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al Subculture

런던이 쿨한 이유? 벗겨도 벗겨도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깊은 문화 유산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있다. 오랜 계급제도 때문일까. 런더너들을 서로 다른 문화들을 존중하고 심지어 각자의 영역 안에서 상당한 자부심을 갖는다. ‘다문화’라는 표현이 다분히 사회적인 단어로 탈색된 동양 문화와는 달리 서구 문화는 이미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고 공존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복잡한 사회 과학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좋아하며 열광하는 오늘날의 패션이 이미 그런 흐름을 타고 이동하고 있다. 상위문화가 존재해야 하위문화가 존재하는것 아닌가? 남성복 런던 패션 위크가 한창이던 1월, 두 문화는 건강하게 서로를 존중하며 공존하고 있었다. 2016 가을/겨울 남성복 런던 패션 위크의 하이라이트를 하위문화의 관점에서 조망해봤다.

런던 패션 위크에 킴 존스가 떴다. 아시다시피 킴은 파리에서 루이비통의 남성복 수장으로 활약 중이며 쇼를 선보이고 있다. 물론 루이비통이 런던으로 스케줄을 갈아탄 건 절대 아니고, 잘 알려진대로 런던에서 패션을 시작한 킴이 소호의 멤버쉽 클럽 ‘센트리 클럽’에서 절친인 쇼 스튜디오의 루스토파드와 LCM 토크 시리즈의 게스트로 초대되었다. 영국 패션 협회가 패션 위크 기간 내 대중들과 소통하기 위해 올해 처음 런칭한 토크 시리즈는 입소문을 타고 100석 마련된 무료 티켓이 일찌감치 매진된 상황. 킴과 루의 대화는 지금 매장에 아직 걸려 있을 2015년 가을/겨울 컬렉션을 통해 킴이 아카이브를 소장 중인 80년대 런던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네메스에게 영감을 받은 배경과 킴과 쥬디 블레임의 루이비통 액세서리 협업 작업에 대한 스토리 등 킴의 ‘영감과 콜라보레이션’에 포커스를 두고 있었다. 럭셔리 스트릿웨어의 원조격인 킴과 옷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아방가르드 사조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크리스토퍼, 게다가 전설적인 액세서리 디자이너 쥬디 블레임까지, 이 세 사람의 이름이 함께 거론된다는 것만으로도 짜릿한 순간이었다.

2003년 데뷔해 올해 36세가 된 디자이너 킴에게 아마도 크리스토퍼와 쥬디 블레임이 콜렉티브로 이끌던 일명 HOBAC (The House of Beauty and Culture) 매장이 미친 영향을 미뤄 짐작해볼 수 있는 기분 좋은 대화였다. 80년대를 주름잡은 HOBAC의 아카이브는 어마한 소장 가치와 함께 매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는 대표적인 런던의 하위문화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런던에 살면서 가장 놀라운 점은 이 도시가 어떻게 끊임없이 새로운 젊은 디자이너를 배출할 수 있느냐인데, 이 도시의 거리를 장악한 하위문화에서 그 근거를 짐작해볼 수 있다. 그들에게 상위문화란 ‘부모세대’를 상징할 뿐이지만, 남성복의 수많은 ‘정통’을 탄생시킨 새빌로우는 무한한 영감 요소다. 자신의 센트럴 세인 마틴 MA 졸업 작품쇼를 후원하기 위해 기획한 ‘LOVERBOY’ 클럽 나잇을 ICA (현대미술학회)에 재현했던 패션 이스트 출신의 신인 디자이너 챨스 제프리는 세트 디자이너 개리 카드의 손길을 거쳐 완성된 첫 캣워크 쇼 데뷔를 무사히 치렀다. 챨스의 컬렉션은 새빌로우의 테일러링에서 시작해 오버사이즈드 룩이나 ‘술에 취해’ 꼬이고 뒤틀린 실루엣 그리고 산악 로프를 테일러드 팬츠 위에 질끈 묶어 주름 잡히게 한 모습 등으로 선보이며 큰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25살의 챨스의 컬렉션은 런던 쇼룸을 통해 단번에 레이 가와쿠보 여사와 에이드리안 조프 도버 스트릿 마켓 회장 부부의 러브콜을 받고 주요 도시에서 하반기부터 판매될 예정이다. 

