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ctive & Collaboration

 

패션 세상 속, 재능있는 자들이 뭉쳐 스스로를  ‘컬렉티브’라고 한다. 컬렉티브가 있는 곳에는 외부와의  ‘컬래버레이션’이 활발하게 전개되기도 한다. ‘협업’이라는 이름 아래 창조적인 자가 기술 있는 자를 만나는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다. ‘창조적’인 에너지가 뭉쳐 패션계의 핵을 자극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시작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새로운 영감을 찾아 나서거나 과거 속 트렌드를 재창조한 그들의 작업은 세월이 지나 패션계 유산으로 화자되기에 충분한 가치와 매력을 지녔다. 컬렉티브와 컬래버레이션이 패션계의 새로운 창조 흐름으로 다시금 떠오르는 지금,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타이밍은 없다.

 

East London

이스트 런던이 핫한 곳으로 떠오른지는 벌써 몇 년 됐다. 멋 좀 부리는 패션 피플들이 즐겨 찾는 카페, 레스토랑, 숍들이 즐비한가 하면 또 다른 지역은 일대가 매일밤이 불금이라도 되듯 화려한 밤 문화로 북적인다. 지역 발전을 위한 전략적 프로젝트 덕분에 IT 창업자들이 몰리는 곳이기도 하고, 주말이면 발디딜 틈 없이 복잡해지는 빈티지 마켓, 오가닉 마켓, 그리고 플라워 마켓 등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을 중심으로 도시가 개발되는 현대 문명의 특성상 런던의 동쪽은 중심가인 서쪽에서 한없이 먼 외곽지역이었다. 그런 이 지역에 80년대 중반에 이름을 떨친 숍이 하나 있었다. 'HOBAC'으로 통하는 'The House of Beauty and Culture'. 이곳은 "패션 디자이너, 가구 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 이자 액세서리 디자이너, 슈즈 디자이너, 니트웨어 디자이너, 사진가, 아티스트 등 핵심 멤버 10여 명이 창립한 부티크이자 디자인 스튜디오였고 크래프트 컬렉티브(Craft Collective)였다." 라고 리요 네메스(Riyo Nemeth)는 설명한다.
그는 HOBAC의 중심이었던 패션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네메스(Christopher Nemeth)의 딸로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브랜드를 꾸려가고 있다. HOBAC을 통해 옷을 판매하던 네메스는 우체국에서 사용하는 포대를 이용해 만드는 등 당시 강한 인상을 남기며 아티스트들의 작업에 영감이 되기도 했다. 특히 그는 마네킹이 아닌 인체 위에서 옷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데, 입체적인 재단 덕분에 지금도 입는 사람에 따라 형태가 다르게 유지되어 마니아층이 꽤 형성되어 있다. 네메스의 아카이브를 가장 많이 소장한 것으로 알려진 루이 비통의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킴 존스(Kim Jones)는 2015년, 그의 밧줄 로고를 재현한 모티프와 함께 패션쇼 전체를 HOBAC에게 바쳤다. 킴 존스는 “HOBAC에 대한 루이 비통 쇼를 준비할 때 런던을 ‘남성복의 수도 (Capital of Menswer)’로 바라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네메스가 한 작업은 테일러링과 스트릿을 섞는 것이었고, 그 결과물은 아름다웠다.”고 네메스 를 회상했다.

 

