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Stella McCartney to Savile Row

런던의 새빌로우 거리가 다시 뜨고 있다! 역사 속에 묻힌 줄만 알았던 조용했던 새빌로우 거리는 지금 정통, 모던, 하이 패션 테일러리즘을 내세운 채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무한 영감을 선사하는 중이다. 우리가 지금 새빌로우에 주목해야 할 이유.

런던이 ‘런던 컬렉션 맨즈 (LC:M)’란 이름으로 남성복 패션위크를 시작했다. 두 번째 시즌을 맞은 지난 1월초, 영국 패션 협회와 챨스 왕세자 (LC:M의 공식 홍보 대사)는 패션위크의 하이라이트가 될 거라며 새빌로우 프리젠테이션을 꼭 보라고 강조했다. 아닌게 아니라 새빌로우 관련 30여개 브랜드가 모여 새빌로우의 정수를 뽐낸 굉장한 쇼였다. 그로부터 두 달 후인, 3월 초, 파리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린 스텔라 맥카트니 2013 가을/겨울 캣 워크 쇼. 핀 스트라이프 소재는 물론, 과장된 라펠의 테일러드 재킷과 오버 사이즈 코트, 날렵한 팬츠와 살랑 거리는 스커트가 쇼의 절반을차지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새빌로우 테일러링’을 외치고 있었다.

버버리를 비롯해 비비안 웨스트우드, 알렉샌더 맥퀸까지 세컨드 라벨을 동원해 런던 패션 위크로 돌아와도 꿋꿋이 파리를 지키던 스텔라가 영국의 자랑인 새빌로우 테일러링을 돌아본 이유가 뭘까. 새빌로우는 사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꽤 그럴듯한 마케팅 도구다. 새빌로우를 들먹이며 ‘웰링턴 공작 라펠 (Duke of Wellington Lapel)’이라는 이름의 재킷을 선보이는 순간 그 브랜드는 하루 아침에 전통을 지닌 하우스 네임이 된다. 물론 구찌 신화를 다시 쓴 톰 포드가 새빌로우 테일러링을 연상시키는 맞춤복 남성복 매장을 오픈하면서 (그것도 뉴욕에!) 패션계에 복귀한 건 얘기가 좀 다르다. 완벽주의자로 알려진 톰 포드가 얼마나 치밀하게 그 계획을 실행에 옮겼을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과정이야 어떻든 그의 첫 행보가 정통 남성복이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톰 포드 또한 ‘톰 포드 맨즈’를 시작하기 전 새빌로우 브랜드의 셀레브리티 고객 중 하나이기도 했다.

재평가되고 있는 새빌로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파리 패션쇼가 끝난 바로 며칠 뒤, 스텔라 맥카트니에게 연락을 취했다.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응해준 스텔라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갑자기 이번 시즌에 새빌로우를 향해 경의를 표했다기 보다, 이전부터 새빌로우 테일러링은 늘 제게 중요한 영감이었어요.” 스텔라는 핀 스트라이프 울 소재로 시작해 핀 스트라이프 스웨트 셔츠로 이어지는 라인업을 통해 새빌로우 테일러링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모던하게 해석해냈고, 결과적으로 한층 성숙해진 완성도 높은 컬렉션을 선보일 수 있었다.

브릿 (Brit) 디자이너라고 모두 테일러링에 강한 건 아니지만 스텔라와 센트럴 세인 마틴 시절 만나 그녀의 졸업 작품쇼에서부터 클로에까지 행보를 같이 한 피비 파일로 (Phoebe Philo)가 뽑아내는 수트 역시 환상적이다. 셀린을 통해 그 천재성을 인정 받은 피비는 스텔라처럼 대놓고 새빌로우를 외치진 않지만 그녀의 디자인에는 분명 새빌로우 테일러링의 기술이 엿보인다. 셀린의 2013년 가을/겨울 여성복 컬렉션에서 볼 수 있었던 폭 넓은 라펠의 더블 브레스티드 코트나 한 개의 단추가 달린 매끈한 코트, 몸매를 따라 흐르는 구조적인 형태는 단연 테일러링 기술로 완성된 결과다.

