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to Feast, 브랜드 축제

 AVENUEL Magazine Cover Oct. 2015

AVENUEL Magazine Cover Oct. 2015

격렬했던 더위가 지나가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자연은 추수할 준비를 알리며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추수를 감사하고 풍성한 음식 잔치가 열리는 동안 좋은 계절을 맞은 브랜드들도 화려한 축제를 벌인다. 그리고 브랜드는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아이코닉한 축제들을 통해 당대를 이끄는 철학과 정체성 그리고 미래를 드러낸다.

 

인본주의 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우(A. Maslow)는 ‘인간의 기본 욕구가 충족되면 인간은 자아 실현을 위한 욕구 충족을 탐색하게 되는데, 아트 즉 문화가 바로 그 욕구 충족의 중요한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브랜드들은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크고 작은 축제를 벌인다. 가령, 쇼파드의 깐느 영화제 후원, 론진의 승마 경주, 브라이틀링의 에어쇼, 브레게의 제네바 음악 콩쿠르, 루이비통의 요트쇼, 에스티로더의 핑크 리본 캠페인 등이 이에 속한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이미지로 만들고 광고판에 설치하던 마케팅적인 접근을 뒤로 하고 럭셔리 브랜드는 이제 ‘커뮤니케이션’을 앞세우며 소통의 장을 연다. 목적은 하나, 브랜드를 더 알리고 그 이름에 친숙해지기 위한 것이지만 수단은 다양하고 방대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브랜드 명과 제품을 보여주는데 급급했던 마케팅 도구와는 달리 ‘소통’이라는 수단은 다각도화되어 있고 대상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대상이 단 한명일지라도 그를 위해 열과 성의를 다해 제품을 제작하는 럭셔리 브랜드들에게 이런 접근은 어찌보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이치일지 모른다. 자칫 오래된 역사가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전통에 대한 이야기들이 동시대적으로 조명되어 조각 조각 단편 이야기처럼 쪼개지고, 그 여러 조각들이 다시 한데 모여 브랜드의 정체성으로 연결된다. 이런 여정에 동참하는 방법으로 브랜드에게 축제는 더 없이 좋은 소재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재밌는 이야기들과 그 이야기 속 많은 등장 인물들의 삶 속 열정과 영감이 흘러흘러 닿는 곳이 바로 축제니까.

축제는 결국 커뮤니티다. 오늘날처럼 전세계가 ‘글로벌’이라는 이름 안에 하나로 연결되기까지 지역 사회는 축제를 통해 돈독해지고 소속감을 공유하게 되었고 그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다만, 글로벌 시대에 맞춰 축제의 규모가 커지고 ‘경쟁’의 형식을 탑재하기 시작하며 실질적인 진행 방식이 진화했을 뿐이다. 올림픽이 가장 좋은 예다. 다양한 스포츠를 축하하기 위해 주변 국가들이 모여 정정당당하게 경쟁을 펼치고 우승자를 기리며 축하하던 ‘전세계 스포츠 잔치’는 스포츠 분야별로 혹은 음악과 예술 분야를 넘나들며 가장 흔하게 축제를 여는 공식이 되어버렸다. 브랜드에게 전세계를 무대로 펼쳐지는 분야별 ‘올림픽’은 단연 그 정체성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훌륭한 파트너쉽 대상이 된다.

정체성이 이토록 브랜드들에게 중요한 이유는 그들의 과거가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브랜드의 문화 유산 (heritage)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며 앞으로 브랜드를 이끌어갈 미래 주역들에게 중요한 자원과 자산이 된다. 남들보다 앞서 선구자의 길을 걷는 이들은 공통적으로 뒤따라오는 후대의 재원들을 위해 자원을 아끼지 않는데, 브랜드에게는 그것이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이 된다. 앞서가는 자들이 뒤따라오는 이들을 후원하는 광경은 지극히 이상적이며 바람직한 현상이다.  여기서 중요한 관건은 바로 ‘재원’을 알아보는 안목이다. 축제를 둘러싼 브랜드들의 활동에 전문가들이 구성되고 권위 있는 기관이 참여하는 등 파트너쉽의 연속선상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궁극적으로 브랜드는 하나의 공통된 문화를 향유하는 커뮤니티가 국적을 불문하고 역사를 이어가며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하는데 함께 발걸음하고 있다.  