The Collective Studio

흥미로운건 당대 이 ‘스트릿’ 문화가 패션계는 물론 건축, 미술계에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동시대 같은 문화를 공유했던 이들 중에는 건축가 론 아라드(Ron Arad)와 산업 디자이너 톰 딕슨(Tom Dixon)이 있었고  훗날 미술계 내 일명 YBA(Young British Artist)로 불리우는 아티스트인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와 마크 퀸(Marc Quinn) 등에게도 이들의 작업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영국의 현대미술학회(Institute of Contemporary Arts, ICA) 총감독 그레고르 뮈르(Gregor Muir)는 최근 출간한 책 <The House of Beauty and Culture>을 통해 이들 컬렉티브가 클럽신을 통해 당대 젊은이들의 문화를 거쳐 건축과 미술계에까지 영향력을 미치게 된 배경을 자세하게 서술했다. “HOBAC은 나이트 클럽이 지금의 소셜 미디어이자 인터넷과 같은 역할을 하며 아트계가 집약된 곳이라고 할 수 있던 시대에 존재했던 중요한 곳”이라고 뮈르 총감독은 강조한다. 우체국 포대로 이미 유명세를 탄 네메스는 그외에도 버려진 다양한 페브릭을 이용해 옷을 만들었다. 하나씩 수작업한 그의 재킷은 당시 클럽신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 되어버려 재킷을 구하지 못했다면 빌려 입기라도 해야 할 지경이었다고 한 저널리스트는 기억한다. 그뿐 아니라 HOBAC의 니트웨어 디자이너 리처드 토리(Richard Torry)의 당장이라도 풀어 헤쳐질 것 같은 니트는 남녀 구분 없이 입을 수 있는 룩이었고, 쇠로 장식된 구두코 디자인의 슈즈는 완벽하게 광을 내어 착용해야 했다. 알렉산더 맥퀸의 첫 데뷔쇼에 등장하게 될 ‘엉덩이를 다 드러내는’ 범스터 팬츠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룩이었고 HOBAC의 슈즈 디자이너 존 무어 (John Moore)의 반달 모양의 네모코 신발은 지금도 손에 넣고 싶을 정도로 멋스럽다.

 

The Collaborations

ICA는 책의 발간과 함께 HOBAC의 또 다른 핵심 멤버인 아트 디렉터이자 스타일리스트, 액세서리 디자이너 등으로 활약 중인 주디 블레임(Judy Blame)의 전시를 최근 9월초까지 진행했다. 네메스의 컬렉션이 클럽신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는 동안 블레임은 잡지, 광고계를 섭렵한 아트 디렉션과 액세서리 디자인을 통해 최근까지도 꾸준히 활동 중이다. 블레임은 HOBAC을 통해 존 갈리아노, 꼼데가르송의 레이 가와쿠보, 가레스 퓨는 물론, 루이비통 전 여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마크 제이콥스와 현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킴 존스와의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ICA의 전시 ‘주디 블레임, 네버 어게인 (Judy Blame, Never Again)’은 블레임의 주얼리 작품과 함께 HOBAC 시절 컬렉티브를 설립한 각각의 디자이너들의 작업 방식을 재현하는 전시로 구성되었다. 네메스가 만든 옷 위에 블레임이 구한 단추 컬렉션이 장식되는가 하면, 가구 디자이너 프릭과 프락 (Frick and Frack)이 디자인한 나무 프레임 위에 우체국 포대나 작업한 캔버스 쿠션을 더해 완성하기도 했다. 당시 숍에서는 슈즈, 옷, 쥬얼리, 모자, 가구와 아트 작품이 판매되었고, 이 공간을 통해 젊은 디자이너들은 즉흥적이고 허물 없는 방식으로 서로 컬래버레이션 하며 작업할  수 있었다. 컬렉티브의 작업은 당대 패션 흐름을 주도한 잡지인 <더 페이스(The Face)>, <아이디(i-D)> <블리츠(Blitz)>는 물론 작고한 이사벨라 블로우가 패션 디렉터로 있던 <태틀러(Tatler)>에도 실리며 언더그라운드와 메인 스트림을 교묘하게 오가며 노출되었다.

 

The Touchstone

인터넷도 없던 시절 HOBAC은 입소문을 통해 찾아오는 이들 위주였지만, 그렇다고 고객들을 일일이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덜 알려진 네메스에 비해 디자이너로서 전세계를 뒤흔든 마틴 마르지엘라의 단 한번의 방문은 중요한 이슈로 화자된다. 주디 블레임은 “내가 마틴을 처음 만났을때 그는 HOBAC에 한 번 방문했다. 우리는 사실 그가 누군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이후 나에게 '그곳이 하나의 기준 (touchstone)이 되어주었다'고 말하곤 했다.”고 하며 마르지엘라가 HOBAC은 물론 그를 둘러싼 컬렉티브에 대해 잘 알고 있음을 언급했다. 마르지엘라가 HOBAC과 연관되는 배경에는 두 디자이너 네메스와 마르지엘라가 선보인 ‘패션 해체주의’ 작업이 마치 서로에게 영감을 받기라도 한듯, 공통점이 많다는 사실도 흥미롭게 작용한다. 사실 마르지엘라가 HOBAC이나 네메스에게 영향을 받았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마틴 마르지엘라야말로 디자인 하우스 안에서 협력하는 디자인 팀을 그 브랜드 철학의 중심에 두는 새로운 시도를 한 가장 핵심 인물이라는 점이다. 영국 왕립 예술 대학교 (Royal College of Arts)의 패션학과장 조이 브로드위치 (Zowie Broach)는 “마르지엘라는 하우스의 내부가 외부 표면에 나오도록 시스템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컬렉션을 만들고 패션을 창조하는데 있어 팀워크의 중요성을 드러낸 디자이너”라고 말하며 그야말로 패션계 내 가장 대표적인 ‘컬렉티브’의 예로 꼽을 수 있다고 말한다.

