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tablished Designers 런던의 성숙한 디자이너들

 사진 / Joachim Norvic

사진 / Joachim Norvic

런던 디자이너들은 늘 옳다, 왜냐면 그들은 하나둘 모여 패션 세상을 조금씩 움직이더니 점점 더  강력한 바람을 일으키는 중이니까! 어느새 신인의 딱지를 벗어던지고 발빠르게 자신들의 브랜드를 일구고 성장 중인 런던 디자이너들은 전세계 주요 백화점과 매장들을 통해 자신의 세상을 보여줘왔다. 그렇게 매시즌 새로운 영감을 입고 탄생되는 컬렉션을 이제는 그들만의 공간인 플래그쉽 스토어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시작에 크리스토퍼 케인이 있다고 믿는 이유는 이제 막 30대 초반을 넘긴 그를 둘러싸고 런던에 형성되기 시작한 ‘성숙한 디자이너 (Established Designers)’ 그룹들이 더욱 흥미로워졌기 때문이다. 하나 둘 온 & 오프 라인을 통해 플래그쉽 매장을 열고 브랜드로 도약하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

 

9년전, 크리스토퍼 케인의 등장에 패션계는 환호했다! 알랙샌더 맥퀸 이후 천재 디자이너에 목말라 있던 때에 케인은 몸을 꽉 조이며 감싸는 바디콘 드레스와 형광색 컬러를 과감히 사용하고 레이스와 지퍼로 강조한 실루엣으로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고 단번에 스타 디자이너 반열에 올라섰다. 이후 그의 행보는 독보적이었다. 패션계 최대 권력으로 불리우는 안나 윈투어의 지지를 받으며 (당시 안나는 매 시즌 런던 패션 위크를 방문) 베르수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전격 발탁되었다. 지금이야 파격적인 신인 디자이너들의 등용이 많은 성공 사례들을 남기며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여졌지만 10년 전에는 획기적인 인사였다! 이제 막 졸업 작품 쇼를 발표한 젊디 젊은 케인은 베르수스 브랜드를 보란듯이 진두지휘하며 신선한 에너지를 불어 넣었고, 베르사체의 주가도 덩달아 올랐다. 하지만, 베르수스를 안정 궤도에 올려놓은 케인은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계약 기간이 끝나자 그는 모든걸 뒤로하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에 집중했다. 빅 패션 하우스에 입성할거란 소문이 무성했지만, 그는 잠잠했고, 2013년, 케링 그룹의 투자를 받아 구찌에서부터 맥퀸에 이르는 계보에 자신의 브랜드를 당당히 올렸다.

투자와 동시에 자연스런 다음 단계는 플래그쉽 매장의 오프닝! 플래그쉽 부티크들의 깃발이 휘날리는 본드 스트릿 대신 그는 조용한 마운트 스트릿 (Mount Street)을 선택했다. 마운트 스트릿은 미국 대사관 뒷켠에 자리한 작은 거리로 진짜 런더너들만이 아는 곳이다. 조용한 이 거리에는 이미 몇해 전 입성한 크리스챤 루부탱과 마크 제이콥스 매장이 있고, 영국 해리티지 브랜드 매킨토시 등이 들어서 있다. 묵직한 벽돌 건물들이 들어선 거리는 영국 시대극에 나올법한 고풍스럽고 웅장한 느낌이다. 2015년 초 오픈한 케인의 첫번째 부티크가 들어선 건물은 실제로 ‘등록된 건물’로 에드워드 왕 시대에 지어진 이 건물은 건축법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어 함부로 구조를 고치거나 바꿀 수 없다. 틈만 나면 매장을 찾고 고객들과 소통하며 보내는 시간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케인! 케인은 이 매장 안에 ‘감정적 차원의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이 공간의 주인공은 옷이자 그 옷에 반응하는 사람들이다. 환한 화이트 톤으로 깔끔하고 간결하게 완성한 공간은 케인의 감성을 받아내는 그릇 역할을 하고 있다. 케인은 이곳을 주기적으로 ‘큐레이트’하며 꾸며나가는 중이다.  

난 케인이 갖고 있는 중요한 상징은 이 시대 새로운 디자이너 브랜드의 전성기를 열었다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런던은 그들은 ‘성숙한 디자이너 (Established Designers)’라고 부른다.

