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IVITY + BUSINESS

디자이너와 그의 옆을 지키는 오른팔. 패션 비즈니스의 성공을 좌우하는건 바로 이 조합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즈니스를 접고 홀연히 사라지는 디자이너들의 숫자는 늘어나고, 그보다 배수로 더 많은 신인 디자이너들이 속속 출현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디자이너들의 패션계 입문은 패션 스쿨 졸업작품 쇼를 통하는 전통적인 방법이나 럭셔리 브랜드에서부터 저가 브랜드까지 저마다 다양하게 내세운 패션 어워즈, 그리고 패션 페스티벌 등 수 많은 방법으로 존재한다. 크레이티비티와 비즈니스라는 동전의 양면이 조화롭게 공존해야 온전하게 굴러가기 마련인 패션이라는 독특한 산업 속에서 디자이너들은 전혀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비즈니스의 신비에 대해 어디에서 누구에게 어떻게 배워야 하는걸까?

패션계 속 유명한 ‘짝궁’들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영화 <디올 앤 아이>에서는 피터 뮐리에가 질 샌더 시절부터 함께 한 디자이너 리프 시몬스의 예민한 감수성을 긍정적으로 끌어내주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며 크레이터들이 유난히 힘들어하는 ‘소통’ 부분의 빈 틈을 채워주는 영민한 오른팔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라프를 빛나게 했다. 디올 하우스를 떠나겠다고 선언한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라프와 피터의 앞으로의 행보는 지켜봐야 알겠지만, 두 사람이 이후에도 쭉 계속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영국 신인 디자이너 홍보 대사인 보그의 사라 무어는 이 짝궁 조합을 두고, 크리스토퍼와 태미 케인처럼 남매거나 아니면 패션 학도 시절 일찍이 서로를 알아보고 만나는 경우도 있지만, 모든 디자이너들에게 이 운이 따르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한때 동료였다가 각자 독립적인 길을 걸어왔고 다시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에서 한팀으로 합쳐 성공을 거둔 후 두 사람의 이름으로 브랜드를 시작한 힐리에 바틀리의 케이티 힐리에와 루엘라 바틀리는 패션계에 아직 희망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결합이다. 루엘라가 한창 전성기에 정점을 찍던 시절, 불경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브랜드를 접겠다고 선언한 2009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일면식도 없는 그녀가 브랜드를 닫는다는 소식에 얼마나 충격을 받고 슬퍼했던지. 그런데 흔적도 없이 사라진 다른 디자이너들과 달리, 그녀를 되돌아오게 한 건 바로 빅토리아 베컴과 루이 비통 등의 브랜드들의 가방 디자인 컨설턴트로 활약 중이던 케이티 힐리에의 손짓이었다. 두 사람은 건강하게 ‘힐리에 바틀리’ 브랜드를 단계별로 성장시켜 나가는 중이다.

그럼, 오른팔도 짝궁도 아직 (?) 찾지 못한 크레이티브 재능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전통적으로 신인 디자이너들에게 다음 단계는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지만, 재무 부서나 인력이 부재한 디자이너들에게 은행은 물론 기업투자 펀드를 받는 일은 난해하고 까다로운 작업이다. “패션 펀드를 런칭한 이유는 다음 단계로 비즈니스를 성장할 준비는 되었지만, 제일기 (first stage) 투자를 받을 준비가 아직 되지 않은 디자이너들을 지원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시작했어요.” 영국 패션 협회 CEO  캐롤라인 러쉬 CBE의 말이다. 캐롤라인은 보그와 지큐와 함께 각각 여성복과 남성복을 위한 현금 지원 펀드를 런칭하고, 매해 한명의 디자이너를 선발해 후원하고 있다. “펀드 수상자에게 가장 중요한 또 다른 요소는 비즈니스 멘토링이예요. 디자이너들에게 접근 불가능한 비즈니스 현장 경험은 물론, 아직은 고용하기 힘든 고위직 인력의 실질적인 조언을 연결시켜주고 있어요.” 2016년 보그 펀드 최종 후보 명단의 공식 발표를 앞두고 캐롤라인과 영국 보그 편집장 알랙샌더 슈먼은 이번 시즌 패널들에게 먼저 후보 디자이너들과의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고, 이 자리에서 디자이너들의 비즈니스 플랜에 대한 신랄하고도 심층적인 대화가 오갔다.

