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luencers 인플루엔서들

이 글을 쓰는 지금 파리에서는 2016년 가을/겨울 컬렉션을 보여주는 전세계 디자이너들의 패션 위크 행렬 중 가장 화려한 대미를 장식하는 주요 브랜드들의 ‘컬렉션 발표’가 한창이다. 패션에 대한 각종 루머와 환상을 양산하는 현장이자 패션계 주요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떠들석한 그 곳. 패션계의 핵과 같은 이 중심이 변화의 움직임으로 술렁이고 있다. 누가, 왜, 어떻게 패션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며 우리는 이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걸까?  

영어 표현에 ‘모든 건 누굴 아느냐에 따라 달려 있어 (It’s all about the connections)’라는 중요한 문구가 있다. 일명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말하는 거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결국 판도를 뒤흔드는 강력한 힘은 ‘영향력 (influence)’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XX 라인’으로 구분되는 파벌 싸움을 말하는게 아니다! 직접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영향력을 지닌 인물들. 패션계는 지금 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들을 잡느라고 그야말로 난리법석이다. ‘인플루엔서’라는 단어가 패션계를 장악하기 시작한건 사실 소셜 미디어와 깊은 연관 관계가 있다. 소셜 미디어가 ‘패션 엘리트’에게만 허용된 패션쇼 현장을 주요 매체들보다 더 빨리 대중에게 소통하는 도구로 활발하게 떠오른게 화근이다. 팔로우 숫자를 자릿수와 상관없이 그대로 보여주던 인스타그램이 언젠가부터 천단위와 백만단위를 일컫는 ‘k’와 ‘m’자를 붙이기 시작하더니, 이 단위는 바로 ‘영향력’을 뒷받쳐주는 바로미터 역할을 하는 강력한 글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소셜 미디어에 갸우뚱 거리며 해쉬태그 (#)의 용도를 이해 못하겠다던 기업 간부들도 이 단위에는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인스타그램 세상이 열린걸까?

인스타그램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말하기에는 좀 이르지만 분명한건 많은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저널리스트들의 산물이던 ‘리뷰’와 ‘비평’은 블로그 세상으로 흘러 들어가 블로거들에게 힘을 실어주었고, 인터넷 바다를 통한 활발한 이커머스 브랜드의 활동과 디자이너들의 이커머스 오픈 사례가 이어지며 전세계 배송이 가능해졌으니 국경이 허물어진 셈이다. 그리고 드디어 패션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와 도전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패션쇼가 과연 필요한가, 패션 위크는 계속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수 많은 잡음이 패션 위크 내내 곳곳에서 요동쳤다. 화제의 중심에는 단연 ‘패션쇼’가 자리했고, 본질을 파헤치기 위한 수단으로 한 매체에서는 마르지엘라의 1990년 봄/여름 컬렉션 첫쇼를 당시 관련된 주요 인물들의 ‘증언’을 토대로 되돌아보는 획기적인 기사를 썼고, 이 기사는 한 온라인 매체를 통해 전세계에 배달되었다. ‘숙녀’들에게 포커스를 두는 이 오프라인 매거진은 44명의 여인들을 소개하는 글 외에는 온라인에 기사를 올리지 않다가, 자사 사이트를 통해 이 기사의 전문을 공개하기도 했다. 예상하다시피 마르지엘라의 쇼는 당시에는 물론 지금 들어도 파격 그 자체지만, 그 중심에는 패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즐기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놀라운건 이 ‘관련자’들이 27년이 지난 지금, 모두 업계 내 중요한 인물들로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 파리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 어느 동네, 아이들의 놀이 장소인 공간에서, 그 아이들의 ‘허락’하에 그들을 초청해 벌어진 마르지엘라의 컬렉션 발표 현장은 과연 패션의 모든 요소들을 고루 갖춤은 물론 패션계에 지금까지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역사의 한 장면으로 남겨지기에 손상 없을 만큼 그렇게 무사히 이들 주요 인물들을 관중으로 한 채 잘 치뤄졌다.

