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rah Mower 신인 디자이너 홍보 대사이자 저널리스트 사라 무어

세계적인 브랜드의 디자이너도 긴장시키는 날카로운 비평가지만 신인 디자이너 육성을 위해서라면 정부 고위 관계자를 동행하고 직접 발로 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사라 무어! 런던은 어떻게 신인들을 육성할 수 있었는지, 런던 패션 위크가 안정 궤도에 진입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사라 무어와 함께 돌아봤다.  

  심사위원장과 수상자 관계를 오랫동안 이어오고 있는 사라 무어와 디자이너 이정선. 사라는 이정선의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면 어떻겠냐고 <보그 코리아>에 제안했다. 사진/서원기

 심사위원장과 수상자 관계를 오랫동안 이어오고 있는 사라 무어와 디자이너 이정선. 사라는 이정선의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면 어떻겠냐고 <보그 코리아>에 제안했다. 사진/서원기

“내 이야기를 간단히 소개해달라고요?” 사라 무어의 입김은 대단하다. 그녀는 10년 동안 미국 스타일 닷 컴에 디자이너들의 패션쇼 리뷰를 썼고, 그보다 더 오랜 기간 미국 <보그>에 굵직한 컬럼을 써오고 있다. 모두가 존경하는 저널리스트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진짜 파워는 신인 디자이너들을 육성할 때 여과 없이 드러난다. 그만큼 다가서기 어려운 이 패션계 거물이, 인터뷰 기획 단계에서 통상적으로 보내는 질문지에 (일명 섭외용 질문지로 참고하라고 보내는 것!) 예기치 않게 답신을 보내왔다! 이메일을 타고 날라온 글에는 익히 봐온 그녀의 진한 필체를 타고 그녀가 패션 세상에 입문한 후 걸어온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었다.

“새로 구입한 아이패드로 글 쓰는 건 정말 별로예요!” 아이패드 덕분에 그녀의 글은 중도에 끊겼고, 제발, 이어서 쓰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답장을 부랴부랴 보냈다. 생각치도 못하게, 준비도 안 된 상황에서 사라 무어와 <보그 코리아>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사라는 한국 디자이너 이정선의 스튜디오에서 인터뷰하고 촬영하면 어떻겠냐고 <보그 코리아>에 제안했다. 사라와 디자이너 이정선은 뉴젠 (뉴제네레이션 어워드, 영국 패션 협회가 신인 디자이너에게 시상하는 상으로 상금 및 쇼 후원이 뒤따른다) 심사위원장과 수상자의 관계를 몇 년간 이어오고 있는 특별한 관계다. 디자이너 이정선은 흔쾌히 수락했고 그녀의 도움으로 스튜디오 안에 준비 작업이 시작되었다. 2014년 봄/여름 컬렉션 작업이 한창이던 스튜디오 안은 어느새 촬영, 헤어 & 메이크업, 기자로 구성된 <보그 코리아> 팀이 북적거리는 현장으로 탈바꿈했다

곧이어 사라가 도착했다! “오후에 스텔라 맥카트니 브랜드의 머천다이징 디렉터인 예다 윤 (그녀는 브라운즈 바이어와 미우미우 머천다이징 디렉터를 거쳐 스텔라 맥카트니 팀에 합류한 중요한 패션 인물로 한국인이다)과 JS (디자이너 이정선)의 미팅이 예정되어 있어요.” 자신을 위해 <보그 코리아> 팀이 점령한 디자이너 이정선의 스튜디오를 둘러보며 그녀는 새로운 소식을 전했고, 촬영팀은 스케줄 조정을 위해 다시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뉴젠 심사위원장으로서 사라는 패션 전문가로 구성된 패널에게 디자이너들의 스튜디오를 방문해 직접 현장에서 조언해달라고 부탁한다. 디자이너에게 후원금 만큼 값진 패션 전문가들의 조언은 컬렉션에 그대로 반영되는 매우 중요한 도움이다. 올해부터는 사라가 비공식적으로 부탁하던 그 일이 아예 프로그램의 일부로 공식화 되었다. 사라의 부탁을 받고 뉴젠 패널인 예다 윤이 스튜디오를 방문할 예정이라니. 스케줄은 다소 꼬였지만, 뉴젠 패널이 수상자를 조언하는 현장에 참관할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를 얻은 셈이다!

