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eak the Rules

메인 컬렉션과 달리 독특한 콘셉트로 다양한 볼거리를 전하는 크루즈 컬렉션이 매해 이슈로 떠올랐다. 크루즈 컬렉션이 주목받는 이유는, 옷 이상의 것이 있기 때문이다.

‘체험’ 위주의 브랜드 마케팅이 활약 중인 요즘, 패션계에 떠오르는 새로운 카드는 ‘크루즈 컬렉션’이다. 크루즈 여행이나 리조트에서 입는 옷이라는 편견을 떨쳐야 할 것이다. 크루즈 컬렉션 쇼를 위해 무인도 하나를 통째로 빌려 건물을 짓는 일은 기본이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대관식을 올린 성당에 캣워크를 설치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크루즈 컬렉션이 뭐길래 브랜드마다 전 세계 곳곳을 순회하며 이처럼 대단한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일까. 크루즈 컬렉션을 바라보기에 합당한 관점을 짚어본다.

새로운 컬렉션의 탄생

패션 브랜드의 꽃은 결국 옷이다. 세계 대전을 거친 유럽과 미국이 자연스럽게 기성복이라는 이미 만들어진 옷을 판매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이래 패션 브랜드는 1년에 1번, 봄/여름과 가을/겨울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1년애 2개의 컬렉션을 ‘발표’하고, 세계 4대 도시인 뉴욕, 밀라노, 런던, 파리는 합의하에 대략 한 주씩 패션 위크라는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제아무리 잇백이 트렌드를 선도하고 슈즈나 액세서리가 화제를 몰고 온다고 해도 이는 모두 들러리일 뿐, 패션의 주인공은 ‘옷’이다. 브랜드를 이끄는 수장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매 시즌 캣워크를 통해 패션 전문가들로 구성된 관중 앞에 선보이는 주인공도 결국은 옷이다. 그런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비전에서 나의 옷장 속에 걸리기까지 꽤 복잡다단한 여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 옷의 운명. 게다가 ‘시즌’이라는 표딱지가 붙다보니 유효기간이 존재한다.

그렇게 시즌별로 세일즈를 거쳐야 하는 ‘메인 컬렉션’ 틈새에 크루즈 컬렉션은 오랫동안 다양한 형식으로 존재해왔다. 변화가 일기 시작한 건 패션계에 묘한 지각 변동이 생기면서부터다. 갑자기 모든 정보가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라는 매체를 통해 퍼져나가자 캣워크는 물론 컬렉션 속 룩 하나하나가 급속도로 사방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브랜드들은 단독 컬렉션과 브랜드 체험이라는 2가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크루즈 컬렉션 프로젝트라는 묘책을 제시했다. “트래킹 슈즈와 선드레스의 조합은 또 다른 형태의 크루즈 여행을 꿈꾸게 했고, 밥 호프 대저택의 미래지향적 분위기와 끝내주게 어울렸다.”며 <보그> 코리아 신광호 편집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크루즈 쇼로 지난해 팜 스프링에서 열린 루이 비통 크루즈 컬렉션을 꼽았다. 매장이 텅 빌세라 환절기에 입는 편안한 실루엣으로 공간을 채우던 크루즈 컬렉션의 대담한 여정이 시작된 것일까?