마운트 스트릿에는 케인 외에 또 다른 디자이너가 새로운 매장을 열었다. 이미 런던 도버 스트릿 마켓과 베이징 IT 매장을 통해 특유의 페미닌한 감성을 공간으로 아름답게 보여준 시몬 로샤도 이곳에 첫번째 플래그쉽 매장을 열었다. 곧 출산을 앞두고 엄마가 될 준비에 푹 빠져 있다는 시몬은 잘 알려진대로 존경받는 디자이너 존 로샤의 딸이다. 케인을 이끌어준 고 루이스 윌슨 교수의 지지를 받고 혜성 같이 등장한 시몬은 데뷔 5년만에 급속도로 성장했다. 그녀의 시그니쳐가 된 퍼스펙스와 플로럴 그리고 진주 디테일은 매 시즌 아름답게 진화 중이다. 매장에는 얼마전까지 그녀의 스튜디오 (2년 전쯤 큰 공간으로 옮겼다) 리셉션에 걸려 있던 베이컨의 작품 시리즈 세 점이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녀의 공간은 왠지 아트 갤러리 느낌이 강하다. 실제로 그녀는 다양한 아트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설치 작업 하듯 공간을 꾸민다고 한다. 그녀의 매장 안에서 옷은 오브제가 되고, 오브제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환경은 시몬의 영감으로 표현되는 중이다. 그녀는 또 쇼윈도우를 통해 매 시즌 새로운 작업을 고객들에게 먼저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케인의 완벽한 부티크와 시몬의 아름다운 공간이 마운트 스트릿에 새로운 쇼핑 체험을 선사하는 동안 프린트의 여왕 마리 카트란주는 이커머스 스토어를 오픈했다. 이커머스는 말그대로 가상 공간 속 매장이라는 뜻. 매장의 주소가 ‘www’로 시작될 뿐 그곳은 실존하는 부티크다. 마리의 이커머스 스토어에는 재미난게 많다. 그녀가 이번 컬렉션을 만드는데 영감이 된 무드보드를 공유하며 그녀의 생각들을 공개하거나, 정기 컬렉션 외에 그녀가 진행 중인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소통하기도 한다. 마음에 드는 것을 클릭하면 당연히 바로 구매 가능한 공간으로 이동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매장 안에 제품들을 모두 다 꺼내놓고 아무렇게나 진열하지 않고 ‘머천다이징’하는 과정을 거치듯, 마리의 제품들은 기획된 구성을 따른다. 하지만 마리의 진짜 능력은 가상이 아닌 현실에서 진면모를 발휘된다. 전세계 최고의 부티크들을 통해 공개되는 그녀의 공간은 기상천외하다. 프린트 속 모든 디테일이 살아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레스 위 로봇 모티브가 실제 정교한 설치물로 등장하거나, 초현실주의 작품의 한 장면이 살아 움직이듯 네모난 쇼윈도우 박스를 가득 채울 수도 있다! 결론은 그녀는 타고난 비쥬얼 작가라는 사실. 옷 실루엣 안에 국한되지 않고, 공간 안에서 투영되는 그녀의 흥미진진한 모티브들이 곧 그녀의 2호 오프라인 플래그쉽 매장을 통해 공개되는 날이 머지 않아 현실화되지 않을까.

런던 패션 위크를 단 며칠 앞둔 9월. 에르뎀이 사우스 오들리 스트릿 (South Audley Street)에 첫 플래그쉽 부티크를 열어 패션계가 총출동했다. 오래된 절친인 케인은 물론 여배우, 톱모델, 패션계 중진들이 다 모여 에르뎀의 첫 플래그쉽 스토어 오프닝을 축하해줬다. 사우스 오들리 스트릿은 마운트 스트릿에서 연결되는 거리로 모두 본드 스트릿 인근이다. 에르뎀은 처음부터 꿋꿋히 아름다운 재단을 고집한 디자이너다. 그의 드레스는 늘 몸을 완벽하게 감싸는데 영국 패션계의 대모 브라운즈 편집매장의 B 여사는VIP 고개들이 최고로 꼽는 드레스는 단연 에르뎀의 디자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들은 브랜드 파워나 스타 디자이너가 아닌 옷으로 가치를 평가하는 냉정한 고객들이다. 그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에르뎀은 여자들을 위한 ‘진짜’ 옷을 만들 줄 아는 디자이너인 셈. 에르뎀은 작년 초 난데없이 그랜드 피아노를 셀프리지 백화점에 들여 놓고 피아노 덮개, 의자를 위하 카페트 등을 직접 디자인해 에르뎀 브랜딩을 한적도 있다! 그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고객들의 문의가 쇄도했다는 웃지 못할 여담도 있을 정도. 에르뎀의 부티크에는 그랜드 피아노 대신 그의 이니셜 ‘E’자를 멋지게 완성한 우아한 브랜딩이 입구에 타일로 새겨져있다. 매장은 프라이빗 쇼핑을 즐기는 공간을 연상케 하는 편안하고 우아하며 고급스런 데스티네이션이다.

케인, 시몬, 마리 그리고 에르뎀까지 잘 성장해준 ‘성숙한 디자이너 그룹’에는 더 많은 이름들이 더해지고 있다. JW 앤더슨, 피터 필로토, 조나단 선더슨은 물론 더 빠르게 브랜드로 자리 잡고 성장하는 마르케스 알메이다와 크레그 그린 같은 이름까지. 게다가 또 한명 천재 디자이너의 등장이라며 주목받는 남성복 디자이너 웨일즈 보너와 데뷔와 함께 도버 스트릿 마켓으로부터 전세계 독점 러브콜을 받은 여성복 디자이너 몰리 고다르까지. 이들의 빠른 성장 배경에는 옷을 만드는 재주는 당연하고 컬렉션을 관중들에게 보여주고 선사하는 애티튜드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케인이 말한 그 ‘감정적 차원’을 구사하며 관중과 소통하는 중이다. 당분간 런던에는 더 많은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출몰할 예정이고 그들은 하나 둘 이 ‘성숙한 디자이너 그룹’에 합류할 것이다. 그러니 다음에 런던에 오면 마운트 스트릿으로 향해 오감을 열고 그들의 환경을 체험해 볼 것을 권한다. 당분간은 이들의 행보가 흥미진진하고 스펙타클할 예정이니까!  

글 / 여인해
사진 / Joachim Norvic, 에르뎀, 알렉산더 맥퀸, 마리 카트란주, 시몬로샤 제공
이 글은 Dazed & Confused Korea 2015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