한국에서 아카이브 전시를 앞두고 있는 한 디자이너와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인터뷰에서 그는 며칠 후 있을 쇼에 대해 그 어떤 것도 말해줄 수 없다며 해당 질문에 대해 정중하게 답변을 거절했다. 이유는? 패션쇼를 통해 모든 것이 공개되기 때문이다. 쇼 직전까지도 그는 생각을 바꿀지 모른다. 모든 것이 어떻게 전개될지 누구도 알 수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또 다른 디자이너는 패션쇼가 바로 자신의 작업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현장이라고 표현했다. 그 전까지는 그만의 ‘개인적인 (private)’ 작업이라는 것이다. 패션쇼를 통해 디자이너는 컬렉션을 발표한다. 그 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대상이 고객들과 프레스이던 지금까지의 흐름을 바로 소셜 미디어가 깨기 시작하며 변화의 회오리 바람이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또 다른 디자이너 알라이야의 놀라운 이야기가 흥미롭다. 쇼를 통해 컬렉션을 발표하고 이어지는 쇼룸에서의 바잉을 통해 전세계 ‘도매업자’들인 백화점과 편집 매장으로 팔려나가는 시스템이 그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컨설턴트 줄리 길하트에 의하면 알라이야는 미리 예고하지도 않고 패션 위크 기간도 아닌 ‘자신이 준비되었을 때’ 바이어들에게 전화해서 쇼룸 오픈 기간을 통보한다. 바이어들은 두번도 안 묻고 바로 비행기에 올라타 파리에 자리한 그의 쇼룸으로 향해 바잉을 한다. 줄리는 여기까지만 언급했지만, 패션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다 안다. 그 이유는 무조건 팔리기 때문이고, 팔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매장 수는 전세계에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패션 시스템에 질문을 던지는 자들의 이야기 중심에는 ‘소비자’들이 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소통되는 이미지와 스토리가 정작 제품이 시장에 깔릴때까지 지속되지 못하고 버려진다는게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말로만 들었을때는 일리가 있다. 힘들게 수 많은 노력과 시간 그리고 돈을 들여 비싼 인력이 만든 브랜드의 이미지와 스토리가 패션쇼를 통해 ‘프리뷰’되는 것인데, 소셜 미디어를 통한 전파를 더 이상 컨트롤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으니, 제품을 이어서 바로 판매하는 ‘소비자에게 직접 (direct to consumer)’ 시스템이 몇몇의 브랜드를 통해 서비스 가동 초읽기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이 서비스는 패션 위크가 끝난 직후인 이 기사를 읽을 지금 즈음 시작될 예정인데, 쉽게 말해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생중계 된 패션쇼 위 물건들을 매장에서 바로 살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말 안하고 있을뿐 실상에는 일명 패스트 패션으로 통하는 패션 기업들이 이 변화에 한몫 단단히 하고 있다. 캣워크 위 트렌드에 ‘영감’을 받는 패스트 패션 기업들의 디자인 도용 사례는 법적으로 아무런 처벌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어 악순환의 심각한 현상을 끊을 도리가 없으니, ‘하이 패션’ 주자들이 이에 맞서 나름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하이 패션’ 속 빅 브랜드들은 자신들의 매장을 스스로 관리하기 때문에 이 시스템이 가능할지 몰라도 ‘도매’ 시스템에 의존하는 독립 디자이너들은 동참할 수 없다는데 있다! 일년 안에 만들어야 하는 과도한 숫자의 컬렉션도 무리인데 패스트 패션의 속도를 따라가라니. 패션은 과거에도 현재도 그리고 미래에도 크리에이티브한 영역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잊어버리기라도 한건가.