“예다가 JS의 컬렉션을 보고 머천다이징 과정을 도울 거예요. 디자이너에게는 컬렉션과 세일즈에 대한 엄청 귀한 정보를 얻는 지름길이 열리는 거예요.” 뉴젠 심사위원장인 사라가 이끄는 패널은 사라와 같은 기자, 예다와 같은 브랜드 내 전문가는 물론, 백화점, 편집 매장, 이테일러, 온라인 에디터 등 다양한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전문가들은 모두 무료로 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모두가 철저히 ‘지원군’을 자청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두가 호의적이었던 건 아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후세인 샬라얀이 신인 디자이너로 막 이름을 알리던 당시, 사라는 제인 셰퍼드슨 (지금의 톱숍과 뉴젠을 만든 당시 매니징 디렉터, 현 휠슬즈 (Whistles) 대표) 과 함께 톱숍을 위한 디자이너 콜레보레이션 라인을 시작했다. “후세인한테 내 명예를 걸고 지켜주겠다고 약속했어요. 하이 스트릿 거물이 그의 컬렉션을 약탈 (rape라는 강한 표현을 썼다!) 하지 않을 거라고 안심시켜야 했죠.” 우여곡절 끝에 후세인을 비롯한 런던 신인 디자이너들은 톱숍과의 콜레보레이션을 통해 재정적인 후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자연스레 톱숍은 뉴젠 어원드의 메인 스폰서가 되었고 (영국 패션 협회의 뉴젠 어워드는 1993년부터 시작, 톱숍은 2001년부터 지금까지 이 상을 후원하고 있다), 톱숍의 후원으로 디자이너들은 쇼 장소도 제공 받고 콜레보레이션 라인을 통해 재정 지원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신인으로 이름을 알리던 런던 디자이너들은 그러나 하나, 둘 재정의 벽을 넘지 못하고 넘어지기 시작했다. 일부는 밀라노나, 뉴욕, 파리 패션 위크로 넘어가 자리를 잡거나 빅 하우스의 수장을 거치기도 했다. 15년 전 런던의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영국 학생들이 보고 배울 패션 산업 자체가 없었어요. 아니, 아주 작았어요. 디자이너들은 어려움에 처해 허우적였고, 서로 간에 배울 점도, 도움을 줄 멘토도 없었어요.”

그 어떤 조직도 나서지 않고 누구도 야망을 품지 않던 당시 사라와 제인은 자신들의 인맥을 동원해 더 이상 디자이너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만 있지 않겠다며 발벗고 나섰다. 두 사람은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맹세했다. 때마침 새로운 디자이너 그룹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크리스토퍼 케인이요! 그의 컬렉션을 보고 그 재능에 현기증이 날 정도였어요.” 케인은 센트럴 세인 마틴학교의 석사 과정 전임 교수인 루이즈 윌슨 (Louise Wilson)의 사사를 받은 디자이너들 중 한명이었다. 케인을 포함해 조나단 선더스, 록산다 일린칙에 이어 메리 카트란주, 이정선과 시몬 로샤 그리고 토마스 테이트에 이르기까지, 루이즈가 배출한 디자이너들은 세계의 이목을 런던에 집중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인터넷을 통해 작은 디자이너들도 빅 브랜드와 동일하게 리포트할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많은 리테일러들과 고객들이 새롭고 덜 알려진 디자이너들을 요구하기 시작했어요.” 스타일 닷 컴 평론가로 활동하던 사라 역시 그들을 알리는데 일조했다.

런던은 패션 안에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었지만 정부의 반응 속도는 느리기 짝이 없었다. “토니 블레어의 부인 셰리는 패션을 싫어했어요.” 사라는 당시 정부의 태도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고든 브라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의 부인 사라가 ‘지적인 관심’을 쏟기 시작했고, 정부도 패션이 인력을 고용하고 이익을 창출하는 산업이라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 다음 정권의 안주인인 사만다 카메론 (스테이셔너리로 유명한 영국 브랜드 스마이슨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기도 했던)은 본격적으로 영국 패션 협회를 위해 나서며 리셉션 디너를 호스트했고 그렇게 런던 패션 위크가 무척 공식적인 단계에 이르기까지 많은 세월이 흘러야 했다. “당시 정부 각료이던 에드 바이지 (Ed Vaizey)를 설득해 택시를 타고 이스트 런던에 있는 디자이너들의 스튜디오를 돌며 일일이 소개하고 디자이너들이 경제에 기여하는 바를 직접 눈으로 보여줬어요.” 사라는 디자이너들을 위해 발로 뛰는 열성을 보였다. 이후 그는 문화부 장관이 되었고, 지금까지 런던 디자이너들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낸 런던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우리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었다. 정부나 협회, 디자이너, 패션 기업 등 모두가 각자의 주장을 펼치며 단합하지 못하고, 한국 내에서 젊은 디자이너들이 속속 배출되고 있지만 누구도 나서서 조직적으로 그들을 리드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하세요. 정치적이거나 완전히 분열된 상황에서는 절대로 아무것도 이뤄질 수 없어요. 조직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세요. 복잡한 서류 절차를 없애고 디자이너들의 현장을 봐야해요.” 사라가 젊은 저널리스트이던 시절, 뉴젠 프로그램이 막 시작되었다. 사라의 패션 입문 계기는 영국 <보그> 탤런트 콘테스트의 (지금도 진행 중인, 25세 미만 아마츄어를 대상으로 한 기자 경연 대회) 수상자로 뽑힌 사건 (1979년)이다. 이후 전설의 에디터 리즈 틸버리스 (Liz Tilberis)의 콜을 받고 미국 <바자>로 건너갔다가 리즈의 죽음 후 안나 윈투어의 제안으로 미국 <보그>의 컨트리뷰팅 에디터 직을 맡으며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했다. 저널리스트로 막 이름을 알리던 사라는 뉴젠 패널로 선정되었다. 뉴젠 수상자를 가리기 위해 모인 패널은 점심과 함께 배달된 와인만 기다렸고 그에 흥분했다. 그들 앞에는 단 한 명의 디자이너도 디자이너의 컬렉션도 없었다. 젊은 사라는 그들 앞에서 당차게 디자이너들은 어디 있냐고 외쳤고, 자신이 직접 디자이너들을 찾아 나섰으며 보드 룸에 앉은 패널과 디자이너들을 연결시켜주는 연결 고리 역할을 자청했다.

