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UM HOURS Pamela Golbin 파멜라 골빈 인터뷰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안에 자리한 장식 미술 박물관 (Museé de Les Arts et Decoratifs). 이곳에서 지난 20년동안 (올해 21번째 해를 맞았으니 미국식으로 따지자면 ‘진정한 성인’이 된 셈이라며 웃는 그녀) 큐레이터로 일해 온 파멜라 골빈 (Pamela Golbin)과 <보그 코리아>가 만났다. ‘드리스 반 노튼 – 영감’ 전의 오프닝을 앞두고 전시팀은 물론 드리스까지 동원된 분주한 현장을 잠시 빠져나온 파멜라. 그녀에게 큐레이터로 살아온 지난 20년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보그 코리아(이하 VK): 파리 장식 미술 박물관에서 일한지 올해로 21번째 해가 된다고 들었다. 축하한다! 21년전, 큐레이터로서의 첫 날을 기억하는가?
파멜라 골빈(이하 PG): 사실 인턴으로 장식 미술 박물관에 처음 발을 들여놨다. 그때가25년 전이다! 당시 101세이던 할머니가 인턴직을 성사시켜줬다. 몇 년 후 정식 큐레이터가 됐을때 난 프랑스에서 가장 어린 큐레이터였는데,  바지 수트를 입을 수 없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시 여자들은 직장에서 치마를 입어야 하는 분위기였고, 바지를 입은 나를 향한 박물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시작은 까칠했지만  20년간 충실하게 몸 담은 곳이다. 그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흥분되고 설레는 작업의 연속이다.

VK: 장식 미술 박물관이 지금의 모습을 갖춘게 1986 년이라고 하니 당신은 박물관의 2/3을 지켜본 셈이다. 그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나? 박물관은 어떻게 진화하고 있나?
PG: 와우.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는데, 의미 심장한 이야기다. 파리 장식 미술 박물관은 100년 넘게 수집된 국립 패션 아카이브를 소장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 20년간 존 갈리아노, 장 폴 고티에, 올리비에 테스킨 그리고 부로노 프리지아니 등 현대 패션을 끌고가는 주요 디자이너들이 박물관에 직접 컬렉션을 증정하고 있다 (박물관과 지극히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 또 엘사 스키아파렐리와 발렌시아가, 비오네 등이 헌사한 개인 컬렉션까지 20세기의 중요한 패션 명작들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스키아파렐리와 비오네 등은 박물관에서 특별전이 열린 이후 브랜드가 부활되었다. 제2의 전성기가 기대되는 이름들이라 인연이 남다르다. 전시를 통해 과거를 분석하고, 현재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은 20년 동안 변하지 않았지만 관중은 많이 변했다. 이 방대한 컬렉션이 창고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비전으로 대중에게 공개되는 일은 무척 설레는 작업이다.

VK: 비오네 전은 어땠나?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
PG: 비오네 아카이브는 정말 환상적이다. 아름다운 옷들로 가득하다! 관중들에게 옷에 대한 구성을 소개하는 방법으로 3D애니메이션을 활용했다. 드레스가 어떻게 완성되는지 3D랜더링으로 보여줬는데, 이 작업을 진행한 기술자들이 건물을 건축하는게 이보다 쉬울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비오네는 기술적으로 완벽한 옷들을 만들었다. 이 점에 초점을 둔 기획이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 옷의 디자인을 모던한 언어로 해석한 전시였다.  

