의 첫 해는 정말 힘들었다. 내 아이디어를 소통하는 방법을 찾느라 많이 고민했고 아트 스쿨을 다닌 경험이 없어 포트폴리오 작업에 애를 먹기도 했다. 항상 일러스트하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그건 자신 있었지만 튜터 (외부 강사)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지나치게 노력했다. 내 작업에 몰두하고 고민하기 보다 튜터들을 신경쓰다보니 결국엔 지쳤고 이건 아니다 싶어 어느날 더 이상 신경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랬더니 작업에 속도가 붙기 시작하더라.

Vogue Korea: 졸업 작품 프로젝트는 어땠나?
Thomas Tait: 석사 과정은 2,3개의 프로젝트를 거쳐 결국 메인 프로젝트인 졸업 작품으로 끝이 난다. 1년 반 안에 모두 끝내야 하니 꽤 치열하다. 졸업 작품 프로젝트에 돌입하면서 내가 크리에이티브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작업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했고 정말 좋았다. 스스로 눈이 뜨였다. 난 주로 스케치를 하거나 스탠드에서 작업하고 옷을 직접 만드는 과정에 바로 들어가는데 다른 디자이너들을 리서치하고 도서관을 찾으며 무드 보드를 만드는 것이다! 그 과정이 너무 어색했다. 이전 학교에서 기술적인 측면을 배우다보니 결국에는 옷을 만드는 것에 더 치중을 한다. 내 작업 방식도 내면적으로 느끼는 본능적인 것을 끌어내 바로 손 끝으로 만드는 작업으로 이어지는데 그 과정을 소통한다는게 정말 어려웠다. 그래서 고민 끝에 하던대로 그냥 만들었고, 그걸 사람들에게 프리젠테이션 했다. 튜터들과 루이스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

Vogue Korea: 남들과는 작업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 것인가?
Thomas Tait: 어떻게 보면 거꾸로인데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이 비쥬얼 자료를 모은다면 나는 디자인을 먼저 하고 그걸 소통하는 방법으로 비쥬얼적인 요소를 찾아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전한다.

Vogue Korea: 흥미롭다. 그러니까 본능적으로 디자인을 하는 것인가? 예를 들어 설명해줄 수 있나?
Thomas Tait: 대부분의 컬렉션을 그렇게 작업한다. 예를 들어 난 어떤 영감을 선택하지 않는다. ‘얼마 전 모로코에 다녀왔으니 이번 시즌은 전부 모로칸 바이브야’ 식의 작업은 내 방식이 아니다. 대개 본능적으로 스케치하고 – 스케치를 아주 많이 한다 – 그걸 동영상 클립으로 표현하는데 이 디자인이 어떻게 보이기를 원하고 어떻게 움직이며 어떤 무게였으면 좋겠다 등을 생각하다가 대부분 쇼로 연결되어 어떤 색상, 무대 그리고 환경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로 이어진다. 아주 빠른 시간 안에 그 그림이 그려진다. 예를 들어 머리 속에 어떤 노래가 있는데 가사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치자. 첫 단계로 비트를 기억하고 한 순간에 그림이 그려지면서 ‘이거다’ 싶어 만족되는 순간 종이 위에 긁적이기 시작하면 그 다음은 자연스럽게 모든 것이 이뤄지는 것이다!

Vogue Korea: 와우. 느낌은 알겠지만 그런게 가능하다니 대단하다. 당신의 컬렉션은 어느 한 시점에서 바라보면 무척 정갈하고 꼼꼼한 느낌이다. 시즌마다 컬렉션이 발전하는 것도 보인다. 그러나 분명 독특하고 특별한 점이 존재하는데, 예를 들어 2014년 가을/겨울 컬렉션의 화려한 색채는 꽤나 강렬했다.
Thomas Tait: 하하. 그때는 아주 미쳤던 것 같다 (mental이란 표현을 쓰는 토마스!).  그 컬렉션의 경우 – 사실 전부 다 시간이 좀 흘러야 이해가 된다. 6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내가 당시 뭘 하려고 했는지, 누구와 놀았는지 어떤 걸 흥미로워했고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 하나하나 생각하다보면 조금씩 이해가 된다. 당시에는 왜 그렇게 그거에 빠졌지? 혼자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그런 거다. 하하. 당신이 들고 온 스마이슨의 이 노랑색 (인조 가오리 가죽이라 얼핏 보기에 빛나는 것 처럼 보이는 스마이슨 특유의 노랑이다!)이 갑자기 좋아지면서 원래는 노랑색을 안 좋아했는데 온 사방에 이 노랑색이 보이고 머릿속에도 온통 그 색으로 가득해지는 그런 거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 몸이 본능적으로 끌리는 것이기 때문에 디자인 작업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된다. 예전에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본능을 거부하거나 그럴 수는 없다.