사실 새빌로우는 전통적으로 남자들을 위한 거리이다. 최초의 매장인 헨리 풀 & 컴퍼니 (Henry Poole & Co)가 들어선 19세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다. 물론 새빌로우에도 반항아가 있었다. 새빌로우 지브스 앤 호크스 (Gieves & Hawkes) 견습생 시절, 챨스 왕세자를 위해 만들어진 재킷 안감에 음흉한 낙서를 했다는 알렉샌더 맥퀸의 이야기도 유명하지만 그보다 더 파격적인 건 69년에 새빌로우에 등장한 에드워드 섹스턴과 토미 너터 (Tommy Nutter) 커플이었다. 동성애자였던 그들은 (두 사람이 비즈니스를 넘어선 커플이었는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엄격한 새빌로우 거리에 쇼 윈도우를 오픈하고 수트를 디스플레이했는데 그들이 만든 맞춤복 수트는 화려하고 대담하기 그지 없었다. 팬츠는 매끈하게 몸매를 타고 흐르는 넓은 통이었고, 상체에 착 달라 붙는 재킷의 라펠 역시 과장된 넓이였다. “사람들은 우리를 가위 든 마법사 (wizard with scissors)라고 불렀어요. 록 스타들과 테일러 하디 에이미스 (Hardy Amies)를 비롯해 트위기, 비앙카 재거 등 여자들까지 모두 수트를 맞추기 위해 우리를 찾았죠.” 작고한 토미를 보내고 홀로 남아 새빌로우 테일러링을 이어가고 있는 에드워드가 당시를 회상했다. 두 사람은 또 남성, 여성 할 것 없이 모두를 위한 수트를 제작해줬다. 물론 맞춤복으로!

20세기 새빌로우에 새로운 전성기를 가져온 에드워드는 자신의 화려한 고객 명단 중 한명인 비틀즈 폴 맥카트니의 부탁으로 그의 딸, 스텔라를 새빌로우에서 직접 훈련했다. 스텔라 맥카트니의 세인트 마틴 졸업 작품 쇼는 물론 그녀가 진두지휘한 클로에 컬렉션에는 에드워드로부터 영향을 받은 흔적이 역력하다. ‘마이 걸 (my girl)이 며칠 전 여왕에게 상 탄 거 봤어요?” 올해 초 여왕에게 훈장을 탄 스텔라가 아주 대견한 듯 에드워드는 ‘마이 걸’이라는 애칭을 부르며 <보그 코리아>에 자랑을 늘어놨다. 그의 숍에는 온통 스텔라와 폴 맥카트니 부녀의 흔적들이 가득했고, 한 켠에는 아직 완성 전이라며 붉은 계열의 타탄 체크 수트가 걸려 있다. “저는 여성복과 남성복 두 분야를 다 다루는 재단사입니다. 둘은 조금씩 다른 기술을 필요로 하는데 저는 이 두 영역을 오가며 크로스오버로 작업하죠.” 정통을 고수하는 새빌로우에서 믹스 앤 매치를 시도하는 에드워드의 테일러링 스타일은 독특할 수 밖에.

“하이 패션은 눈에 보이는 디자인을 직접 보고 정해진 치수로 구입하는 즉각적인 쇼핑이라면 맞춤복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험이예요.” 맥카트니가 맞춤복 서비스에 대해 설명했다. “나에게 무슨 옷이 선사될지 그것이 어떻게 내 몸을 감쌀지 가봉하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어요.” 스텔라의 전 보스, 클로에의 사장이 이 점을 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진 적이 있다. “클로에 사장 부부가 스텔라 맥카트니의 방향성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나를 찾아온 적이 있어요.”라고 에드워드가 회상했다. “며칠 뒤 다시 오라고 한 뒤 마케팅 그루라는 그의 부인을 위해 재킷을 제작해 보여줬죠.” 에드워드의 재킷을 입은 부인은 탄성을 질렀고, 에드워드는 그날 이후 4-5시즌 스텔라와 함께 클로에 하우스에 새빌로우 테일러링을 전수했다. 스텔라의 자질을 논할 때마다 거론되는 클로에 시절에는 에드워드도 함께 있었다.

107년 전통의 앤더슨 & 셰퍼드는 챨스 왕세자의 옷을 만드는 새빌로우의 안방 마님 같은 존재다. 1월초 LC:M의 새빌로우 프리젠테이션을 진두지휘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통상 20-25가지 치수를 재는데, 이 방식은 107년 전과 크게 변한 게 없어요.” 이곳에서 지배인쯤 되는 제임스 필드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모두 보관 중인 재단 북을 펼쳐 보이며 설명했다. “밀리터리 디테일에 기초해 구조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는 곳도 있지만, 우리의 특징은 편안하고 부드러운 수트예요. 가슴판을 풀로 재단해 넉넉하게 여유를 주고, 암홀을 높게 재단하는 등의 기술이죠.” 하우스에서 직접 수트를 제작 중이던 마스터 테일러 히츠콕이 친절하게 모든 과정을 일일이 보여주고 설명해주었다. 그때 문을 열고 중년의 아버지가 십대로 보이는 아들을 데리고 앤더슨 & 셰퍼드로 들어섰다. 지배인 제임스는 소년을 데리고 하우스 곳곳을 보여주고 테일러링 과정을 설명해주었다. 아버지가 자신의 테일러를 아들에게 소개하는 이런 광경은 새빌로우에서 종종 있는 일이라고 한다. “대개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학히 알고 와요. 옷감을 고르는 것이 가장 까다로운 작업인데 옷감 선택을 시작으로 수트 디자인의 방향이 결정되죠.” 소년이 후에 입게 될 수트에 대해 미리 알아가는 그 광경이야말로 새빌로우의 살아 숨쉬는 역사가 아닐까.