VK: 3D 랜더링이라니. 건축도 아닌 옷을 주제로 한 전시에 왜 굳이 그런 기술이 필요했나?
PG: 비오네 전에 꼭 필요한 중요한 도구였다. 3D 랜더링을 동원하지 않고는 마들렌 비오네가 어떤 기술을 사용하여 옷을 디자인하고 만들었는지 관중에게 소통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 작업을 위해 여러명의 그래픽 디자이너와 3D 랜더링 기술자가 동원됐는데 모두 건축가를 위해 작업하는 이들이다. 작업을 위해 몇달이 소요되었고, 3편의 비디오를 제작하기도 했다. 전세계 주요 건물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작업하는 그들은 이토록 복잡하고 난해한 작업은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마들렌 비오네의 작업 방식이 그랬다. 그녀는 가장 순수한 패션을 완성하기 위해 원, 정사각 그리고 직사각형의 3가지 형태로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비오네의 작업 과정은 무척 복잡하지만 정말 환상적이며 혁명적이다. 그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3D 미니어쳐 퍼즐 작업을 거친 후에야 종이에 랜더링 할 수 있었고 그 후에 볼륨은 물론 페브릭의 무게를 염두한 작업이 이어졌다. 페브릭의 무게에 따라 바이어스 커팅의 결과가 달라지고, 섬유의 밀고 당기는 효과가 다르게 적용된다. 장식 미술 박물관에서는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멀티미디어가 동원된 것인데, 전시에 새로운 도구를 투입하는데는 매우 분명한 이유가 뒤따른다. 비오네 전은 마들렌 비오네의 작업 과정을 관중에게 전달하고 이해시키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TED에 비오네 전을 주제로 진행된 강연이 있다. 더 궁금하다면, 이 영상을 추천하고 싶다.

VK: 정말 놀랍다. 비오네 전을 못 봤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전시를 기획하는데 여러가지 한계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
PG: 그 무엇도 한계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물론 기획하는 쇼마다 다 도전이 되지만, 매번 늘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프로젝트 안에 깊이 빠져 있다 보면 주변 상황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반면, 전시를 기획하는데 있어 디자이너들과 어떤 관계를 갖느냐는 무척 중요하다. 디자이너가 개입된 전시일 수록 흥미롭고 다양한 도전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디자이너가 개입되지 않는 전시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VK: 스키아파렐리 전시는 어떻게 기획된 것인가?
PG: 스키아파렐리의 아카이브가 일부는 장식 미술 박물관에 기증됐고, 또 다른 일부가 미국의 필라델피아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왜 그곳에 기증되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데 (심지어 필라델피아 박물관도 모른다) 어느날 이 두 아카이브를 한자리에 모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것을 계기로 전시 기획을 시도했고, 결국 엘사 여사 생전 이후 처음으로 전체 컬렉션이 만날 수 있었다! 도전이었고, 경계를 넘나드는 일이었으며 놀라움을 가져다 준 황홀한 전시였다.

VK: 주로 전시의 주제가 디자이너들이었나?
PG: 상당히 다양한 테마를 다룬다. 예를 들어 ‘수컷 공작새’를 주제로 한 전시를 통해 15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남성복 역사를 재조명했고, ‘워드로브’전을 통해 유명한 이들의 옷장 컬렉션을 통해 본 패션 역사를 짚어보기도 했다. 20세기와 관련된 전시도 다수 기획했는데, 문제는 늘 과거의 전시들을 잊고 산다는 것이다!

VK: 당신은 ‘회고전 (retrospective)’보다는 앞으로를 기약하는 ‘프로스펙티브 (prospective)’ 전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하지만 디자이너이건 어떤 주제이건 그만큼 쌓인 작업이 있어야 전시가 가능한 것 아닌가. 전시해야 할 그 적절한 ‘순간’을 어떻게 포착하나?
PG: 하하. 나에게는 사실 숨겨둔 수정 구슬 (미래를 점치는)이 있다! 그것은 사실 누군가를 만나는 것 만큼 간단한 일이다. 비오네 전은 20년전부터 기획하고 싶었던 전시이다. 마침 적당한 후원사가 나타났고, 쇼를 진행했다. 발렌시아가 전은 한번도 파리에서 기획된 적이 없었다. 아름다운 컬렉션에 대해 늘 생각하던 중 당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니콜라스 제스키에르에게 연락을 취했고, 그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성사되었다. 발렌티노 전은 그의 은퇴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발빠르게 준비했어야 했다. 우리에게도 무척 희귀한 케이스였다. 당시가 아닌 그가 사라진 다음에는 기획할 수 없는 전시였다. 그가 없이 기획된 쇼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전시와 프로젝트마다 제각기 다 다르다. 같은 방법이나 형식으로 진행된 전시는 단 하나도 없다.