Vogue Korea: 당신이 쓴 FT 기사를 보면서도 느꼈고 당신의 컬렉션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는데 당신은 뭐든 깊게 들어가고 분석하는 걸 좋아하는 편인가?
Thomas Tait: 글쎄. 그냥 난 내 감정과 내가 본능적으로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것에 반응하며 작업하는게 좋다. 왜 갑자기 어떤 새로운 것이 흥미로운지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자꾸 생각나고 자꾸 보게 되는 것에 끌리는 것이다! 그런 흐름에는 몸을 맡기고 옷을 만든다. 컬렉션을 완성하며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과정은 컨트롤하는게 맞지만 디자인은 아니다!

Vogue Korea: 머릿속에 그토록 많은 생각들이 흘러들어오고 또 동시에 당신을 둘러싼 외부 환경과도 끊임없이 교류하다보면 어느 순간 멈추고 그 모든 것들을 정리하는 작업도 하나? 그것도 본능적인가?
Thomas Tait: 그런 편인데 꽤 빨리 정리한다.

Vogue Korea: 아하. 그러니까 외향적인 성향도 강한 편인가보다. 주변도 의식하는 것인가?
Thomas Tait: 물론이다! 어디를 가도 내 주변에는 항상 많은 것들이 있으니까. 너무 딱딱하게 조직적으로 작업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지는 않다. 리서치 여행을 떠나야하고, 내 컬렉션을 디자인하기 위해 영감을 찾아야 하는 건 내 방식이 아니다. 난 감정을 느끼고 아이디어를 담는 그런 창의적인 과정을 즐긴다.

Vogue Korea: 그럼 당신을 흥분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여행하게 하나? 사람들?
Thomas Tait: 글쎄 사람들인 것도 같고. 오가는 대화 속에 일어나는 다양한 반응들? 난 창의적인 과정에 흥미가 많다. 다른 창의적인 사람들의 마음이 무엇을 느끼고 어떤 걸 좋아하며 다른 분야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 (distribute)하는지도 궁금하다. 꼭 패션 세상 속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Vogue Korea: 당신을 보니 정말 머리 속에 많은 생각들이 담겨 있는데 그걸 표현하기 위해 선택하는 단어들이 아주 적절하고 의미 심장하다. 소통 (communicate)하고 컨트롤 (control)하고 전달 (distribute)하고! 그러니까 당신은 자신을 둘러싼 외적인 것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건 아주 중요한 일이다. 왜냐면 내면의 생각에 갇히다보면 세상과 단절될 수도 있으니까! 그럼 사람들은 당신의 컬렉션을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는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던 순간이 있나? 그게 당신에게는 LVMH 상이었나?
Thomas Tait: 아마도? LVMH 상이 정말 좋았던 점은 심사위원들이 대부분 디자이너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과정이 정말 편안했다. 패션계에서 내로라하는 이 창의적인 사람들은 이미 영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살아보거나 옆에서 지켜본적이 있으니까! 예를 들어 라프 시몬스나 리카르도 티시는 어린 나이에 브랜드를 대표하는 디자이너가 되었고, 또 다른 이들은 젊은 디자이너들을 고용한 장본인이니 영 크레이티브들이 어떻게 작업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 점이 참 좋았다. 때때로 패션 디자이너들은 저널리스트나 스타일리스트 등 디자인 세계 속 다른 영역의 사람들에게 평가 받아야 한다. ‘당신의 영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을때마다 무척 피곤하다. 왜냐면 그 질문은 무엇에 영감을 받지 않은 이들만 대답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사위원 앞에 섰을때 난 내 영감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왜냐면 그렇게 작업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 모두 고개를 끄덕여줬다.