안타깝게도 패션은 더 이상 디자이너들만의 산물이 아니다. 패션계 속에서 톱니바퀴를 맞물고 돌아가는 영향력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패션계의 단 한명 가장 강력한 인플루엔서를 꼽으라면 단연 안나 윈투어다. <보그> 미국의 편집장이라서가 아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통해 언급되었듯이 그녀에게 ‘충성’을 맹세한 동력자들이 패션계 전반에 걸쳐 퍼져 있기 때문이다. 안나가 지지의 손길을 뻗으면 안티팬들의 극성스런 활동으로 더 유명한 킴 카다시안도 보그 커버걸이 될 수 있다. 킴과 함께 커버를 장식한 카니에가 디자인 수장을 맡은 ‘이지’ 컬렉션이 아디다스의 베스트 셀러 라인이 아니라는 언론 플레이도 소용없다. ‘이지’ 시즌 1과 2 시리즈는 이미 불티나게 팔려 나갔으니까. 패션 위크 현장에 있다보면 다양한 인물들을 보게 되는데 인물 자체의 영향력이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고 해도 결국에는 배경이 더 주목받는 상황을 흔히 보게된다. 예를 들어 미국의 강력한 백화점의 바이어로 오랫동안 활동하며 디자이너들의 커리어를 런칭했음은 물론 그들의 성장에 크게 기여한 어떤 인물은 백화점을 떠나 인터넷 쇼핑계의 유일무이한 강자지만 패션부서의 저조한 실력을 면치 못하는 인터넷 세상 속 밀림에 잠시 머물다가 지금은 컨설턴트의 길을 걷고 있는 한 인사를 보면 화려한 과거와는 상관없이 그녀가 과연 아직도 영향력이 있는지 제기 되는 씁쓸한 광경을 목격하기도 한다. 반면 야스민 스웰 같은 인사도 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부티크로 이미 패션계에서 인정을 받은 그녀는 편집 매장 브라운즈의 전성기를 이끌어갔고, 리버티 백화점이 무너질 뻔한 위기에서 역세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었으며 자신의 브랜드 ‘에트르 세실’의 성공을 거쳐 ‘옴니 쇼핑 채널’을 갖춘 이커머스로 재탄생할 스타일닷컴의 패션 디렉터 (바잉 디렉터)로 활약 중이다. 컨텐츠와 커머스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포부를 지닌 스타일닷컴의 바잉을 위해 그녀는 이번 시즌 활발하게 현장을 누비고 다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소셜 미디어로 눈길을 돌리면 얘기는 좀 달라진다. 배경과는 상관없이 혹은 배경 덕에 유명인사가 되는 사례를 종종 보게 되는데, 패션과 관련된 관중의 관심은 일단 ‘스타일’이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퍼스널 스타일’. 특정 브랜드나 제품을 홍보하거나 새로운 트렌드를 조명하거나, 목적이 무엇이든 크게 중요하지 않다. 관중은 1인 미디어로 등극한 인플루엔서들의 스타일을 눈여겨 보고, 그걸 통해 자신이 원하는 요소들을 가져가면 그만이다. 그래도 중요한 포인트는 ‘진정성 (authenticity)’이다. 자기 옷 처럼 잘 맞는 경우일수록 그 효과가 배가되니까. 모델계에서는 소셜 미디어 팔로우 수를 통해 모델의 등급을 정한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공공연연하게 회자되지만, 패션계의 가장 핵인 중심으로 들어가면 인플루엔서들의 영향력은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다. 소셜 미디어의 존재 목적에 혀를 내두르며 손사래를 치던 유럽 정통 브랜드들은 물론 디자이너들도 하나둘 가입 절차를 밟더니 천천히 활동을 시작하고 있을 정도다.

급변하는 패션 세상을 보며 디지털 강국 한국이 떠올랐다. 사실 패션 바잉 시스템에 가장 취약한 한국 디자이너을 생각하며 (서울 패션 위크가 모든 바잉 일정이 끝나고 오더북이 마감되는 이후의 시기에 개최된다는게 가장 큰 이유) 패션계에 흐르고 있는 기류 변화가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즐거운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핵심은 바로 이커머스다! 인터넷 쇼핑몰도 직구도 아닌 일렉트로닉 커머스 즉 전자 상거래라는 뜻을 지닌 인터넷 상의 플래그쉽 매장쯤으로 여길 수 있는 공간. 게다가 전세계 배송이라는 도구만 갖춘다면 런던 신인 디자이너들 못지 않은 막강 패션 파워로 등극할 수 있는 기회가 다분하다. 전세계는 지금 한국에 주목하고 있다. 모든 것이 자국내 시스템 안에 꽁꽁 묶여 갇혀 있는데 비해 소비자들의 해외 사이트 접속률이 놀라운 속도로 성장한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한국 내에서는 중국과 주변 아시아 국가들에게 특히 드라마나 영화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영향력을 미치는게 큰 이유라고 분석하곤 한다. 게다가 각각 크루즈 컬렉션 쇼와 아카이브 전시를 위해 서울을 찾은 샤넬과 디올은 물론 올해 초 쇼를 개최한 에르메스 등을 언급하지만 정작 자국의 장점을 파악하고 있을까 의문이다. 왜 한국이 중요할까. 한국에 대해 알고 싶다며 찾아오는 각종 업체들을 상대하며 강조하는 사실은, 한국이 다분히 전략적인 지리적 요건을 갖췄다는 것이다. 아시아로 향하는 ‘문’ 역할을 하며 영향력을 발휘하는 한국. 게다가 자국 내에는 물론 전세계에 퍼진 패션계 속 한국 전문가 인력풀을 찬찬히 살펴보면 제법 수준 높은 구성이 가능하다.

이제 곧 서울 패션 위크가 시작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전세계가 주목하는 패션 도시인 서울인 만큼, 해외 유명 인사들에게 의존하는 시끄럽고 떠들석한 ‘버즈 (buzz)’ 말고, 자국내 주요 인사들의 영향력이 한껏 드러나는 자리가 되기를 진심으로 한번 바래본다. 그래야 이 패션 잔치가 ‘서울 관광’을 홍보하는 수단이 아닌 패션 비즈니스의 진정한 장으로써 온전하게 자리잡을 수 있을테니까.

글/ 여인해
이 글은 <Dazed> 코리아 2016년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