스텔라 맥카트니는 자신의 브랜드를 통해 하이패션은 물론 맞춤복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스텔라는 직접 완성된 룩을 가늠할 수 있게 일러스트를 직접 그려 보인다고 한다. 물론 치수를 재는 일에서부터 제작까지 통상전인 맞춤복 제작 과정은 브랜드에 상주한 새빌로우 테일러가 도맡는다. 새빌로우 테일러를 모시고 여성복 맞춤복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또 있다. 바로 새빌로우에서 5분거리에 위치한 셀프리지 백화점. 셀프리지는 올해 초부터 2층 여성관에 새빌로우 테일러링 서비스를 시작했다. 옷감을 고르고, 치수를 재고, 패턴을 뜬 후 가봉하는 새빌로우의 정통 맞춤복 시스템이다. 미리 떠 놓은 패턴으로 수트를 제작하는 준 맞춤복 방식이 아니다. 단 새빌로우의 제작 기간이 12주인 것에 비해 셀프리지는 조금 더 빠른 시간 안에 완성이 가능하다고 한다. 새빌로우 견습생 출신인 알렉샌더 맥퀸의 후임자, 사라 버튼은 최근 새빌로우에 알렉샌더 맥퀸 맨즈 매장을 오픈하기도 했다. 기성복만 선보이던 이 매장은 4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맞춤복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맨즈 매장의 전 컬렉션은 철저히 남성복만으로 구성된다.

이렇듯 낡고 진부한 양복점 거리고 전락한 줄 알았던 새빌로우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활기를 띠고 있다. 게다가 스텔라 맥카트니, 피비 파일로, 사라 버튼 등 우리 시대를 이끌고 있는 젊은 여성 디자이너들 (모두 런던 출신이다!)에게 무한 영감을 선사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또 새빌로우가 발원지나 마찬가지인 LC:M까지 개막되어 전 세계 패션 피플들이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고, 또 비밀스런 기법을 캐내기 위해 자석처럼 들러붙고 있다. 새빌로우 테일러가 직접 여행하며 (주로 미국 동부와 서부) 맞춤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평생 입을 수 있다는 그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수트를 만들기 위해 새빌로우 거리를 찾고 있다. 사실 새빌로우를 찾는 발길이 뜸해진 적이 과연 있기는 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한때 문을 굳게 닫은 채 콧대만 높이던 새빌로우 정통 브랜드들은 저마다 다양한 스타일을 쇼 윈도우에 내걸고 새로 입성한 모던 새빌로우 브랜드들 (지방시 맨즈의 히어로 오츠왈드 보탱 숍과 같은)과 하이 패션 브랜드들 (알랙센더 맥퀸 맨즈 뿐 아니라 랑방 맨즈도 있다) 속에서 사이 좋게 새빌로우 테일러링을 이어가고 있다.

“새빌로우 테일러링에는 대단한 역사와 전통이 있어요. 새빌로우에서 수트를 만드는 것은 하나의 완전한 경험이예요.” 스텔라 맥카트니는 새빌로우에 대해 여전히 할 말이 많다. 그녀는 에드워드를 통해 새빌로우의 장인 정신을 체험했다. 새빌로우 맞춤복에 대한 그녀의 추억은 엄마, 아빠가 그들의 록스타와 귀족 친구들과 즐겨 입으며 70년대 ‘새빌로우 트렌드’를 이끈 수트 컬렉션에서 비롯된다. 소녀 스텔라의 놀이터였다는 부모님의 옷장을 가득 메웠을 그 룩들! “새빌로우는 절대 평범하지 않고, 무척 남성적이며, 기술적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우아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기가 센 곳이예요. 그저 그런 패션이 아니예요! 살아 움직이는 전통이죠.” 그렇다면 완벽한 피팅을 강조하는 새빌로우 테일러링을 브랜드의 DNA라고 주장하는 스텔라 맥카트니의 올가을 컬렉션이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에게도 모델만큼 아름답게 잘 맞을까? “물론이죠! 그렇지 않다면 제가 일을 잘 못하고 있는 거니까요.” 스텔라는 웃으며 말했다. 

이 글은 <VOGUE> 코리아 2013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글/ 여인해
사진/ Lama Lee, Steffan Strurm, 알렉산더 맥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