Vogue Korea: 수상자로 호명되었을때 분명 놀랐을 것이다! 왜 당신이 상을 받았다고 생각하나?
Thomas Tait: 하하. 내 생각에 LVMH는 좀 다른 퀄리티의 컬렉션을 찾았던 것 같다. 사실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항목별로 정리해서 우리에게 얘기해줬고 우선 순위는 크리에이티비티였다. 내 생각에 LVMH 그룹 같은 거대한 기업에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모든 기술적 그리고 재정적 자원이 있으니 제품을 수 많이 팔 수 있는 똑똑한 사업가는 관심 밖일 것 같다. 왜냐면 그들은 이미 그 방법을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당연히 그들은 ‘창의적’인 재능을 후원할  것 같다. 그 접근이 참 좋았다. 창의성을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으로 찾는다는 것이 훌륭하다 (honorable)고 생각했다. 업계 내에서 분명 찾기 힘든 정신이다. 재능과 창의성의 경우 그들은 장인정신 (craftsmanship, 토마스는 정교하고 복잡한 과정을 제작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과 제품에 대한 혁신은 물론 제작 과정에 대한 혁신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즈니스에 대한 포부를 본다고 생각했다. 심사위원단을 위해 제작한 책자가 있었는데 그 안에 이런 부분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책자를 통해 나 스스로도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울 수  있어 좋았다.

Vogue Korea: 어떤 책자였나?
Thomas Tait: 나의 작은 크리에이티브한 바이블 같은 것인데 내 작업과 스케치 그리고 내 생각들이 어떻게 컬렉션으로 완성되는지 등에 대한 것을 담았다. 옷 이미지는 사실 하나도 없었다. 텍스트와 비쥬얼, 영감, 포부, 내가 작업 중인 프로젝트와 하고 싶은 작업 등… 무척 개인적인 책자인데 그 안에 들어갈 텍스트 작업을 위해 며칠을 보내는 동안 나를 재평가하기도 또 ‘아 맞어 이건 정말 그래’라며 깨닫기도 하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Vogue Korea: 그럼 이 상을 통해 당신의 브랜드를 온전한 비즈니스로 성장시킬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나?
Thomas Tait: 물론이다. 이 상은 나에게 아주 좋은 기회다. 일을 계속해서 진행시킬 수 있으니까. 난 계속 내가 하던 일을 할 것이고 좀 더 체계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Vogue Korea: 상금으로 무엇을 할 예정인가? 현금으로 다 받는 것인가?
Thomas Tait: 현금 상이다. 우선 순위는 컬렉션 제작이다. 매장들이 제 시간에 맞춰 혹은 그 전에 옷을 받아야 하니까. 재정이 있다는 것은 오더를 받고 옷을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매장이 선지급하지 않기 때문에 돈 없이 오더를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에게는 회전 자금이 지원된 셈이다. 어느 거대한 백화점이 큰 오더를 넣는데 선지급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치자. 난 이 자금으로 오더를 받고 옷을 제작하고 배송하고 팔 수 있게 되었으니 비즈니스가 돌아가게 된 것이다.

Vogue Korea: 이번 시즌에는 프리 컬렉션도 제작했는데 반응이 어땟나?
Thomas Tait: 흥미로웠다. 근본적으로 프리 컬렉션 (그는 이걸 프리 컬렉션으로 부르지 않기로 했다!)을 시작한 이유는 지속되는 컬렉션을 생산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말하자면 기술적인 연구소 같은 것이다. 이전 시즌의 컬렉션이 끝나면 전혀 다른 새로운 컬렉션이 시작되는게 아쉬웠다. 그 중간을 연결해줄 옷들을 만들고 싶었고 또 어떤 이유에서든 제작되지 못한 옷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출시되는 시점이 사람들이 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찾고 쇼핑을 시작하는 때이다보니 당연히 더 웨어러블하고 커머셜한 옷들로 구성된다. 그래서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Vogue Korea: 당신의 메인 컬렉션 얘기를 좀 해보자. LVMH 상 웹사이트에 올라온 비디오 중에 쇼룸에서 ‘전문가 패널’ 중 한명이 당신 재킷 카라를 보며 ‘오뜨 꾸띄르 테크닉’이라고 말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게 뭔가?
Thomas Tait: 아 그거 아주 재밌는 이야기다. 늘 그렇듯 스케치로 그려낸 디자인인데 무척 정교한 감성이다. 그러니까 슬리브가 자라서 바디 앞면으로 이어져 하나가 되고 바디 밖으로 어떤 어두운 화살 같은 것이 나오게 하는 뭐 그런 식의 디자인인데 그 작업이 기계로 드르륵 박을 수 없고 손으로 해야 하는 복잡한 작업이다. 꾸띄르 패턴을 보면 어떤 특정 부분을 작업하기 위해 많은 생각과 수 작업이 필요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아마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꾸띄르 적인 디자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쟝-쟈크 피카르 (Jean-Jacques Picart, 패션 & 럭셔리 컨설턴트)가 와서 보더니 그렇게 얘기해서 나도 좀 놀랐다. 하하. 재밌는 이유는 내가 작업하는 공장의 재봉사 (seamstress)가 도대체 어떤 걸 피우길래 (마약!) 이런 패턴을 디자인하느냐고 농담삼아 얘기한게 생각 났기 때문이다. 바느질 작업을 마치고 나면 클래식하고 평범해보이지만 패턴으로 평평하게 깔아 놓으면 희한하긴 하다. 하하.