VK: 디자이너들과 어떻게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하나? 디자이너들이 박물관에 자주 오는 편인가?
PG: 물론이다. 드리스 반 노트의 경우 2014년 2 시즌의 남성복과 여성복 컬렉션 모두 장식 미술 박물관 컬렉션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드리스는 이 영감에 기초해 페브릭을 구성했다. 디자이너들의 이런 능력은 볼때마다 감탄스럽다. 크리스챤 라크루아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중요한 건 독백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함께 성장하며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언제고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나가는 중이고, 이 안에서 다양한 영감의 원천을 공유하며 함께 미래를 건설하고 있다.

VK: 라크루아와 함께한 작업이 있나?
PG: 그는 우리 컬렉션을 자주 보러 오는 편이다. 그는 역사가 있는 인물이다. 미술사 큐레이터 전공을 했기 때문에 상당히 전문적인 견해를 지녔다. 그가 박물관에 오면 우리는 그에게 우리의 아트 컬렉션 전부를 오픈하고 그가 고를 수 있도록 한다. 그는 자신의 미술사적인 관점을 토대로 작품을 고르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것들을 해석한다. 그는 모든 컬렉션에 대해 놀라울 만큼 깊은 지식을 갖고 있다. 특히 20년대와 30년대를 사랑하는 그는 이미 다른 디자이너들에 대해서도 폭넓은 지식을 갖고 있다. 어떤 이들은 18세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또 다른 이들은 15세기를 탐닉하기도 한다. 페브릭을 보며 영감을 얻는 이들도 있다. 모두가 다른 취향을 갖고 있다. 우리에게는 놀라울만큼 방대하고 환상적인 컬렉션이 있고, 누구나 그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고를 수 있다.

VK: 디자이너들에게 다양한 영감을 주는 장식 미술 박물관의 방대한 컬렉션이 무척 부럽다. 수 많은 디자이너들이 영감을 얻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과정에 함께한다는 것은 무척 흥분되는 일일 것 같다. 디자이너들마다 그 과정은 제각기 다를 것이다. 어떤가?
PG: 디자이너들도 사람이다. 일부 아티스트로 불리울만한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결국 제품을 팔아야 하는 비즈니스다. 비오네는 진정한 아티스였고 몽상가였다. 그렇다고 디자이너들의 크리에이티브한 감성을 축소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은 매우 구체적인 기능을 충족시켜야하는 창조 과정을 이끈다. 디자이너들마다 관심 분야가 다르다. 나의 역할은 디자이너들과 친밀한 관계를 통해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들이 무엇을 보고 가슴 뛰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알고 그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다. 디자이너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작업하지만 나에게는 그 작업 과정이 모두 매우 구체적이고 특별하다. 나는 이곳에서 그들이 어떻게 작업하는지 이해하고, 그 과정을 도울 뿐이다.

VK: 전시 얘기로 돌아가보자. 또 기억에 남는 전시가 있나?
PG: 전시마다 접근과 기획 방향이 다르다. 갈리아노의 크리스챤 디올은 시대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실루엣의 변천사를 보여주는데 주력했고, 루이 비통은 과거를 분석하기 보다는 마크 제이콥스와 긴밀한 대화를 통해 현재를 재조명하는데 집중했다.