영국 보그 닷컴을 통해 공개된 첫번째 영상은 이 만남의 자리를 가늠해볼 수 있는 ‘티저’ 내용이 담겨 있고, 최종 후보 공개 및 패널과의 심층 대화 편집본은 1월말 공개될 예정이다. 이 패션 펀드가 여타 패션 어워즈와 다른 점은 바로 디자이너를 선정하는데 있어 디자인 재능은 기본이고 ‘기업가적인 안목’을 잣대로 최종 수상자를 선정한다는 것이다. 디자인 재능과 비즈니스 감각의 발란스라는 불가능해보이는 조합을 요구하는 패션 펀드의 기준이 바로 오늘날 패션 비즈니스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영국보다 앞서 런칭한 미국 CFDA의 보그 패션 펀드는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지만, 조금 다른 방향으로 선회해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의 형태로 방송을 타고 있는 중이다. 전세계를 패션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한 사람을 꼽으라면 안나 윈투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미국 패션 펀드는 그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유사하다. ‘비즈니스 안목을 가진 디자이너로 성장하라,  패션 비즈니스 속 고위 인력 및 네트워크를 오픈해주겠다’는 내용!

한국에는 삼성 패션 디자인 펀드가 있다. 2015년말 11번째 횟수를 맞은 일명 SFDF 역시 신인 디자이너를 발굴해 현금 스폰서쉽을 제공하는 펀드의 형태. 전세계의 이목이 한국 패션에 집중된 지금, SFDF의 존재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다만, 신인 디자이너를 거쳐 중견 디자이너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해주는 미국과 영국의 패션 펀드와는 달리 디자이너 재능을 선별하는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데 차이가 있다. 올해 수상자인 브랜드 99%IS의 박종우 디자이너와 HYEIN SEO의 서혜인과 이진호 팀은 전세계 패션 무대에 올리기에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의 독창적인 브랜드 미학을 선보이는 기대주들이다.

패션 어워즈의 활약이 어느때보다 던 격렬한 지금의 현상은 박수 치고 환영해 마땅할 일이다. LVMH는 바이어와 프레스에게 지금 이 시대 가장 주목해야할 리스트를 보여주듯 친절하게 파이널리스트로 꼽힌 디자이너들을 파리로 불러 한자리에 모은 후 패션계 전문 인력들에게 전시하는 독특한 자리를 마련한다. 수상자들에게는 현금은 물론 (전년도 수상자 토마스에 의하면 통장에 고스란히 전액 바로 입금!) LVMH 그룹의 인력과 자원이라는 어마한 보물 창고가 열린다. 단, 기간은 1년이니 비즈니스 계획이 수립되어 있어야 최대한 수혜를 받을 수 있다!

작년에 런던에서 진행된 H&M 어워즈, 지속적으로 성장 중인 울마크 프라이즈는 물론 Yoox의 서스테이너블 패션 어워즈, 디젤이 이끄는 인터내셔널 탤런트 서포트, 파리의 안담 어워즈, 스위스 텍스타일즈 어워즈 등 4대 패션 위크 도시에 국한되지 않고 전세계 다양한 도시들이 패션 어워즈를 통해 각자의 방식으로 패션 디자인 재능을 발굴하고, 알리며, 홍보하고 지원하고 있다.

이렇게 선별된 인재들은 또 저마다 연결된 패션 네트워크를 통해 전세계 패션 위크 도시들로 스카웃되거나 신인 디자이너로 정식 ‘데뷔’하는 과정을 거친다. 런던에는 유독 신인 디자이너 등용문이 잘 마련되어 있는데, 가장 영향력 높은 톱숍 후원의 사라 무어가 이끄는 뉴젠부터 룰루 케네디의 패션 이스트까지 협회는 새로운 디자인 재능들의 패션 위크 데뷔를 위한 통로를 열어두며 치열한 온 스케줄 경쟁 구도 안에서 그들이 설 자리를 마련해주고 있다.

런던 남성복 패션 위크 기간 중에 만난 루이 비통 남성복을 총괄하는 수장 킴 존스는 일년 중 12개의 컬렉션을 만들어서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메인 컬렉션과 프리 그리고 리조트를 통틀어 일년에 12개라는 어마한 숫자로 급증한 컬렉션을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디자이너들에게 시급한건 ‘비즈니스 안목’을 갖는 것이다. 4대 패션 위크를 이끌어가는 협회와 그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패션 도시별 네트워크는 디자이너들의 이런 비즈니스에 기점한 다양한 문제점들과 질문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들을 저마다 다른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신인 디자이너들에게 필요한건 디자이너 브랜드를 형성하고 조직한 한겹 한겹의 그 단계와 과정을 탐구하는 자세이지 않을까? 패션 스쿨도 패션 위크 조직도 입을 모아 강조하는 건 ‘패션 현장’을 가르쳐줄 수 있는 곳은 그 ‘현장’ 말고는 아무데도 없다는 거니까. 그런 의미에서 패션 펀드의 진행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을 통해 그 현장에서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 바로 바로 해답을 찾아야 하는 디자이너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좋은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인이라는 타이틀을 벗고 도약하려는 그들은 무엇을 필요로 하고 생각하며 구하고 있는지 들어볼 때이다. 

 

글/ 여인해
사진/ Shaun James Cox, Samsung Fashion Design Fund 

이 글은 <DAZED & CONFUSED> 코리아 2016년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