 

New Generation

HOBAC이 당대에 미친 영향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구축된 ‘쿠튀르 하우스’ 시스템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것이다. 마르지엘라의 사수였던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는 이미 신인 디자이너로 활약 중이었으며, 마르지엘라는 영국 ‘신예’들을 통해 디자이너들의 새로운 작업 형식을 목격했다. 흰 가운을 입고 작업하는 팀과 아틀리에에서 수년간 일해야 디자이너로 데뷔할 수 있었던 파리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였다. 그리고 패션 역사는 이제 그들을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이라고 기록하고 기억한다. “아방 가르드에는 두려움이 없다. 불편한 질문들을 던질 준비가 된 자들을 위한 것이고, 현존하는 시스템의 틀 안에 갇히지 않아도 되는 디자인 방식이기도 하다.” 학교에 몸을 담기 전 브랜드 '부디카(Boudicca)'를 이끌며 아방가르드 사조에 합류한 조위 학과장은 아방 가르드를 이렇게 정의한다. 그들은 그저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시스템에 속하지 않은 아웃사이더를 자칭한 것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의 흥미로운 시도는 새로운 창조를 가능케 했고, 어느새 패션 전문가들과 기자들은 물론 아티스트들을 자극하는 놀라운 현상으로 증폭되기에 이르렀다.  

 

Avant Garde

아방 가르드에 대해 리요 네메스는 이렇게 말한다. “'아방가르드하다'는 것은 '오리지널하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오늘날의 패션에서도 그것은 새로운 것, 혹은 알려지지 않은 것을 창조하기 위해 당대에 허용되는 경계를 조금씩 넘어서고 깨는 행위다.” 네메스의 말처럼 프랑스어인 ‘아방가르드(Avant Garde)’의 원어를 있는 그대로 풀이하면 ‘선두(forefront)’다. 그들은 전쟁에서 본대에 앞서 적의 움직임과 위치를 파악하는 선발대, 즉 '전위'를 뜻한다. 패션계의 선두에서 컬렉티브가 경계를 넘어서기 위해 푸쉬하는 작업을 하는 동안 외부에서는 그들을 향해 러브콜을 날리고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새로운 시도는 조금씩 멀리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패션을 회고할 때 우리는 꼼데가르송(Comme des Garçons)과 요지 야마모토(Yohji Yamamoto)가 한때 아방 가르드였다고 말한다. 그들은 새로운 틀을 만들어 또 다른 반복과 복제가 가능하도록 한 선구자다.”라고 조위 학과장은 말한다. 두 디자이너는 각각 자신의 브랜드에 그치지 않고 전세계 주요 도시에 자리한 편집매장인 도버 스트릿 마켓을 운영하거나 아디다스와 함께 전개하는 세컨드 브랜드인 Y-3 등을 통해 폭넒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Taking Shape

HOBAC을 통해 옷을 판매하던 네메스의 작업 방식은 초기에는 아티스트와 같은 형태였다.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 후 재킷을 만들거나 버려진 옷을 주워 바지를 재단하는 등 하나씩 손으로 작업한 그의 초창기는 지금도 희귀해 경매나 빈티지숍 렐릭의 바이어 스티븐을 통해 구해야 할 정도. 하지만 리요에 의하면 “1986년 도쿄로 넘어와 첫 매장을 오픈 이후 그는 공장 제작을 가동했고 더 많은 양의 생산이 가능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꼼 데 가르송이 전개하는 도버 스트릿 마켓(런던, 뉴욕, 베이징에 위치)과 트레이딩 뮤지엄(도쿄에 위치)을 통해 네메스를 알게된 고객들이 지금도 하나 둘 이 매장을 새롭게 찾아온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당시에도 그는 마네킨 바디스가 아닌 인체 위에서 옷을 만든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입체적인 재단이 특징인 그의 옷은 지금도 입는 사람에 따라 그 형태가 다르게 유지되어 나름의 매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다.