브랜드가 축제를 축하하는 방법은 제각기 다른데, 많은 럭셔리 브랜드들이 선구자적 정신을 이어, 하나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한 축제들에 이끌린다. 때로는 론진 (Longines)의 ‘프리 드 디안 (Prix de Diane)’’ 승마 경주와 같이 자칫 과거 속으로 사라질 귀한 유산을 유지하기 위해 후원을 자처하고 여기에 여인들의 패션과 드넓은 초원에서의 피크닉이라는 비쥬얼적 요소를 가미하는 재치를 발휘하기도 한다. 론진은 승마대회의 메인 스폰서이자 ‘우아한 콘테스트’라는 이름으로 경마장을 찾은 여인들의 화려한 모자 경쟁을 공식적으로 후원하며 2011년부터 파트너쉽을 이어가고 있다. 론진의 시계를 부상으로 선물받는 ‘마드모아젤 디안 론진’은 물론 말의 건강한 이미지와 172년이라는 대회의 전통은 론진이 추구하는 힘찬 미래와 더불어 고집스럽게 지켜오고 있는 장인정신과 절묘하게 맞닿아 있다.

사라질뻔한 위기를 거친 또 하나의 스포츠 대회 뒤에는 루이 비통 (Louis Vuitton)이 함께 걸어가고 있다. 가장 최신 기술을 탑재한 ‘신상’ 요트들을 뽐내고, 더불어 거대한 자금이 움직이는 요트 대회 아메리카 컵은 중단되었다 재개되는 과정을 반복하며 방황하다 2017 ‘루이비통 아메리카 컵 월드 시리즈(Louis Vuitton America’s Cup World Series)’라는 이름으로 공식 출범했다. 본격적으로 루이 비통의 요트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바다 위의 왕자, 요트들의 왕좌를 둘러싼 치열한 경쟁에 루이 비통이 발을 담은 건 요트 팀들의 화려한 여정을 통해 루이 비통이 브랜드의 오래된 철학인 ‘여행 예술(Art of travel)’을 구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루이 비통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패션 브랜드의 면모를 화려하게 발휘하고 있지만, 브랜드의 중요한 DNA인 설립자 루이 비통의 모험 정신은 요트 대회를 통해 항해를 이어가고 있다.

음악 축제를 지휘하는 브레게 (Breguet)는 미래를 이끌어갈 재원들을 후원하는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다. 최초의 ‘손목시계’를 발명해 시계 역사와 그 세월을 함께 하는 유서 깊은 브랜드 브레게는 2002년부터 클래식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젊은 연주가들을 발굴하는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 대회인 ‘제네바 음악 콩쿠르 (Concours de Genève)’의 메인 후원사로 합류하며 클래식 전파에 앞장서게 된 것이다. 지역 단체를 주축으로 시작되었지만 현재는 전세계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음악 콩쿠르로 ‘음악계의 올림픽’으로 불린다. 그 해 수상한 연주가들은 브레게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여러 나라를 돌며 연주회를 갖는다. 브레게의 클래식 음악 사랑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루체른 여름 페스티벌부터 로스엔젤리스 필하모닉, 뉴욕 필하모닉 등 손꼽는 음악계 축제들을 두루 후원하고 있다. 혁신의 브랜드로 대변되는 브레게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젊은 예술가들의 만남. 이제 클래식 음악 축제에서 브레게의 이름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반면 쇼파드(Chopard)의 영화 사랑은 유명한데, 1998년부터 줄곧 영화계 최고의 축제인 ‘깐느 영화제’를 후원하며 행사를 빛내는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일명 ‘레드 카펫 컬렉션’이라 불리는 한정판을 출시하기도 했다). 1998년 깐느 영화제 최고의 상인 ‘황금 종려상’의 트로피가 약 40년 만에 바뀌었다. 매끈하게 빛나는 황금빛의 날렵한 종려 나뭇잎 모티브는 24캐럿 금으로 제작되었고, 크리스털 블록은 싱글 컷 크리스털로 완성된다. 모두 쇼파드 공방에서 이루어졌다. 황금 종려상 트로피는 아쉽지만 감독만 가져갈 수 있다. 때문에 여우주연상과 남우주연상에게는 동일한 디자인의 미니 황금 종려상 트로피가 주어진다. 이 또한 쇼파드가 제작했다(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는 여배우 전도연 역시 이 미니 쇼파드 상패를 소장하고 있다). 쇼파드는 차세대 영화 주역들에게도 호기심이 많다. 그해 주목할 신인 배우를 선정하는 ‘트로피 쇼파드(Trophée Chopard)’ 역시 트로피를 제작하고 배우 발굴에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황금 종려상’과 ‘트로피 쇼파드’는 올해 각각 50주년과 15주년을 맞았다. 화려함으로 점철된 주얼리 브랜드와 예술의 만남으로 영화제는 품위를 갖추게 되었고, 쇼파드는 자연스럽게 아트 마케팅 효과도 얻게 되었다.