런던은 이제 이전보다 더 개방적이고 훨씬 역동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패션 전문가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나서서 신인들을 이끌고 돕는다. “네타포르테 같은 온라인 리테일러를 통해 디자이너들에게는 인터내셔널 시장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고, 영국 패션 협회가 주최하는 ‘런던 쇼룸’ 프로젝트를 통해 전세계 곳곳에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이 팔리기 시작했어요.” 바이어들은 4대 패션 위크의 대미를 장식하는 파리에 가서야 최종 바잉 셀렉션을 결정한다. 이점에 기인해 시작된 ‘런던 쇼룸’ 프로젝트는 런던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을 들고 직접 여러 도시들을 도는 것이다. 파리에 이어 뉴욕, LA, 그리고 홍콩까지 섭렵한 ‘런던 쇼룸’의 다음 목적지로 서울도 거론 중이다. “디자이너들이 직접 시장을 눈으로 보고 체험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예요. 정부도 알아야 되요!” LA를 다녀온 피터 필로토가 가슴 확대 수술이 유행인 LA 고객들에 맞춰 드레스 상판 디자인을 전부 다시 했던 일, 다양한 도시에 맞춰 사이즈를 제작하고 라벨링한다는 마리 카트란주의 이야기 등 ‘런던 쇼룸’의 교훈이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은 놀랍다. 

안정궤도에 진입한 런던 패션 위크의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일까. “다음 단계로 협회 차원에서 주목하는 것은 교육이예요.” 2013년 초 영국 패션 협회장을 맡게 된 네타포르테 설립자 나탈리 메세네 (Natalie Messenet)가 5개년 계획의 주요 기둥으로 교육을 선정했다고 사라는 귀띔한다. 자신은 무료로 학교를 다녔고 오히려 정부의 지원으로 생화비를 보조 받았다고 덧붙이는 사라. 해가 다르게 오르는 학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 수가 늘어나고 있어, 우려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장학금 을 통한 재정적인 지원은 물론이고 학생들에게 패션 비즈니스 안에 필요한 다양한 역할도 알려야해요.” 사라는 디자이너 이정선의 스튜디오 안에서 다음 컬레션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팀을 향해 손짓하며 말했다. 디자인 작업을 위한 팀은 물론이고 디자이너가 브랜드로 온전히 일어서기 위해서는 비즈니스에 대한 교육 뿐 아니라 비즈니스를 꾸려갈 팀이 구성되어야 한다. 협회는 런던 비즈니스 스쿨의 MBA 학생들과 디자이너들이 프로젝트를 통해 팀웍을 맞춰볼 기회도 마련 중이다.

마침 약속 시간에 맞춰 예다 윤이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다시 뉴젠 심사위원장으로 돌아가 사라가 패널인 예다와 수상자인 디자이너 이정선을 소개시켜줬고, 세 사람은 이어서 그녀의 다음 컬렉션을 놓고 심층 분석에 들어갔다. 사라는 체크 패턴 위에 열을 가하는 기법으로 새로운 패턴을 구성하는 페브릭 개발 과정을 흥미로워했지만 예다는 판매가 힘들거라고 제동을 걸었다. 디자이너에게 절대 타협할 수 없는 건 ‘정체성’이라며 디자인의 방향과 시각에 대해 이야기하던 사라도 바이어들에게 좌지우지되지 말고 제품 제작에 대한 타협의 선을 정확히 하라는 예다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컬렉션을 다각도로 살피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세 사람! 디자이너 이정선은 예다를 비롯한 모든 패널과 직접 대면하는 기회를 통해 컬렉션은 물론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의 성장에도 박차를 가하게 된다. 패널의 멘토링 시스템을 통해 뉴젠 디자이너들은 지금도 꾸준히 성장 중이다. 

영국 바스 (Bath) 지역에서 태어나 패션을 사랑하는 할머니와 엄마로부터 14살에 <보그> 구독권을 선물 받은 이후 올해 엘리자베스 여왕 2세로부터 MBE (대영 제국 훈장 제 5등급) 작위를 받기까지 패션에 대한 열정만 바라보고 걸어왔다는 사라 무어. 그녀는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권위있는 저널리스트이자 영국 패션 협회의 ‘신인 디자이너 홍보 대사 (Ambassador to Emerging Talents)’ 로  신인 디자이너 발굴 및 육성에 앞장서고 있다.

 

글/ 여인해  
사진/ 서원기

이 글은 <Vogue> Korea의 2013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