챨스와 패션 이스트 동기인 웨일즈 보너는 2014년에 센트럴 세인 마틴을 졸업한 신예로 혜성같이 등장해 2015 신인 남성복 디자이너 브랜드 상으로 패션계를 사로잡은 슈퍼 신인 디자이너다. 첫 캣워크 데뷔 후 세일즈 시즌인 이번 1월 그녀는 통상 런던 쇼룸에서 시작하는 신인들과는 달리 독립 쇼룸을 통해 컬렉션을 바이어들에게 직접 선보였다. 그레이스의 컬렉션에는 시적인 우아함이 담겨 있는데, 그건 그녀의 끊임없는 문화 탐구에서 비롯된 결과다. 그레이스는 클래식 테일러링이라는 시작점에서 출발해 아프리카 문화의 뿌리를 따라가며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질문들을 던진다. 그리고 컬렉션을 대하는 그레이스의 시각에는 퍼포먼스와  비판이론 그리고 역사적인 근거가 깊숙히 베어 있다. 그 결과, 그녀의 아름다운 옷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완성도 높은 무대로 연출된다. 웨일즈 보너 컬렉션은 이미 10 코르소 코모 매장을 통해 서울에서도 판매 중이고, 여성복 컬렉션으로 매치스 패션 닷컴 (MATCHESFASHION.COM) 에서 단독 런칭 예정이다.

웨일즈 보너 컬렉션의 중심에 그레이스가 오랜 시간 공들여 연구하고 탐구한 것을 ‘진정성’있게 담아 표현하려는 무한한 노력이 내재하듯, 새로움을 추구하는 하위문화 속에서도 ‘진정성’은 가볍게 여겨서는 안될 중요한 키워드다. LCM 토크 시리즈의 또 다른 게스트로 초대된 팔래스 스케이트 보드의 레브 탄주의 이야기는 그런 의미에서 귀를 쫑긋 세우게 한다. 런던에서 더 이상 숨겨진 보물이 아닌, 알려질대로 알려진 팔래스는 짐작하듯 스케이트 보드를 사랑하는 친구들에 의해 시작된 브랜드다. 풀타임 스케이터가 되고 싶었던 레브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디자인한 스케이트 보드가 의외의 반응을 불러일으키자 그는 바로 비즈니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팔래스란 이름은 친구들이 모여 살던 가난한 아파트 이름에서 딴 것이고, 삼각형을 반복적인 기하학 모티브로 변형하고 팔래스 이름을 삼면에 넣은 디자인을 로고로 만들어 브랜딩을 했다. 레브와 친구들의 작업은 스케이트 보드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일반인이 보기에도 ‘아름답다.’ 테이트 브리튼의 아트 컬렉션에서 영감을 얻어 공식 콜라보레이션 작업한 보드 디자인은 훌륭하다 못해 벽에 걸어 소장하고 싶을 정도! 그외에도 아디다스와 이미 몇차례 협업 컬렉션을 선보였고, 자체적으로 ‘허락없이’ 진행된 팔래스의 샤넬과 베르사체 로고를 재해석한 셔츠는 힙합 스타들이 즐겨 입는 중이다. 덕분에 레브와 친구들은 풀타임 스케이트 보더로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고 그들의 작업과 콜라보레이션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계속해서 진화 중이다. 아직까지는 런던 소호에만 매장 한 곳을 운영하고 있으니 근처에 자리한 슈프림 매장과 함께 꼭 방문해볼만한 곳!