Vogue Korea: 그러니까 당신은 스케치를 그리면서 옷의 완성된 모습을 상상하나보다 (인터뷰 후 그의 스태프는 그의 일러스트가 정말 아름답다고 했다). 정말 흥미로운 과정이다. 얼마 전 당신 인스타그램에 보니 한국 작가 신광호 – 하하 보그 패션 뉴스 디렉터와 동명이인이다! – 의 작업들이 올라와 있더라. 추상적인 초상화가 흥미롭던데?
Thomas Tait:  아 그거 사치 갤러리에서 열린 ‘스타트’ 박람회 첫 회 행사를 갔다가 우연히 본건데 첫 눈에는 조각에 가까울 정도로 두툼하게 쌓아 올린 유화만 보이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거지?’하고 뒷걸음질 치니 초상화라는 걸 알 수 있어 흥미로웠다. 유화와 조각을 한 작품 안에 담고 있다는 그 ‘전략적’ 과정이 재밌었다. 자세히 보면 일부러 벽면 위로 유화 물감을 조각하듯 건축해 어떤 풍경을 만든 걸 알 수 있다.

Vogue Korea: 그러고보니 당신은 예술과 상업의 절단점 (breaking point)에 대해 당신의 FT 기사에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당신에게 패션은 예술과 상업의 절단점인가?
Thomas Tait: 맞다. 내 생각에 패션 산업은 온전히 상업적이고 패션 디자인 작업은 순수히 창의적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반대점을 보기 시작하면 이제부터 중요한건 그 중간 지점을 찾는 것이다. 그 발란스 포인트! 그리고 건강한 균형을 찾는다는 것은 크리에이티브한 사람들에게 어려운 일이다. 나는 비즈니스보다는 크레이티브한 사람이지만 건강한 중간 지점을 찾고 싶다. 과거를 짚어보면 디자이너들에게 패션 산업은 무거운 짐이었던 것 같다. 그걸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디자이너들도 많다. 그래서 LVMH 같은 그룹이 디자이너들에게 주는 조직적인 멘토링은 무척 값지다. 그리고 그룹 내에서도 디자이너들의 건강한 작업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예를 들어 라프와 피비가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시간의 한계가 정해져 있고, 피비의 경우 일이 끝난 후 가정으로 돌아가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아주 중요한 거다. 왜냐면 우리 모두는 결국 사람이고 옷을 디자인하는 작업은 스위치를 온-오프하듯 간단하지 않다! 존 갈리아노나 알랙산더 맥퀸을 생각한다면 그들이 7시에 퇴근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을것 같다. 10-15년 전 당시 디자이너들의 삶은 록스타의 삶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패션 디자이너가 비즈니스를 제공하는 산업이지 환상적인 콘서트를 만들어내는 세상이 아니다. 우리 세대 디자이너들이 어떤 곳을 향해 걸어가는지 그 도달점을 상상해보면 흥미롭다.

Vogue Korea: 마지막 질문이다. 모두 휴가를 떠나고 런던은 텅텅 비었는데 당신의 휴가 계획은 무엇인가?
Thomas Tait: 아! 지금은 없다. 내 브랜드를 시작한 후 제대로 된 휴가를 가져보지 못했다.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지금은 아쉽게도 휴가 갈 여유가 없다. 음. 11월 이후 한번 고려해봐야겠다. 이번 시즌 부터는 함께 작업해줄 제대로 된 팀을 갖출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글/ 여인해

이 글은 <VOGUE> Korea의 2014년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