VK: 갈리아노도 박물관에 자주 오는 편인가?
PG: 지난 몇 해간 자주 방문했고 다양한 컬렉션을 훑어봤다. 존은 우리와 아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과거로부터 영감을 얻는걸 즐기는 그는 미래적인 관점을 가진 디자이너다. 늘 더 나은 디자인을 염두한다. 다른 시대의 작가들을 통해 당시의 예술 및 공예를 관찰하곤 한다. 그와 함께 작품을 보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VK: 큐레이터로서 첫번째 전시를 기억하나?
PG: 첫번째 말인가? (조금 생각을 더듬는 그녀) 이탈리아 패션에 대한 전시였는데, 제목이 ‘라 살라 비앙카 (화이트 룸, La Sala Bianca)’였다. 1950년대에 지오바니 바티스타 (Giovanni Battista)가 패션쇼를 개최한 장소에서 이름을 딴 것이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재탄생한 이탈리아 패션에 대한 전시였다. 60년대에서 70년대에 걸쳐 플로렌스, 로마, 밀라노 등의 도시들이 각각 어떻게 자신만의 ‘패션 언어’를 확고히 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VK: 당신의 개인적인 스타일은 어떤가? 패션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옷을 고르는데 영향을 주는 편인가?
PG: 하하. 갑자기 알라이야가 떠오른다. 그는 늘 검정색의 유니폼 같은 옷만 입는데, 그가 말하길 “난 여자들이 입는 옷에 집중하기 위해 늘 같은 옷을 입어”라고 하더라. 그는 패션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나에게 패션은 좀 다른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취향이 분명히 있다 (알라이야의 옷은 정말 환상적이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20년대와 30년대의 가벼운 (light) 룩을 좋아한다. 당시 남자 디자이너들이 만든 무척 섬세하고 실루엣이 강조된 옷은 매력적이다.

VK: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대가 있다면?
PG: 하하. 가장 좋아하는 시대는 현재이자 미래이다! 과거에서 꼽자면 30년대, 여성 디자이너들의 등장과 함께 여성스러움이 극에 달했던 스타일에 애착이 간다. 개인적으로 과거에 대한 향수보다는 미래 지향적인 취향이 강해서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

VK: 개인적인 취향을 얘기하는데도 큐레이터로서의 면모가 여실 없이 드러난다. 아까 관중이 변했다고 말했는데, 분명 우리는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오늘의 패션 전시는 어떤가? 큐레이터의 역할에 변화가 있다면?
PG: 패션은 늘 변한다. 모든 초점은 ‘다음은 뭐지?’에 있기 마련이고, 지나간 시즌은 금새 잊혀진다. 하지만 패션 큐레이터로서 패션을 바라보는 기준은 ‘시각’인데, 매번 전혀 다르고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려고 노력한다. 전시가 기획되면 새로운 팀이 구성되는데 그래픽, 조명, 활자, 인테리어 등 각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유리 전시관과 전시 공간으로 구성된 박물관 안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빨강색이던 벽이 검정이 되기도 하고, 오페라 무대와 같은 연출이 등장하기도 한다. 10만명의 방문객들이 전시를 보러 이곳을 찾는다. 그들은 우리를 믿는 것이다. 전시는 계속 진행 중인 대화이기도 하고, 또 흘러가는 패션 역사의 일부이기도 하다.

VK: 관중들의 반응은 어떤가? 그들과 어떻게 소통하나?
PG: 패션에 해박한 사람은 새로운 걸 얻어가고, 아무것도 모르던 이는 배울 수 있는 전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항상 방문객을 염두에 둔다. 요즘에는 자기의 의견을 활발하게 소통하는 이들이 많아 큰 도움이 된다. 우리는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수준 높은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전시때마다 만명이 넘는 인원이 가이드 투어를 신청해 놀라기도 한다. 3월에는 스튜디오에서 패션 강연을 준비 중인데 패션 디자이너들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주제를 다룰 예정이다. 관중에게 패션의 또 다른 시각을 보여주려고 기획했다.

VK: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런던의 V&A와 함께 3대 장식 미술 박물관으로 꼽히는데 파리만의 강점은 무엇인가? 도시로서는 단연 패션의 선두주자이다. 박물관으로는 어떤가?
PG: 파리는 모든 면에서 다르다. 루브르 박물관 안에 자리한 파리 장식 미술 박물관은 일단 규모 면에서는 세 곳 중 가장 방대하다 (17,000 ft2). 그러니 무척 다른 구성의 전시가 기획된다. 글쎄 세 곳을 비교하자면,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컨템포러리 패션을 강하고, V&A는 독특한 시각을 끌어낸다면, 이곳은 화려하고 풍성한 느낌이랄까?