반면 딜런 존스 영국 패션 협회장이자 영국 지큐 편집장의 전략적 선택은 새빌로우 테일러링이었다. 작년부터 합류한 중국 배우 후빙도 영국의 자랑스런 유산 ‘3피스 수트’를 거뜬하게 소화한 모습으로 티니 템파, 루이스 해밀턴, 데이빗 간디, 닉 그림쇼 등 쟁쟁한 런더너들과 ‘LCM 홍보대사’로서 활약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특히 향수와 속옷 광고를 섭렵한 데이빗 간디는 최근 M&S의 모델로 발탁되어 영국 남성복을 알리는데 제대로 앞장 서는 중. 버버리는 어김없이 켄싱턴 공원에 거대한 쇼장을 설치하고 마지막  ‘남성복’ 고별 무대쇼가 될 화려한 캣워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최근 톰 포드와 베트멍의 뎀나와 함께 캣워크 트렌드의 변화의 주역으로 앞장선 버버리는 남성복과 여성복을 합친 그 시즌의 쇼를 일년에 단 두번만 선보이고 쇼 직후 매장에서 바로 구매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선언해 패션계에 한바탕 회오리 바람이 이는 중이다 (일반적으로 6개월 앞서 캣워크 쇼를 통해 컬렉션을 발표, 직후에 바잉 시즌을 거쳐 제작, 배송 작업을 거쳐 대략 6개월 후부터 매장에서 판매가 시작된다) . 그나저나 이번 시즌의 대세는 세번째 솔로 캣워크 쇼를 마친 크레그 그린이었다. 런던 쇼룸을 나와 영국 패션 협회 바바라 그리스피니가 시작한 디 아크 컨셉 프로젝트에 합류한 크레그의 컬렉션은 플래그쉽 매장도 거뜬히 매울 수 있는 훌륭한 머천다이징을 갖고 이번 시즌 성공적인 바잉을 마쳤다. 일명 ‘도복’을 연상시키는 그의 누빔 시리즈와 길게 늘어지는 스트랩은 이미 패션계의 ‘승인’을 받고 거리를 활보 중인데, 그는 이번 시즌에도 계속해서 그의 영감인 ‘유니폼’에 포커스를 두고 스트라이프 디테일의 부클레 소재를 새로 소개했으며 여기에 탈부착 가능한 스트랩이나 가죽 실루엣을 엮는 역할로 스트랩을 재해석해 선보였다. 크레그 그린은 안트워프 6로 불리우는 월터 반 베이렌동크의 인턴으로 일하며 옷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데 작업을 이어가며 크레그만의 신선한 시각이 동원된 컬렉션은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그외에도 VHS 비디오 클립을 에딧한 영상을 백도릅으로 80년대 브랜드들의 로고 글자를 딴 콜라쥐 작업을 옷으로 표현하고 패치워크를 선보인 크리스토퍼 섀논의 컬렉션은 스트릿웨어의 대명사인 그의 한층 성숙한 크레이티비티를 선사했고, 울마크 프라이즈의 영국 지역 우승자로 선발돼 현금 수상을 거머쥐게 된 애기 앤 샘도 성숙한 컬렉션으로 전세계 바이어들의 호응을 얻었다. 애기 앤 샘은 울마크 프라이즈를 위한 캡슐 컬렉션을 일본 이세탄 백화점에 6월부터 출시할 예정이며 첫 여성복 캡슐 컬렉션도 런칭하며 야심차게 다음 단계를 밟아나가는 중이다.  옷에 페인팅 작업을 하는 알렉스 뮐린스는 이번 시즌에 사진을 실사한 후 페인팅하고 코팅하는 작업을 통해 ‘지루함’에 대한 그의 고찰과 생각을 담는 노력을 꾀했다. 결과는 제법 아름다운 실루엣과 핏으로 완성된 한층 성숙해진 룩! 디즈니와 협업 계약을 맺고 활약 중인 바비 애블리는 이번 시즌 ‘리오드쟈네로’에 컬렉션을 바치며 도날드 덕을 앞세운 유쾌한 룩들을 선보였고, 마틴 로즈는 하위문화와 남성성을 넘나드는 탐구를 통해 젊고 아름다운 실루엣을 선보였다. 특히 그녀의 와이드 팬츠와 셔츠 시리즈는 데뷔 당시 화제를 불러왔던 그때 그 신선함 그대로 멋지다. 첫 데뷔 프리젠테이션을 킴 존스의 호스트로 잘 치룬 에드워드 크러칠리는 루이비통의 텍스타일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쌓은 노하우를 담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컬렉션을 완성했다. 퀄리티 높은 소재와 장인정신을 담은 ‘휘귀하면서도 진정한 럭셔리’ 패션을 추구하는 그의 룩은 더블 페이스 코팅 (소재를 두 겹으로 코팅)과 진짜 자개실로 쟈카드를 수 놓는 식으로 신인 디자이너들에게 쉽게 볼 수 없는 야심찬 컬렉션이다. 마지막으로 그만의 리그를 달리는 JW 앤더슨의 남성복은 이번 시즌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완성도 높은 다양한 룩의 향연이었다. 과장된 길이의 니트 가디건과 핑크색을 입은 복싱 부츠, 파자마 룩에 니트 울 팬츠 (이거 주목해야 하는 트렌드!)와 땡땡이 퍼 베스트 코트와 곳곳에 등장한 달팽이와 오묘하게 으시시했던 애니메이션 캘릭터 프린트, 그리고 스트랩 숄더 백을 더블로 크로스한 밀리터리 레퍼런스까지. 그의 컬렉션은 언제나 그렇듯 박수 받아 마땅한 알차고 풍성하며 쇼피스와 웨어러블을 교묘하게 오가는 완벽한 캣워크로 완성.

진정한 하위문화는 더이상 존재할 수 없을거라는 일각의 시각은 어쩌면 가슴 아픈 오늘날의 현실일지도 모른다. 왜냐면, 오늘날의 문화는 지나치게 모든게 오픈되어 공존하고 있고, 디지털의 영향으로 심지어 국경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런던이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이유는 바로 아직도 ‘재생산’될 문화 유산이 풍부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80년대를 풍미한 ‘키즈’들이 아직 건재하고 그들의 시각이 이렇게 전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는 패션 위크 시스템이 존재하는 한 당분간은 런던의 문화는 거침없이 그 행보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나저나 지금 발등에 떨어진 불은 앞서 언급한 패션 위크의 ‘시즌’에 대한 논란이다. 가뜩이나 생산과 유통, 배송이라는 무대 뒤에서 일어나는 현실에 취약한 신인 디자이너들이 휘청하지 않도록 이번 논란을 둘러싼 패션계 중진들의 ‘현명한 조치’가 시급한 지금. 제발 더 이상 무리된 변화 속에서 희생 당하는 독립 디자이너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이 글은 <Dazed & Confused> 코리아의 2016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글/ 여인해
사진/ BFC 제공, Kensington Leverne, Dan Sims, Darren Gerrish, Sam Wil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