 

The New Wave, VETEMENTS & PALACE

1980년대와 1990년대의 다양한 창조 활동이 끊임없이 회자되는데에는 많은 이유를 꼽을 수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건 당대의 창조 에너지가 지금까지 이어져올만큼 강력했다는 것이다. 그런 요즘, 패션계를 강하게 뒤흔드는 두개의 브랜드를 꼽으라면 파리의 베트멍(Vetements)과 런던의 스트릿웨어 브랜드 팔래스(Palace)을 말하고 싶다. 두 브랜드 모두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많은 요소들을 담은 브랜드이기도 하지만, 흥미로운건 이들이 자연스럽게 뜻이 맞는 이들끼리 모인 컬렉티브라는 것이다. 게다가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는 베트멍의 디자이너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는 마르지엘라를 거쳐 루이비통 디자인 팀에서 십년 넘게 작업하며 굵직한 경력을 쌓은 인사이더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후 발표한 그의 최근 컬렉션은 호평 세례를 받았다. 반면 인터넷 쇼핑몰과 런던에 있는 단 하나의 단독 매장, 그리고 도버 스트릿 마켓을 통해 컬렉션을 발표하고 판매할 뿐 철저히 아웃사이더이기를 고집하는 팔래스의 레브 탄주(Lev Tanju)의 컬렉션은 론칭과 동시에 급속도로 매진 완판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두 브랜드는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폭넓은 시도를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최근 7월에 열린 파리 오트 쿠튀르 쇼에 초청된 베트멍은 스웻셔츠 브랜드 챔피언, 워크웨어 (작업복) 브랜드 카하트, 벨벳 운동복 브랜드 쥬시 꾸띄르, 스포츠웨어 브랜드 리복, 데님 브랜드 리바이스 등의 브랜드들과 선보인 콜라보레이션 컬렉션은 바이어들의 취향은 물론 관중들에게도 적중한 성공적인 쇼를 선보였다. 스케이트 보더들이 모여 콜렉티브를 이루는 팔래스는 아디다스와 리복과 꾸준히 컬래버레이션 라인을 선보이고 있고, 그 외에도 테이트 모던 갤러리와 전시품을 소재로 한 작업을 하는 등 그들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Inspire Imaginations

패션 거장들을 만나 얘기하다보면 도달하는 뻔한 결론 하나가 있는데, 그건 바로 태초 이래 더 이상 새로운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패션도 결국에는 돌고 도는 유행의 궤도 위에 있는지도 모른다. 조위 브로치 학과장은 “우리는 이미 존재했던 위대한 디자인을 반복하는 것이다. 오직 ‘기술’만이 새로운 도구이자 목소리이고 페인트 붓인데 그것이 우리를 사회적, 정치적, 미학적으로 새로운 곳으로 진정 끌어올려줄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지금은 눈을 뜨고 다양한 창조 에너지를 생각하며 아침에 일어나 옷을 꺼내 입는 그 순간 나의 행위를 잠시 생각해볼 때이다. “내가 설득 당한 미학이나 나를 포기시킨 그 어떠한 방해 그리고 ‘내가 주인공이 되는 현실’ 속 나의 꿈들을 상상하다보면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당신만의 자리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고 조이 학과장은 꿈 같은 이야기를 한다. 결국, 가장 신선하고 매혹적인 새로운 것을 찾는 중이라면, 과거를 돌아보며 미래를 점치는 대신 지금은 눈을 열 때이다. 리요는 여기에 덧붙인다. “숍에서 우리는 고객들에게 최대한 조언을 하지 않는다. 왜냐면 우리는 옷이 고객들의 상상력을 무한대로 자극할 수 있도록 기회를 허락하고 싶기 때문이다.” 

글/ 여인해
사진/ ICA제공, Judy Blame, Mark Lebon, Cindy Palmano, Plastiques Photography

이 글은 <Boon the Shop Magazine> AW16 이슈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