VK: 파리하면 오뜨 꾸띄르를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오늘의 패션 흐름은 기성복이 주도권을 갖고 있다. 기성복이 오뜨 꾸띄르를 점령하는 날이 올까?
PG: 오뜨 꾸띄르의 전성기는 기성복의 등장으로 한풀 꺾인게 사실이다. 두 패션의 흐름은 각각 다른 전환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고, 큐레이터의 입장에서 두 흐름은 서로에게 무척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프랑스가 패션의 선두주자라지만, 사실 패션은 이미 국제 무대 위에서 펼쳐지고 있다. 디자이너들도 각기 다른 나라 출신들이고, 더 이상 하나의 하우스가 트랜드를 지배하지 않는다. 현대 패션은 지극히 개인적인 스타일을 존중하고, 디자이너의 개성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오뜨 꾸띄르가 죽는 날이 과연 올까? 글쎄, 그 답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오뜨 꾸띄르는 우리에게 장인정신을 보여줬고, 그것은 이제 모두가 갈망하는 패션의 한 축이 되었다. 장식 미술 박물관에는 장인 정신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수 많은 작품들이 보존되어 있다. 그들은 중요한 문화 유산이다.

VK: 젊은 디자이너들도 유심히 보는 편인가?
PG: 신인 디자이너를 뽑는 플랫폼의 심사위원직을 종종 맡는다. 새로운 인재를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건 무척 중요한 일이다. 시각의 전환은 물론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한다. 

VK: 마지막으로 드리스 반 노트 전시에 대해 소개해달라.
PG: 한달에 두번 꼴로 드리스를 만났다. 이 전시는 패션도 아트도 아닌 ‘창의적인 작업’을 재조명하는 독특한 시각에서 시작한다. 데미안 허스트의 지름 2미터 길이와 수백 킬로그램 무게의 작품도 등장하고 (이 작품을 들이기 위해 박물관 문을 모두 뜯어야 했다!), 드리스의 아이코닉한 디자인들도 대거 등장한다. 우리 아카이브 컬렉션의 상당수도 전시된다. 비디오와 사진, 패션이 만나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관중들에게 드리스만의 시각을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하기 위한 노력이 엿보일 것이다.

VK: 데미안 허스트의 일자정렬된 나비 작품과 그 앞에 전시된 스키아파렐리의 망사 드레스 안에 갇힌 나비 원피스는 정말 의미심장하다. 마지막 갤러리에는 ‘브론지노 (Bronzino)’의 인물화가 걸려 있는데 이 작품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처음으로 대여를 허락한 것이라고 들었다. 왜 이 인물화가 필요했던 것인가?
PG: 브론지노는 르네상스의 가장 중요한 인물화가로 어린 소년들을 주로 그린 작가이다. 드리스는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싶어했고, 그 답을 브론지노의 소년 인물화와 게라르 리히터 (Gerard Richter)의 추상화 (1986년작)에서 찾았다. 브론지노의 이 작품은 루이 14세가 직접 구입한 후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한 것으로 영구전 컬렉션의 중요한 대작이다 (전시에는 루이 14세의 조끼도 포함되어 있다). 이전에 루브르에서 브론지노 전시를 기획한 적도 있다. 이 모든 시각이 이번 전시의 초석이 되었다. 소년의 아름다움과 리히터의 추상작은 드리스 반 노튼의 2014년 봄/여름 컬렉션 (현재 매장에 진열된 바로 그 컬렉션)과 함께 전시되어 있고, 이것을 끝으로 전시는 끝난다.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된 책의 커버도 튤립을 모티브로 한 페브릭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글/ 여인해
사진/ 파리 장식 미술 박물관 제공 ©Luc Boegly

이 글은 <VOGUE> Korea 2014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