경계를 허무는 패션쇼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는 프랑스의 장인 브랜드인 레사쥐,  르마리, 마사로 등이 샤넬 그룹에 합류되던 2005년에 처음으로 파리 센 강 위 관광 보트 위에서 크루즈 컬렉션 쇼를 선보였다. 그 이후 매 시즌 패션 위크와 쿠튀르 쇼 기간 사이사이에 크루즈 컬렉션을 선보이던 샤넬의 하이라이트는 2014년 5월에 두바이의 한 무인도 섬에 건물을 올리고 기획한 캣워크쇼였다. 당시 미국 '보그닷컴'의 크리틱으로 컬렉션에 참석한 팀 블랭크스(Tim Blanks)는 “(칼 라거펠트가) 두바이에 도착하기 전 일간지 대부분이 유명 유럽 브랜드들에 목마른 두바이가 급부상 중이라는 기사들을 쏟아냈다.”며 샤넬의 새로운 컬렉션 발표가 당시 정체된 중동 시장에 새로운 매장들을 유혹하는 문을 열어 준 셈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샤넬은 잘 알려진대로 지난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크루즈 컬렉션 쇼를 열었다. 서울에서 열린 그동안의 작고 큰 쇼들에 비해 샤넬의 크루즈 컬렉션에 모두가 주목한 이유는 그새 이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샤넬은 이미 저널리스트, 인플루언서, 셀러브리티 등으로 구성된 ‘전문가’ 집단을 비행기에 태워와 호텔에 머물게 하며, 테마에 맞춰 기획한 식사와 파티 등 하나의 패키지로 완성한 크루즈 컬렉션을 여러차례 성공적으로 치른바 있다. 샤넬 쇼에 이어 크리스찬 디올의 전시와 잇따라 오픈한 여러 브랜드들의 플래그십 매장은 물론 서울 패션 위크의 도약과 콘데 나스트 럭셔리 컨퍼런스의 개최지라는 연속적인 기획에 서울은 한순간 패셔너블한 도시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결국 ‘이미지’가 모든 기억을 주관하는 패션 세계 속에서 크루즈 컬렉션이 일으킨 하나의 불씨는 생명력을 입고 활활 타오르는 중이다.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 (Alessandro Michele)의 등극으로 화려한 전성기를 맞은 구찌가 꺼내든 묘수는 바로 웨스트민스터 성당에서의 크루즈 컬렉션 캣워크. 처음에는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같은 장소에서 쇼를 하면 어떨까' 하던 의견이 어시스턴트 디자이너의 ‘그럼 한번 알아보면 어떨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졌을 뿐이라고 말한 미켈레도 막상 쇼 일정이 잡혀 놀랐다고 말한 바 있다. 결국 구찌는 지난여름 영국 왕실의 크고 작은 행사들을 치른 이곳에 크루즈 컬렉션 쇼를 기획하는데 성공했다. 성당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은 물론 최근에는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 부부의 결혼식 장소로 영국인들에게는 무척이나 특별한 곳이다. 2016년에 들어 이미 크루즈 컬렉션 행렬에 참여한 브랜드는 샤넬, 구찌, 디올, 루이 비통과 크리스토퍼 케인까지 다양하고, 도시마다 브랜드와 전략적으로 제휴하며 더 기발한 컬렉션이 탄생하고 있다.

볼거리 이상의 존재감

크루즈 컬렉션 행렬은 대형 브랜드들에 비해 비교적 마케팅 비용을 적게 쓰는 디자이너 브랜드에게도 좋은 스토리텔링의 기회를 제공한다. 디자이너들은 저마다 작은 캡슐 컬렉션이나 제대로 된 하나의 컬렉션으로 크루즈 라인을 선보이는 플랫폼으로 디지털 미디어를 선호한다. 게다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 이어 스냅챗 같은 채널을 통해 사진이나 동영상 등으로 유포되는 크루즈 컬렉션은 곧바로 인터넷에서 구입할 수 있는 시스템과 연계되는 사례도 있다. 아직은 정기 시즌 컬렉션에서는 미비한 ‘지금 보고, 지금 구입 (See Now, Buy Now)’하는 시스템도 크루즈 컬렉션에서는 조금씩 활기를 띄고 있어 흥미롭다.

뉴욕 타임즈 스타일 매거진<T>의 저널리스트이자 요즈음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 크리틱으로 급부상한 알랙산더 퍼리(Alexander Fury)는 영국의 <인디펜던트>의 패션 디렉터 시절, 크루즈 컬렉션을 이렇게 정의했다. “그 자체로는 더 이상 새로운건 아니다. 하지만 크루즈나 리조트 컬렉션이라고 불리우는 이 ‘프리 컬렉션(Pre-collection)’은 정기 컬렉션에 앞서 매장에 도착하도록 디자인된 컬렉션이다. 그리고 이 쇼들은 새로운 패션쇼 스케줄을 형성하며, (중간 생략) 쇼가 진행되는 이국적인 도시의 장소는 물론 때로는 공간을 반영한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인다는데 있어 독특하다.” <보그 코리아> 신광호 편집장은 “하루에 10여개의 패션쇼를 봐야 하고, 그런 날들이 1주일 넘게 이어지는 패션 위크와 비교해 크루즈 컬렉션은 말 그대로 ‘독상’을 받는 기분. 덕분에 브랜드와 전하는 메시지를 강력히 전달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봄/여름에서 가을/겨울로 이어지는 돌고 도는 시즌의 신상품 행렬에서 잠시 멈춰 쉬어가는 환절기를 위한 크루즈 컬렉션. ‘독상’을 받기에 합당한 크루즈 컬렉션이 매해 어떤 옷으로 재탄생되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당장 매장을 찾을 것을 권한다. 시기는 매장별로 다르겠지만 대략 정기 컬렉션이 들어오기 전 한, 두달 앞서 매장에 진열될 예정이다.

글/여인해

이 글은 <Boon the Shop Magazine> AW16 이슈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