쇼파드가 은막의 여인들을 위한 축제를 마련한다면, 브라이틀링(Breitling)은 전혀 다른 분위기의 축제를 벌인다. 브라이틀링을 정의하는 정밀함과 속도 그리고 대담함은 하늘을 지배하는 제트기에 비견될 수 있다. 창공을 가르는 ‘브라이틀링 제트 팀(Breitling Jet Team)’을 공식적으로 후원하고 이들이 전세계 방방곡곡을 다니며 하늘 위에서 에어쇼를 펼치도록 지원한다. 이토록 브라이틀링이 에어쇼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193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브라이틀링은 로얄 에어포스의 공식 제조업체로 발탁되며 모든 기내용 크로노그래프를 제작했는데, ‘전세계 항공 장비의 공식 공급업체’로 불리며 ‘하늘 위의 파트너’라는 수식어를 얻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브라이틀링 윙워커(Breitling Wingwalkers)’라는 곡예 비행팀의 스폰서를 맡으며 하늘 위의 절대 강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패션 브랜드들이 후원하고 주관하는 축제 속에 의미가 특별한 이야기를 하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에스티 로더의 ‘핑크 리본 캠페인’이다. 언젠가부터 핑크 리본을 보면 자연스럽게 ‘유방암’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었다. 유방암을 극복한 에스티 로더 그룹 전 부회장 에블린 로더(Evelyn Lauder)는 같은 병을 이겨낸 동료이자 친구인 <셀프(Self)>매거진의 편집장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벌인 핑크 리본 캠페인 영향. 이들은 핑크 리본 캠페인을 통해 여성들의 유방암 의식 고취와 예방에 앞장섰다. 2011년 75세의 나이에 난소암으로 죽을 때까지 에블린 로더는 유방암 활동가로 활약하며 8천만개가 넘는 핑크 리본을 나눠주고 4억 달러에 가까운 기금을 모금하는 등 대단한 성과를 이뤘다. 핑크 리본 캠페인 시즌이 되면 거리에서 핑크색 옷을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여성들에게 핑크색 리본과 전단지를 나누어 준다. 단순히 홍보에 그치지 않고, 유명인들과 함께 캠페인을 진행해 도시 전체가 핑크 물결이 된다. 한국도 2001년부터 명동, 강남, 청계천 등 서울 시내 주요 랜드 마크에서 핑크 리본 이벤트를 진행하며 대중에게 ‘유방암’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에스티 로더 컴퍼니는 이 캠페인을 통해 여성을 가장 잘 이해하는 화장품 브랜드라는 인식을 심어 주는 것과 동시에 ‘나의 몸’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는 긍정적인 기업 이미지 도 얻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핑크 리본 물결은 매년 가을에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예술과 상업의 경계 사이에 서서 문화를 만들어내고 역사를 새로 쓰는 럭셔리 브랜드들의 축제. 지금도 육지와 바다, 하늘을 아우르는 흥겨운 축제들이 전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축제, 즐기는 자의 몫이다.

에디터 강혜영 글 여인해(패션 컨설턴트) 
이 글은 애비뉴엘 매거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